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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딩인가HR인가 Apr 13. 2020

조직에는 '불완전함에 대한 가정'이 필요하다

새로 이직한 회사의 교육 자료를 보고 필받아 쓴 글 

누구나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개인이 집단을 이루어 모여있는 조직이라면 불완전함은 더욱 쉽게 가려진다. 불완전함을 삼킨 채 이루어지는 집단에서의 논의는 언제나 예측 가능성과 확실성을 전제로 이루어진다. ‘전략(Strategy)’과 ‘계획(Plan)’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그러한 논의는 집단 안의 개인들을 착각 속에 빠뜨린다.



‘확실한 예측’에 근거한 전략과 계획을 세우는데 본인들의 시간과 자원을 쏟아부은 집단의 개인들은 조직이 자신들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며 스스로를 치켜세울 것이다. 그중에 몇몇은 어쩌면 조만간 컴퓨터 바탕화면의 휴지통 속으로 사라질 그들의 결과물이 본인의 헌신과 기여 덕분이라며 으스댈지도 모른다. 단지 하루 일곱 시간 잠을 자고 일어나서도 그 이전과 다른 생각을 하고 전혀 엉뚱한 선택을 하는 인간이지만, 인간은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망각한 채 미래를 예측하고자 애를 쓴다.




망상이 된 목표


과거와 현재를 근거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실천을 월 단위, 주 단위로 기록한다. 실은 목표라는 것은, 조직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같이 그리고 있는 꿈이자, 함께 나아가야 할 도착지였다. 목표는 지금에 집중하고 일이 단순히 노동으로 끝나지 않고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완성과 발견에 도움을 주는 데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으며 현재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빠지고, 그저 습관적으로 작성된 계획과 몇몇 숫자로 점철된 목표를 반복적으로 맞닥뜨리며, 목표는 꿈이라기보다는 ‘망상’에 불과해졌다. 효율성과 생산성은 숫자가 범람하는 목표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명분이 되었고, 점점 조직은 인간성을 상실한 채 개인들은 창고에 잔뜩 쌓인 부품들처럼 하나의 자원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렇게 조직에서 ‘불완전함에 대한 가정’이 사라져 버림으로, 인간이 조직에서 인간답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은 상실되었고 일터는 자아실현의 공간이 아닌 이익추구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 (※이와 관련된 내용은 최근 관심을 받고 있는 조직문화 책 '조직문화 재구성, 개인주의 공동체를 꿈꾸다' 참고ㅋ)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310907




오늘 회사의 HR 포털에 있는 New-Employee Welcome 교육 자료를 살펴보며 신선한 자극을 받아서 이와 같은 글을 쓰게 되었다.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조직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회사의 공식 자료에서 불완전함과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가치지향적인 선언’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메드트로닉은 VBHC라고 하는 ‘가치 기반 헬스케어 개념(Value-Based Healthcare Concept)’을 주장한다. 크게 두 가지 개념이 있는데,



하나는 지금보다 더 낮은 비용으로 환자 중심 가치를 기반으로 산업이 진화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료 비용과 환자의 결과에 대해 직접적으로 책임을 공유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VBHC의 철학을 기반으로 메드트로닉은 아래와 같은 4가지 내용을 선언한다.



We believe the current healthcare system is not sustainable.

우리는 현재의 의료 시스템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믿는다.

We accept and support that there will be new delivery and payment systems.

우리는 새로운 배송과 지불 시스템이 있음을 인정하고 지원한다.

We have a responsibility and opportunity to influence the future of healthcare.

우리는 헬스케어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책임과 기회를 가지고 있다.

We will engage partners all along the way.

우리는 이 과정에 파트너들을 참여시킬 것입니다. 



메드트로닉은 헬스케어 분야, 특히 의료분야에서 의료기기와 솔루션을 서비스하는 회사다.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현재의 의료시스템을 지속 가능하게 도와준다고 야심 차게 뻥카(?)를 날릴 수도 있었을 텐데, 첫 번째 선언에서 의료 시스템이 지속 가능하지 않음을 믿는다고 선언함으로써 계속해서 고민하고 환경에 대응하며 목표를 진화시켜 나아가야 하는 숙명(?)이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목표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도 글로벌 마켓 1위로서의 책임을 떠안고 묵묵하게 혼자 감당해 나가겠다고 선언하지 않는다. 기꺼이 헬스케어의 미래에 책임과 기회를 나눌 파트너들을 참여시키겠다고 선언하며 파트너십(협력)을 강조한다.



위의 선언에 이어서 다음의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We also recognize that no one can solve the world's healthcare challenges alone. As we've illustrated, partnerships are key as we move our strategies forward and as an employee, you are expected to take part in building relationships and advancing these shared goals. Only through collaboration and partnership can we all achieve the benefits of value-based healthcare. As a new Medtronic employee, you are part of this!




헬스케어 문제는 누구도 혼자 해결할 수 없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공유된 목표를 진화시켜 나가는 협력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실제 조직 안에서 가치와 철학이 작동되는 것은 다른 문제이지만, 조직 안의 공식적인 자료에 회사가 비즈니스를 이해하고 직원의 역할을 이야기하는 철학이 담겨있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마지막에 ‘목표를 달성하라!(Achieve it)’고 이야기하지 않고, ‘목표의 일부(Part of this)’라고 맺음으로써 직원이 목표의 수단이 아닌 비전 달성의 파트너이자 변화의 한 축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아 구성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회사를 옮기고 이제 열흘 정도 일을 했는데, 그 사이에 조직문화 차원에서 많은 것이 새롭게 느껴지고 다가온다. 아직 각각의 현상과 풍토가 어떤 배경에 근거하는지, 가정은 무엇인지, 그리고 의사결정의 주요 고려 사항은 무엇으로 꼽을 수 있는지 설명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이전에 내가 경험했던 조직들 보다 훨씬 더 lean 하고 flat(빠르고 수평적) 하다는 것이다. (빠르고 수평적이라는 것은 또 다른 관점에서는 체계가 없고 불명확하다는 이야기일수도…)



시간이 지나 새로운 회사에서 경험한,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야기들을 조금씩 풀어놓도록 하겠다.


조직문화에 관심이 있어서 종종 조용히 이 브런치에 들르시는 이들은 관심 가져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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