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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딩인가HR인가 Sep 21. 2022

조직을 망치는 악마의 유혹, Letter No.4

<딜레마의 편지 : 조직의 우상을 섬기는 당신에게> 네 번째 편지

사랑하는 L에게


최근에 다른 부서의 팀원 한 사람 때문에 네가 상당히 골치를 썩고 있다는 소식 잘 들었다. 위계질서도 모르고 개념 없이 행동한다지? 직급도 낮은 녀석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굳이 안 해도 되는 것을 괜히 들쑤셔서 일을 만들어 버리고, 제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여러 사람들이 침묵하는 분위기 속에서 혼자만 질문하고, 네게 동의와 승인을 거치지도 않은 채 대뜸 찾아와 협조를 요청하는 등 아주 건방지고 되바라졌더구나.  


게다가 녀석의 팀장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녀석의 그런 행동을 주시하면서 방관만 하고 있더구나. 자녀를 보면 그 부모를 알듯이 팀원을 보면 그 리더를 알 수 있는 법이지. 쯧쯧…. 여하튼 너보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주제넘게 마치 제가 전문가인 것처럼 으스대니 네 배알이 꼴리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하는 조직에서 어느 한 사람이 기존의 체계를 무시하고 멋대로 행동하려 한다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그게 리더십이 존재하는 이유지.



조직엔 경계가 존재한다.


사람이 각각 가지고 있는 역할과 책임을 구별하기 위해 수직적으로는 직급을 만들어 놓았고, 비즈니스 성과를 더 효과적으로 얻기 위해 수평적으로 각각의 부서를 통해 기능을 더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이러한 수직적 경계와 수평적 경계를 활용해 조직은 최적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 따라서 조직 안에 있는 개인은 단지 그 경계에 따라 자신의 일을 정확하게 수행하면 된다. 절대 경계를 침범하거나 벗어나서는 안 된다. 물론 기존의 경계를 수정하려고 해서도 안 되지. 그렇게 되면 결국 모든 사람의 역할과 책임, 부서의 기능이 수정되어야 할 것이고 이러한 과정 자체가 일이 되어 버려 ‘진짜 해야 할 일’을 놓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고로 리더라고 한다면 사람들이 직급을 뛰어넘거나 부서 고유의 기능 범주를 넘어선 행동을 하게 해서는 안된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제자리에 있을 때, 우리는 전체적인 흐름을 조망하며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려낼 수 있지. 


그렇다면, 만일 누군가 울타리를 넘다가 적발되었을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럴 땐 그가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할 수 없도록, 아니 그의 시도 자체가 무모했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교훈을 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그가 실수를 했다고 하여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협박을 하거나 으름장을 놓지는 말아라. 우리 모두는 교양 있는 지식인들이잖니? 굳이 언성을 높이지 않더라도 그가 본인의 행동을 후회하며 잘못을 뉘우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단다.



네가 좀 더 ‘전략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그가 스스로의 잘못을 깨치는 것을 넘어 앞으로는 경계를 넘으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로도 만들 수 있을 게다.


매번 선을 넘는 건방진 녀석의 행보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 먼저 다양한 관점에서의 ‘검토 (review)’가 필요하다고 주장해라. 조직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수평적 경계는 실은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지. 어느 한쪽의 경계가 허물어지면 다른 한쪽이 원하지 않는 희생을 해야만 하는 것이 이 시스템의 특징 중 하나다. 따라서 누군가 의도치 않게 이 수평적 경계를 넘으려고 한다면 이 경계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에게 동의와 허락을 구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 그게 ‘상식적’인 인간 세상의 예의 아니겠니. 정렬 (align)이나 합의(consensus), 동의 (agreement) 같은 단어를 빈번하게 활용해라. 이 단어들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아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고 있기에, 이와 같은 말을 내세워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 녀석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될 것이다. 게다가 너는 아주 체계적이고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게다. 경계 바깥에서 평소 녀석의 행실에 불만이 있었던 사람들에게 너는 아주 합리적이고 지위에 맞는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비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녀석의 활동에 제동을 거는 데 성공했다면 다음은 ‘위험(risk)’이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해라. 그가 조직의 수직적 경계와 수평적 경계를 뛰어넘는 것은 엄연한 절차 위반이고 그것이 이후에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해라. 조직 내 정보 보안과 컴플라이언스 (compliance)준수 절차를 따지고, 때로는 커뮤니케이션 (communication) 관련 규정과 비용 지급 조건 등을 문제 삼아라. 그 모든 사항들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할 경우 조직에 큰 위협이 될 수 있고 결국 우리 모두가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음을 상기시켜라. 지금과 같이 비즈니스 환경이 좋지 않아 대부분의 조직이 마치 살얼음판을 걷듯 하는 요즘 같은 시기는 이런 주장을 펼치기 더없이 좋은 시기다. 녀석이 진행하고자 하는 일이 실패할 경우, 조직이 목표로 하는 성과 달성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음을 강조하고 위험 요소를 최대한 낮추기 위해 각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부서들과 빈틈없는 논의와 준비가 필요함을 역설해라.


