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책, 그 녀석을 처음 만났을 때의 기록
± 60초 동안의 책과의 첫 만남 경험을 기록하다
1. 만나기 1분 전
3일간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집,
거실 한쪽에 덩그러니 네모 반듯한 택배 박스가 놓여있다.
인쇄소에서 직접 발송된 저자용 출고본.
옷도 갈아입을 생각을 하지 않고
냉큼 커터칼을 찾아
살금살금, 동시에 재빠르게 박스 테두리에 선을 그어 분해한다.
2. 첫 만남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표지를 매만진다.
앞뒤로 뒤집어 가면서
가운데 세 손가락으로 살살 문질러도 보고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어도 본다.
표지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사람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익숙한 그 사람이다.
인쇄소에 들어가기 전 수많은 후보자들을 제치고
최종 표지의 모델로 선정된 바로 '그' 다.
그 사람의 머리부터 시작해
손과 입까지 천천히 선을 따라
왼손 검지로 훑어본다.
그리고 그의 모습을 따라,
오른손 주먹을 쥔 채 검지만 어딘가를 가리키는 모양새로
나도 책상에 턱을 괴고
한번, 따라서 자세를 취해본다.
3. 첫 만남, 30초 후
표지를 젖혀
이미 여러 번 확인했던 날개 부분의
저자 프로필을 다시 한번 한 글자 한 글자 뜯어본다.
처음의 서너 장을 오른쪽 손 엄지와 검지로 매만지며
종이의 질감을 느껴본다.
'어? 이전과는 다르다?!'
반질반질 하면서도 서걱서걱한 느낌이다.
손가락 지문의 결에 따라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꼿꼿함이 만져지기도 하고
신기하게도,
적당한 시간을 머금은 넉넉함도 동시에 만져진다.
4. 45초 후
왼손으로 표지를 받치고,
오른손으로 뒤표지를 괸 다음,
오른손 엄지 손가락으로 '촤르륵' 페이지를 넘긴다.
적당한 곳에서 페이지 넘기기를 멈춘다.
194페이지다.
두 손으로 책을 들어
상단에서 약 2센티 미터 정도에
코 끝을 대고 숨을 들어마셔 본다.
왠지 똑똑해질 것 같은 종이 냄새 사이로,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잉크 냄새도 나는 듯하다.
5. 1분 후
가장 마지막 페이지를 열어본다.
초판 1쇄 인쇄,
초판 1쇄 발행,
지은이,
펴낸이,
편집,
....
ISBN을 지나
'책값은 뒤표지에 있다고' 알려주는
친절한 안내 문구 까지.
뒤표지를 열어젖혀
가장 하단에 촘촘하게 박혀있는 바코드를 확인한다.
옆에는 자그마한 글씨로
책 가격이 적혀있다.
값 15,000원.
'책의 가격을
독자가 마음대로 책정할 수 있다면
과연 이 책은 얼마가 될까?'
'읽은 사람이 느낀 대로,
책의 가치가 개인에 따라 모두 다르게 매겨진다면,
이 책은 얼마만큼의 가치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만약, 나는 가수다 처럼
나는 작가다-라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어떨까.
혹은 쇼미더머니 처럼
쇼미더라이팅 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당대 최고의 작가들이 나와서
매주 짧은 글을 지어서 각자 낭독하고
시청자 (또는 청취자)의 투표를 받는다면,
과연 내 글은 얼마큼의 투표를 받을 수 있을까,
아니 그런 대회를 나갈 수 있기나 할까?'
회사에서 또 다른 회사로 옮기는 시점,
잠시 한량이 되어 그런지
이와 같은 쓸데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6. 다시 문득-
어쩌면,
퍽 다행이란 생각도.
아직까진 책값이 정찰제여서 말이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
고정 금리와 변동 금리를 고민하듯,
저자가 자신이 쓴 책의 가격을
고정비와 변동비 중 고민하게 되는 세상이 오려나.
풋.
쓸데없는 생각이다.
재미삼아 제 책과의 첫 만남을
'재구성'하여 글로 옮겨봅니다 :)
<조직문화 재구성, 개인주의 공동체를 꿈꾸다>
공식적인 발행일은 3월31일 입니다.
인터넷 서점들에서는 어제부터 구입이 가능해졌고,
오프라인에서는 아마도 내일(3/27)부터
입고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고로,
예스24에서는
<그래서, 인터널브랜딩>과
<조직문화 재구성, 개인주의 공동체를 꿈꾸다>를
세트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http://www.yes24.com/Product/Goods/89723873?Acode=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