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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딩인가HR인가 Nov 14. 2019

구성원들이 조직문화 활동에 잘 참여하지 않는 진짜 이유

조직 안에서의 개인의 선택 (by 비폭력대화법)


언젠가 대화할 때 중요한 것이 아이 메시지(I-message)라고 들은 적이 있다.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눌 때 부정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주어를 '너'가 아니라 '나'로 바꾸어 말하는 것이라고 배운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OO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마음이 별로 좋지 않아요."

"너가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참 속상해."


상대방을 직접적으로 탓하지 않고 내 마음의 느낌을 위와 같이 설명하는 것이 더 성숙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말하는 습관을 그렇게 바꾸어보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비폭력대화법을 창안한 '마셜 로젠버그(Marshall B. Rosenberg)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주장을 펼친다. 



"죄책감도 폭력의 한 형태"라는 것. 



그에 따르면 

죄책감을 이용하려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우리 감정을 결정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들어야 한다. 


"네가 그 일을 하지 않으면 나는 정말 마음이 아파."

"내가 말하고 있을 때 네가 끼어들면 나는 정말 화가 나."

이런 말들이, 듣는 상대방이 우리의 고통을 유발했다고 믿게 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암트스프라헤'라는 말이 있다. 

'사무 용어' 또는 '관료 용어'라는 뜻인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부인하는 언어이다.

누군가가 그런 일을 왜 했느냐고 물으면 '해야만 했다'라고 대답한다.


"왜 해야만 했는가?"

"상관의 지시, 회사의 정책, 법이었기 때문이다."


마셜 로젠버그는 가장 위험한 단어들은 암트스프라헤, 즉 해야만 한다 (Should) 그리고 할 수 없다 (Can't)라고 주장한다.




최근에 TF 멤버들과 한 가지 일로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바로, 조직문화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전해줄 토커 (Talker) 섭외 절차 때문이었다. 


내 의견은 

'우리가 생각하는 적합한 당사자에게 먼저 참여 의사를 물어보고, 이후에 소속 리더에게 보고한다'였고 


멤버들은 

'리더에게 먼저 적합한 대상 명단을 받고, 그 사람들을 컨택해야한다'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멤버들의 주장은

"어차피 우리가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봤자 그 위에 A님에게 확인해봤냐고 되물어본다. 결정은 어차피 A님이 다하시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당사자에게 물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냐. 설령 당사자가 참여하고 싶다고 해도 A님이 승인을 해주시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건 참여를 희망한 당사자를 오히려 불편하게 만드는 것 아니겠냐. A님에게 적합한 사람을 물어보고 명단을 받아서 진행하는 것이 스무스하다." 

였다. 



나는, 

"그렇게 가는 것이 조금 더 편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 프로그램의 토커라면 '자발적인 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의지, 자발성 없이 무대에 올라오는 것과 타인에 의해 압박과 강요에 의해 올라오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설령 리더가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리더를 설득하는 과정을 거치고  참가자가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우리 역할 아니겠냐. 참가자가 처음에 다소 염려와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안정적으로 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게 우리 역할이다. 이 프로그램의 취지와 목적에 맞게 가장 잘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구성원이 우리 생각에는 참가자임을 이야기해주고, 그래도 정 못하겠다면 그건 그 참가자의 선택을 존중해주면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게 하는 과정이다."

라고 의견을 내세웠다. 



이야기는 현재 구성원들이 일하고 있는 방식이나 직무 특성뿐만 아니라, 

리더에 대한 인식, 조직의 의사결정 방식까지로 이어졌고, 

멤버들은 각자의 경험을 근거로 본인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멤버들이 이야기하는

구성원들이 느끼는 프로그램 참여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은

실은, 조직문화 차원의 집단 압력에서 온 것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한다고 일 안 하고 논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바쁘지 않아 보여서 리더가 뭐라고 하진 않을까?"



'바쁘게 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조직에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 분명히 존재했고, 그러한 인식에 대해 개개인은 분명히 합리적이지 않고 올바른 판단이 아니라는 인식은 가지고 있었지만, 집단의 압력으로 인해 '어쩔 수 없다'고 '해야만 한다'고, '그래서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집단 차원에서 존재하는 믿음은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지 그 기원이 불분명하다.

보통 구성원들은 그 믿음을 '리더'에게서 찾는다.



"그때 보니까 리더가 ~~~라고 말하더라. 그래서 절대 ~~~하게 결정할 수 없다."


"지난번에~~~ 와 같은 상황에서 리더 표정이 별로 좋지 않더라. 다음부터는 반드시 ~~~ 해야 한다."