네가 이렇게까지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이 고집스럽게 본인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불충분한 검토와 위험 요소들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아라. 조직의 인사팀이나 감사팀 혹은 컴플라이언스를 담당하고 있는 팀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여 조직 전체에 피해가 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문제를 제기할 때는 반드시 주도 면밀해야 한다. 네가 주장하는 이야기를 뒷받침해 줄 여러 가지 자료들을 잘 모아 두어야 한다. 그와 주고받은 이메일과 메신저 내용들은 물론, 혹시 녀석과의 통화 내용을 녹음해 둔 것이 있다면 금상첨화다. 물론 누가 들어도 너의 이야기를 믿을 수 있도록 네 자료는 충분히 사전에 손을 써 놔야겠지. 불필요한 말은 생략하고 녀석이 그동안 보여준 행실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것이 얼마나 미숙하고 어리석은 행동인지, 조직에 어떠한 위협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설명해라. 경험 많고 성숙한 어른으로서 너른 관점으로 담담하게 네가 가지고 있는 염려를 보여 주면 된다. 


이 일이 네 신경을 건들고 때로는 고단하여 중간에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미꾸라지 같은 한 녀석으로 인해 조직 전체가 흙탕물로 오염되어서야 되겠니? 너의 희생이 조직 안의 다른 구성원들 모두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공익을 위해 약간의 에너지를 쓰거라. 네 헌신이 무너진 조직의 규율을 바로잡고 다시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만일 조직의 경계에 틈이 생기고 급기야 허물어진다면, 너의 지위와 지금까지 이루어 낸 성취 모두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릴 것이다. 체계와 규율이 무너진 곳에서는 오직 혼란만 존재하고, 인간은 그 혼란을 틈타 그동안 꽁꽁 감춰 놨던 자신의 이기적인 욕구를 드러낼 것이 분명하다. 그동안 네게 순종했던 팀원들도 경계를 넘어 제멋대로 굴며 너의 지위에 도전하겠지.



사람은 각자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해. 능력 있는 사람은 그 능력에 맞는 대우를 받아야 하고, 좀 부족한 사람은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지.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공정성’ 아니겠니?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규율과 시스템을 잘 유지하려고 하는 네 노력에 난 언제나 박수를 보낸다. 네 노력이 없었다면 어리석은 몇몇 인간들은 벌써 녀석에게 홀려서 마치 자신들이 무엇이라도 된 것처럼 주제넘는 행동을 보였을거야. 녀석에 대해 미리 나에게 알려 주어 고맙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네 지위와 조직의 성과를 위협하고 제 분수도 모르고 날뛰는 행동을 하는 녀석이 보인다면 보는 즉시 연락하도록. 그럼 오늘도 승리하렴. 


너를 아끼는 Dilemma





딜레마의 질문


1. 조직 안에서 규정과 절차, 역할 구별이 명확할 때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2. 조직 안에서 그레이존(gray zone, 어느 영역에 속하는지 불분명한 부분)이 생겼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레이존의 일은 어떻게, 무엇을 기준으로 해결되어야 하는가?


3. 체계와 규율 그리고 자율과 책임은 어떻게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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