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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주일기 Aug 16. 2024

주문이 틀리는 식당

치매와 공생할 수 있다는 희망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일본 출장길에 올랐다. 

대한민국 치매 환자 100만 시대를 주제로 한 이번 다큐멘터리에 선진 사례가 필요했기에 

세계 최고령 사회이자 치매 400만 시대를 맞이한 일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치매와의 공생을 선언했고 

치매 환자들의 인권과 기본권 보장을 위해 노력 중이다. 

그 예로 20년 전부터 일본에선 이제 더 이상 치매 환자들을 

‘치매’라는 단어로 차별하지 않고 있다.  

치매(癡呆)의 한자 뜻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어리석을 치(痴, ), 어리석을 매(呆) 

이러한 이유로 일본은 치매를 '인지증'으로 바꿔 부르는 중이다. 


이처럼 우리보다 앞선 일본의 변화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사례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아주 흥미로운 식당을 발견했다. 

'주문이 틀리는 식당'

눈치가 빠른 사람은 이곳이 어떤 식당인지 알 것이다. 

그렇다. 이곳은 치매 환자들이 종업원으로 일하는 곳이었다. 

더욱 흥미로운 건 정부가 운영하는 것이 아닌 한 개인이 스스로 만든 식당이라는 것이었다. 

  

인적이 드문 거리에 위치한 '주문이 틀리는 식당'
주방과 테이블의 구분 없는 식당 내부 


나고야에 위치한 오카자키시 

인적이 드문 거리에 위치한 식당 

오래된 나무 문을 밀고 들어가니 길쭉한 바 테이블이 눈에 띈다. 

오키나와식 소바요리가 메인인 이곳의 주방은 오픈형 주방이며 

그 안엔 40대 초반의 남자 주인장이 바쁘게 요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바테이블은 78세의 할머니가 지키고 있다. 

백발에 아주 연한 보랏빛 물을 들인 할머니는  

손님들이 주문한 메뉴를 그대로 종이에 받아 적은 뒤 주방에 있는 주인장에게 건넨다. 

그러면, 주인장은 테이블의 위치와 주문을 한번 더 확인한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 없이 순조롭다. 

하지만, 주문한 요리가 나오고부터 아주 특별한 상황이 벌어진다. 


요리가 담긴 쟁반을 들고 바 테이블을 한 바퀴 빙 돌며 할머니는 메뉴의 주인을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주문한 사람이 누구인지 잊은 것이다. 그러나 별다른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쟁반을 들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 보면 제주인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마치 리듬을 타듯 이 모든 상황이 자연스러웠고 

이상할 것 하나 없다는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에 

나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뭐지? 그 누구도 불편해하지 않고 그 누구도 당황하지 않는 이 공기는?

나만 이상한 건가?'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내가 주문한 것을 스스로 찾아 먹기도 하지만 그냥 주는 대로 먹기도 한단다. 

설사 그것이 내가 주문한 것이 아니어도 이 정도는 괜찮다는 여유가 공기 속에 흐른다. 

이쯤 되니 이런 식당을 그것도 개인적으로 운영 중인 주인장이 무척 궁금해졌다. 

월급을 줘도 잊어버리니 매일 일당을 지불해야 하고 

누가 뭘 주문했는지를 잃어버리니 매번 주문한 사람을 알려주기도 해야 한다는 주인장은 

이런 것쯤은 불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진짜 불편한 건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집 밖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이라 말하는 다카히로 씨는 

사실 17년간 치매환자를 돌보는 요양보호사로 일했었다.  

 

"저는 정상적인 사람들과의 일하는 것 역시 불편해요."

"치매라서 불편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며 다양한 불편을 겪는다. 

그 과정 속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겪게 된다. 

'인지증'이 있기 때문에 특별히 더 불편하고 힘든 건 아니라는 것이다. 

이곳에서 6년째 근무 중인 노리코 할머니의 업무능력만 봐도 주인장의 말이 이해된다. 

인지증을 진단받기 전까지 오랜 시간 바를 운영해 왔다는 할머니는 

바테이블 앞에선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할 일이 없는 순간에도 수저를 정리하거나 티슈의 각을 잡고 손님들의 물 잔을 채운다. 

이건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하는 습관이다. 

가지런하게 정리된 노리코 할머니의 테이블은 

'우리는 치매와 함께 충분히 살아갈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치매 100만 시대를 맞이한 우리는 뛰어난 IT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치료법과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덕분에, 언젠가는 치매를 정복할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이런 기적을 바라기 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문이 조금 틀려도 괜찮다' 말할 수 있는 여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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