위와 같이, 많은 상황에서 조직 구성원들은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리더의 의도를 찾아 맞추려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리더는 결정을 하는 사람이고, 

조직 안에서는 분명히 결정을 위한 절차가 존재하며 

각자 본인이 가지고 있는 역할과 책임 범위 안에서 결정의 수준이 다를 수 있음을 이해한다. 



문제는, 

충분히 본인의 역할과 책임 범위 안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까지 타인에게 돌리는 태도다. 

본인에게 주어진 자기결정권을 포기하는 것은 누군가의 결정을 따르겠다는 순응으로 이어진다. 



이때의 순응은 

'순순히 응하겠다'는 의미의 순응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어쩔수 없이 응해준다'는 표현이 조금 더 적절할 것 같다.

좀 더 격하게 표현하면



'이건 분명히 너가 하라고 해서 하는 거야. 난 책임 없어. 그러니까 무슨 일이 생겨도 나한테 뭐라고 하지 말라고. 그저 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니까.'



이런 마음이 아닐까. 






멤버들과 이야기를 마치고 

얼마 안 있어 A리더와 점심 식사를 했다. 



많은 구성원들 앞에서 냉철하고 예리하여, 무섭다고 소문난  A리더이지만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열려있는 개방적인 리더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우리 회사에서 처음 조직문화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실은 A리더가 적극적으로 추진한 덕분이었다. 



그 자리에서 A리더에게 슬쩍 솔직한 질문을 해보았다.



"OO조직 구성원들이 조직문화 활동에 참여하기를 어려워하는 것 같은데. 혹시 알고 계신가요?"



때 마침, A리더도 최근의 조직문화 활동에 여러가지 생각이 많았던 모양이다. 

조직문화와 관련해 속 깊은 이야기를 A리더와 나누었고, A리더는 한숨 푹 쉬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도 알아, 다 내탓이지 뭐. 분명히 또 직원들이 나 팔았을거 아니야."



이 말에 큭큭 웃으며 내가 원하는 요구사항을 또 한번 슬쩍 꺼내놓는다.



"직원들이 그렇게 오해하고 있다니까요. 그럼 이번에 OO프로그램 하는데 진행 한번 맡아주세요. A리더님이 진행해주시면 구성원들 호응도 좋고  참여율도 더 높아질 것 같은데."



그렇게 이번 달에 계획되어 있던 

조직문화 프로그램은 A리더의 진행으로 

지난달 보다 더 많은 직원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참, 

멤버들과 논쟁이 있었던 토커 섭외 부분은

중간 지점에서 합의를 봤다. 



A리더에게 프로그램의 목적과 취지, 우리의 방향을 잘 설명한 후에 

'토커 섭외는 우리가 자율적으로 하겠다, 우리에게 맡겨달라'고 말씀드리는 방법으로. 



점심을 먹으며 이 부분을 이야기했더니 A리더는 되려 

'왜 직원들이 그것도 자기가 결정을 못하냐'며 

'본인의 역할을 평소 성실히 한 직원이 조직문화 활동에 참여하는 걸 가지고 누가 뭐라고 하느냐'

'오히려 본인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책임을 지지 못하는게 이상한 것 아니냐'며 

되려 내게 울분섞인 호소를 하였다. 




A리더는 구성원들이 조직문화 활동 참여에 부담감을 느끼는 상황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자신의 의도와는 다르다 할지라도). 구성원들은 자기 결정권을 포기하고 그 원인을 리더에게로 돌리면서 자신의 선택과 감정을 리더가 결정할 수 있음을 인정하였다.



마셜 로젠버그는 어떤 일이든 강요 때문에 하면 모든 사람이 그 대가를 치른다고 경고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가지는 느낌의 원인이 결코 상대방이 한 행동에 있지 않으며 

내가 어떻게 느끼냐는 나의 선택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가는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나의 느낌은 어디에 기인하는가?그것은 현실의 세밀한 관찰을 통해 나에게 다가온 느낌인가? 알 수 없는 집단의 압력에서 오는 부담인가?

나는 어느 상황에서 죄책감을 느끼는가? 그것은 어디에서 오는가?

내가 '해야한다' 또는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특별한 압력에서 오는 것은 아닌가? 

나는 지금 어떤 느낌과 감정을 선택하고 있는가? 그건 진실로 나의 선택인가? 




해야만 하는 일은 하지 마세요.
놀이가 아니면 하지 마세요.
그것이 삶에 기여하고 여러분이 그것이
어떻게 삶에 기여하는지를 본다면
그것은 놀이가 될 겁니다.
 그것이 고된 노동일지라도 놀이가 될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강제하지 않고도
사람들이 배울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평가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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