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봄날
엄마의 소원은 이혼
어렸을 때, 내가 사는 시골에는 이혼이 참 귀했다.
도박, 바람, 폭력 3대 악행을 하는 남편을 만나도
그 집 귀신이 되거나
일부종사해야 된다는 신념으로
까막눈 우리 어머니들은 지독하게 참고 살았다.
시골 사람들이 촌스럽고 무식해서 이혼 같은
모던하고 도회적인 법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혼합의서가 마을 이장님 도장을 받는 것도 아니고
면사무소에서 찍어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즈음 나는 좀 배운 젊은 사람들이나
하는 게 이혼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때
얼굴이 뽀얀 친구가 전학을 왔는데
부모님이 이혼하고 할머니랑 산다고 했다.
그 친구를 보고 쟤 외롭겠다 라는 생각보다
'도시에서 살다 왔나? 부모님이 젊으신가?'
다른 쪽으로 관심이 쏠렸다.
거기다 친동생이랑 떨어져 산다는 상황도
나에게는 대단한 상상력을 요구했다.
우리 부모도 떨어져 살면서 주렁주렁한 자식들을
나눠 키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였다.
우리 부모는 죽네 사네 싸워도
못 배워서 이혼 같은 건 못하겠지,
안타까워하던 조숙한 어린 시절이 있었다.
가끔 친정언니에게
이래 이래서 이혼하고 싶다고 말하면
그래, 이혼하고 편하게 살아.
나도 언니가 이혼한다고 난리 칠 때
그래, 살아서 못하면
죽어서라도 하는 게 이혼이야
편하게 살아.
이러면서 우리 자매는 서로의 이혼을 부추겼다.
살아생전 엄마는 너희 아버지랑
이혼하고 싶다고 줄곧 노래하셨다.
다 큰 자식들은 지 살기 바빠서
어느 자식도 엄마의 소박한 노래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까막눈 엄마는 이혼은 하고 싶었지만
할 줄 몰라 못 하셨다.
결국 이혼 없이 끝까지 사시다
하늘 도장받고 자연 이혼이 되었다.
엄마가 못 다 이룬 그 소원,
제가 이뤄드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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