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확장
나.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쓰는 나.
다른 사람이 나를 부를 때의 글자. 가 이름이라면, 내가 지은 나의 이름은 뭐라고 할까?
나의 아이는 (지금의 자신을 부정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지만) 스스로가 불리고 싶은 이름이 있다. 아마도 바라봐주었으면 하는 시선이 있는 것 같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일까.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은 모양이 있고, 풍기고 싶은 향기가 있고, 내가 정해진 모습 그대로를 다른 사람이 봤으면 하는 마음.
그렇다면 내가 보이고 싶은 모습은 무엇일까.
나는 금전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다.
그리고 매너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고, 또 실제로도 그러고 싶다.
안정적이고 싶고, 따뜻하고 싶다. 선선하고 싶고 한편으론 차갑고도 싶다.
뜨겁지만 쿨한 사람이고 싶고, 돈은 없지만 여유 있는 사람이고 싶다.
비밀은 없지만 신비로운 사람이고 싶고, 진실한 사람이지만 더 알고 싶은 사람이고 싶다.
그런 매력이 있는 사람이고 싶다.
나의 과거를 돌아보면.
어릴 때 나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 안에서 자랐다.
아빠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이유가 ‘네가 뭘 잘해서’라고 설명했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뭘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나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어떤 이유를 대고 좋아한다는 것은 너무 멋이 없잖아.
그냥 나 자체를 좋아하는 표현이 더 진실하고 멋있고 어쩌면 쉽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의 내 생각으로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자체가 힘이 들어가고 소모적이고 마음을 주는 일인데, 그때의 나는 참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웃긴 건, 나는 어릴 때 나를 좋아했던 남자아이들을 왜 그렇게 냉대했을까.
나를 좋아한다는 고백을 받으면, 그 아이에 대한 호감은 물론이고 작은 친밀감까지도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이 심리는 무엇이었을까. 예전에는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 변명만 했었지만, 이제는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려고 한다.
왜 그랬을까?
그 일이 지금이라고 하면, 고맙다 할 것 같은데 그때는 왜 그랬을까?
그때의 나도 나고, 지금의 나도 나라서,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어쩌면 지금의 나도 내가 속이고 있는 걸까?
이유를 생각해 보자.
추측 1. 내게 좋아한다고 고백한 아이들은 모두 공개고백이었다.
많은 아이들 앞에서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여러 아이들에게 나를 좋아한다고 소문을 냈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은 나를 좋아한다는 그 아이에게 놀리듯이 이야기하고는 했다.
놀림이 싫었거나, 놀림 때문에 나를 좋아하는 그 아이의 진심이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았거나.
추측 2. 나를 좋아한다는 고백을 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얻었다는 생각이 나를 교만하게 했다?
사람의 마음을 얻었다는 확신은, 시소처럼 내게 기운다.
더 무거운 쪽이 된 나는 바닥으로 내려오고, 반대편에 앉아 하늘로 우뚝 솟은 상대의 마음도 왠지 가벼워져 보인다.
추측 3. 나는 누군가의 마음을 얻어내고 싶은 승부사다?
이미 얻은 마음이라 생각되면 내가 더 얻어낼 것이 없어 흥미를 잃는 승부사인가?
어릴 때 내게 고백했던 남자아이들의 고백을 듣는 순간 그 아이가 싫어지는 매직의 이유는 아마 더 셋 중에 있을까.?
그저 ‘싫어, 아몰랑 싫으니까 싫어 ‘ 였다면, 이제는 그 싫음의 이유가 나에게 중요한 것 같다.
싫다면 왜 싫은지. 좋은 건 왜 좋은지.
이유를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나를 알아가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과거 한 부분의 이유를 생각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