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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딩인가HR인가 Jun 02. 2020

가족에게 필요한 스피크업(Speak-Up)은 무엇일까

회사와는 조금 다른 집 안에서의 스피크업에 대하여 

회사의 현업 부서에서 온 디맨드(On Demand) 교육 요청이 있어서 강의 자료를 만들고 있는 중- 


교육의 핵심 주제는 '스피크업(Speak Up)'이다. 즉, 조직 안에서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표현하자는 것. 


많은 교육의 주제들이 그렇듯, 스피크업 그 자체는 실은 결과적인 모습이다. 명확하게 자신의 의견을 소신 있게 말하고, 불편한 사항이 있으면 용기 있게 문제를 지적하고, 건설적인 아이디어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교육을 받고 나서 변화되었으면 하는 행동들. 


넓은 시냇가를 건너기 위해서는 튼튼한 징검다리가 놓여있어야 하고, 이왕이면 돌과 돌 사이에 좁은 보폭에도 쉽게 걸음을 옮길 수 있는  디딤돌이 필요한 것처럼, 





조직 안에서 이전과는 다른 변화된 행동들이 나오기 위해서는 그 행동들이 조금 더 쉽고 편안하게 나올 수 있게 도와주는 크고 작은 디딤돌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돌 들을 하나의 맥락과 스토리로 엮어 튼튼하고 편편한 징검다리로 만드는 일은 기획 단계에서 꽤나 시간을 쏟아야 하는 작업이다. 


몇몇 보기 좋은 돌들을 모아, 더 번듯한 징검다리를 만들기 위해 딸깍딸깍 마우스를 클릭하며 파워포인트의 슬라이드를 요기 두었다가, 저기 두었다가, 고개를 저으며 다시 원래대로 Ctrl + Z 를 누르곤 한다. 



준비한 몇 개의 돌들 중 '애빌린의 역설(Abilene Paradox)'라는 것이 있다. 



한 집단 내에서 그 집단의 모든 구성원이 각자가 다 원하지 않는 방향의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함께 자신의 의사와 상반되는 결정을 내리는 데 동의하는 역설을 뜻하는 것으로,  조직 내의 '집단 사고'를 꼬집어서 이야기할 때 활용되는 개념이다.


맞어, 이럴 때가 분명히 있어- 라며 한참 지나간 예전의 회의 장면을 반추하며, 역시 조직에는 반대를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과 용기가 중요해- 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우리 집에서의 장면을 떠올려본다. 



가족 사이에도 '반대할 수 있는 의무'는 허용이 되어야 하는가. 

'극단적인 투명성'과 '솔직함'의 가치는 가족 안에서도 늘 유효한 것인가.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책임이 늘어날수록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하고, 내키지 않은 일은 거부하며 내 취향과 욕구를 표현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내는 나의 이런 하소연을 '웃기시네!'하며 한달음에 걷어차버릴지도 모른다) 


특히,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산다면 내 의견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했다가는, 혹시 서로가 섭섭하게 느껴지는 일이 생길까 싶어 더더욱 말을 조심하게 되고, 때로는 지나친 배려로 원래의 마음과 생각과는 다르게 말을 하게 될 때도 있다. 


회사와 같은 조직에서의 개방성은 일과 역할 차원에서 요구되는 것이라면, 가정에서의 개방성은 역할뿐만 아니라 전인격적인 차원에서 고민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상실에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했는데, 사랑과 배려라는 이름으로 내가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법도 점점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퍽 서글퍼진다. 


어머님이 늦은 저녁에 '뭐라도 먹을 것 챙겨줄까?' 하시며 물으실 때, 우리 아기가 밖에 나가자고 대문을 수도 없이 쾅쾅 두드릴 때. 가끔, 하루 종일 아이에게 시달린 아내가 내게 예민하게 반응할 때, 내게 필요한 건 괜찮다거나, 안된다거나, 왜 이러냐는 반응이 아니라 내 감정을 솔직하면서도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감사하다고, 고맙다고, 힘들었겠다고. 그리고 때로는 힘들고, 어렵고, 부담되고, 망설여지는 내 마음을 조금 더 부드러운 언어로 표현하는 것. 나의 실수를 조금 더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힘겹게 살아내고 있는 우리 가족들이 (아기를 포함하여) 더 힘을 낼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에게 온전히 기댈 수 있도록 온 맘 다해 표현해 주는 것.


가족에게 필요한 스피크업은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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