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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기록 Dec 31. 2020

워킹맘 퇴사 한량주부의 길



“왜 갑자기 그만두세요?”


한 달 전, 나의 갑작스러운 퇴사 소식에


오랜 거래처 직원이 물었다.


나는 이런저런 구차한 변명을 둘러대기 싫어서,


“저 하나 안 벌어도 먹고 살만해서요.”


쏘 쿨하게 대답했다.



거래처 직원은 아내에게,


‘내가 먹여 살릴 테니


걱정하지 말고 집에서 편히 쉬어’


하며 어깨에 힘주고 싶다며


부러운 기색을 내보였다.



나는 맞벌이를 해도


살아내기가 버거운 대한민국에서


내 어깨에 짊어진 짐을


기어코 남편 어깨에 올려놓고야 말았다.



내가 지난달 퇴사를 하고


온전히 전업주부가 된 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목적이 있어 그만둔 건 맞지만


그렇게 갖고 싶었던 나만의 시간이


손에 쥘 수 없을 만큼 넘쳤지만


이 시간을 어떻게 무얼 하며


보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전업주부가 되고서


한 몇 주간은 날아갈 듯이 행복했다.


그동안 육아와 직장 다니느라


누리지 못한 게으름을 피워봤는데


게으름의 끝은 달콤하지 않았다.


나에게 즐거운 한량 기질은 없는 건가?



워킹맘으로 일할 때는


하루 중 한 시간도


나만의 시간이 없다는 것에 숨통이 막히고,


이 지긋지긋한 직장을 때려치우면


뭐도 하고 뭣도 해야지 하며 계획도 세웠었다.



하지만 전업주부 생활 한 달만인 지금,


무한하게 느껴지는 시간 속에서


뭘 해야 할지 몰라


아침부터 갈팡질팡하고 있다.



어제는 남편의 월급날이었다.


남편의 월급만으로 이것저것 빼고


얼마 남지 않은 잔고를 들여다보니


외벌이의 현실을 빤히 보게 되었다.



한 푼이 아쉬운 생각이 들자


지난 주말 대형마트에서


특별행사가로 판매하던 꽃게를


기를 쓰고 사 먹은 게


그렇게 후회가 되었다.



그리 넉넉하지 않은 남편의 벌이와


한창 일해도 못 자랄 판인 30대 후반에


집에 눌러앉은 나의 무책임한 모습에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내 몸 하나 편하자고 남편에게


무거운 짐을 얹어 준거 같아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어떻게든 하루는 가고,


그동안 바지런히 살아왔으니,


이왕 쉬는 거 한 달은


아무 걱정 말고 푹 쉬자고


마음을 다잡는데도


내 마음은 돌아앉은 시어머니 같다.



나는 불행감인지 고독감인지 모를


이상한 감정에 눌려 기를 펴지 못했다.



비록 전셋집이지만


따뜻하고 번듯한 집에,


가족을 아끼는 성실한 남편과


보석 같은 어린 자식을


두고도 초조해하며, 불안에 떨었다.



당장 일을 하지 않으면 생계가 막막한


27살 청년 실업자도 아닌데


자취방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앞으로 뭐 해 먹고 살지를 걱정하던


10년 전 백수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오죽하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텅 빈 집안에서


무거운 시간과 마주할 때면


자식을 다 키워 독립시키고 나면 이런 기분일까?


하며 쓸데없는 공상까지 했다.



집에서 편히 퍼더버리고 앉아서


없는 걱정거리만 만들어가는


내가 노답이다.



일의 부재가 사람을


이토록 처량하게 만드는지 몰랐다.


비록 돈벌이가 되지 못하더라도


자신을 가장 자신답게 만들어주는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싶다.



행복은 물질이, 누군가가 대신


가져다주지 않는다.


내 삶 속에서 스스로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 내 인생의 과제다.


오늘부터 성실히


오늘의 과제를 풀어나가 보겠다.



즐겁고 보람된 하루를 보내면서


비축한 생기 발기한 에너지를


가족들과 나누고 싶다.






이상, 5년 전에 쓴 글이다.


내가 이런 우울하고 젖은 걸레짝


같은 글을 적었단 말이야?


착한 감성이 물씬 풍겨 난다.


남편이 보면,


‘거짓말로 소설을 썼네’ 하겠다.



그 후 5년, 나는 전업주부가 아닌


주부 한량으로 전향했다.


한량 주부는


전업주부의 삶과는 다르다.



내 인생 요즘같이 꿀 같은 날이 없었다.


집에서 꿀 빨면서 아무도 쓰지 않는


세상 쓸데없는 글을 많이 쓰고 싶다.



#전업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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