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랜딩인가HR인가 Jan 14. 2020

조직문화와 리더십 교육으로 변화가 어려운 이유

경영과 조직의 목적에 대한 단상, 이윤추구에서 이웃추구로 

수많은 조직문화 활동과 리더십 교육을 진행해도 사람과 조직이 잘 변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전 그 이유를 개인과 조직이 가지고 있는 가정에서 찾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경영’과 ‘기업’에 대해  개인과 조직이 가지고 있는 정의가 요즘 시대의 조직문화 활동이나 리더십 교육과 핏(fit)되지 않는 겁니다. 



보통 경영의 목적이 무엇이냐? 혹은 기업의 존재 이유가 무엇이냐? 고 물어보면 많은 분들이 자연스럽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윤추구’라고.  경영학원론 책에서 보았을 법한 기업의 정의를 읊습니다. 기업은 이윤추구의 집단이라고. (저는 학부 때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실제 경영학원론 책에 이러한 정의가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디에서 보았는지, 누군가 나에게 말을 해주었는지 잘 기억이 나진 않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하여튼 우리가 다니는 직장에서 중요하다고 하는 성과는 곧 ‘이윤추구’이니까요. 



이 말이 불편하게 들리시는 분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답변을 합니다. ‘가치추구’라고. 경영과 기업의 목적은 고객에게 좋은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거죠. 고객에게 훌륭한 가치를 제공하려고 노력을 경주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따라오는 게 성과고 이윤이라는 겁니다. 뭔가 더 있어 보입니다. 대놓고 이윤추구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근사해 보이기도 하고 본질에 접근한 것 같습니다. 



아래 질문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겠습니다. 



경영(기업)의 목적이 가치추구라고 한다면, 왜 가치를 추구해야 하나요? 


가치를 추구해서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이길래 좋은 가치를 만들려고 그렇게 애를 쓰는 걸까요? 단지 돈(이윤)이라고 한다면 부동산과 펀드, 잘 나가는 해외 주식에 투자하고 건물 몇 개를 매입해서 따박따박 들어오는 임대수익을 얻는 것이 골치 아픈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것보다 확실하고 편한 방법일 텐데, 왜 기업은 투자를 하고 사람을 채용하며 일자리를 만들까요? 



저는 기업에서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이유를 어떠한 의미를 만들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의미의 핵심은 ‘관계’입니다. 고객과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 그 관계를 통해 지속적으로 가치를 주고받는 것. 그래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 그것이 궁극적으로 기업이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경영은 그 자체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고, 그 목적은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겁니다. 곧, 경영의 목적은 ‘좋은 이웃’이 되는 것입니다. ‘이웃’이 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치를 전달한다고 할 때 ‘내가 너에게 이런 것까지도 해줄 수 있어’의 느낌처럼 거들먹거리며 마치 아량을 베푸는 것처럼 주는 것이 아닙니다. 별것 아닌 음식이지만 예쁜 그릇에 정성을 담습니다. 두 손에 안고 조심스럽게 이웃집 벨을 누릅니다.  “안녕하세요! 이거 우리 했는데 생각나서 좀 가지고 와 봤어요. 한번 맛보시겠어요?”라고 반갑게 인사하며 말을 건넵니다. 그렇게 살가운 이웃이 되는 겁니다. 



관계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관계에 따라 거리가 다 다르죠. 매일매일 보고 싶은 관계, 매일 만나지만 서먹한 관계,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관계, 과거에 친했지만 어떤 계기로 서먹해진 관계 등등. 누군가에게 가치를 전달하고 꽤 괜찮은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1년에 한두 번 만나지만 만날 때마다 반가운 관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경영의 목적이 ‘꽤 반가운 사이인 이웃’을 만드는 것이라면 조직은 ‘서로가 좋은 이웃이 되는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직 안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와 구성원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이웃입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회사에서 만나서 서로가 ‘대리님, 과장님, 부장님’이라고 불리며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사회 안에서는 모두가 이웃입니다. 이웃은 ‘나란히 경계가 붙어있는’ 또는 ‘가까이 사는 사람’이란 뜻이니까요. 



이웃의 특징은 만나고 헤어진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헤어짐은 언제가 될지 모릅니다. 옆집에 살던 명철이네가 어느 날 갑자기 이사 가고, 그 자리에 아름이네가 이사를 와서 다시 이웃이 됩니다. 내가 원한다고 머물고 내가 원하지 않는다고 떠나지 않는 것이 아니죠. 가까운 이웃이 이사를 가면 가슴 한켠이 시큰하고 뭔가 섭섭하지만 이후에 어디에 가서든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길 빌어줍니다. 또 어디에서든 인연이라면 만나겠거니 하지요. 



그런데 한 동네에 바로 이웃에 붙어살면서도 이웃이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철저하게 문 걸어 잠그고 사는 경우죠. 이사 온 지 1년이 넘게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릅니다. 부부가 중학생 자녀와 함께 사는지, 신혼부부가 사는지, 아니면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가 혼자 사시는지 전혀 알지 못하죠. 알 수 없는 경계심과 고립감이 두 집의 대문을 드나드는 사람들 사이에 출렁입니다.



이웃이 이웃이 되려면 김장철엔 김치도 가져다주고, 어느 날 저녁에 부침개도 가져다주고 해야 됩니다. 평소에 서로가 교류를 하는 것이죠. 매일매일 만나진 않더라도 가끔 만났을 때 반가운 관계가 우리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이웃입니다. 이웃은 서로의 존재감을 인정하고 확인해줍니다. 그렇게 서로에게 의미가 되어주고, 조금 더 끈끈한 관계를 맺습니다. 




조직문화 활동과 리더십 교육은 경영의 목적을 ‘이윤추구에서 이웃추구로 전환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객을 소비를 통해 우리 회사의 수익을 올려주는 객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가치를 함께 공유하고 있는 이웃이라고 보는 것. 구성원을 돈을 벌기 위한 자원으로 보지 않고, 함께 성장하며 가치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이웃이라고 보는 것. 이러한 관점의 전환이 일어나야 합니다.



조직에서 ‘애자일’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수평적인 조직문화’ 이야기도 많이 하고요. 애자일과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지향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구성원들을 주체적인 의사결정자가 되도록 돕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호칭을 변경하고 유연근무제를 시행하고, 근무복장을 바꾸고,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개선하는 활동들의 지향점은 빠르고 민첩한 조직을 만드는 것이고. 빠르고 민첩한 조직은 구성원들이 각자의 역할에서 가장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주도적으로 해주었을 때 가능합니다. 



조직문화 활동과 리더십 교육의 방향이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위해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경험과 역량을 배양하는 것’이라면 구성원들의 역할을 이윤추구가 아닌 이웃 추구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경쟁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선택을 하도록 해야 할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더욱 살갑고 반가운 존재가 되고 의미있는 존재가 되어 신뢰로운 관계를 구축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한 정의와 관점이 조직 내에서 경영진을 포함한 모든 구성원들에게 클릭되지 않고, 주파수가 맞추어지지 않았다면 멋진 가치를 추구하며 동료와 구성원의 성장을 돕고 빠른 의사결정으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구축하기는 어렵습니다. 회사나 리더는 이윤추구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조직문화 활동이나 교육 장면에서는 이웃추구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중 메시지의 오류는 많은 조직들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윤추구에서 이웃추구로의 관점 전환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요? 이 부분은 같이 한번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브랜딩스러운 조직문화 이야기] 오픈 세션에 초대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