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공기 중의 차가움이 가시지 않은 어느 봄날 우연히 마주친 그녀는 소설 사랑방 손님에 나오는 순박하고 부끄럼 많은 어머니처럼 느껴졌다. 단정한 옷매무새에 약간은 상기된 듯한 수줍음과 미소를 띤 여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봄날처럼 따스한 마음은 가득하지만 어딘지 많은 그리움을 지닌 여인의 마음이 나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어느덧 같은 해 가을의 언저리에서 만난 그녀는 조금은 다른 모습이었다. 봄날의 순수함보다는 오렌지빛깔로 불타오르는 열정을 숨긴 여인으로 변해 있었다. 순간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한 여인이 있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였다. 뉘엿뉘엿 지는 붉은 노을을 바라보는 그녀는 가슴에 열정과 사랑을 가득 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흔들림 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내뿜으며 우뚝 서 있었다. 늦가을 스산함의 농도는 짙어지고 서쪽으로 기울어지는 석양에 그녀로부터 발산되는 사랑의 갈망이 투영되어 한 편의 서사시처럼 감동적이게 다가왔다. 지금도 기억한다. 먼 곳을 응시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배어 나오는 그 쓸쓸함의 향기와 검붉은 장미의 우아함이 만들어 낸 멋진 실루엣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해 겨울 우연히 만난 여인은 긴 치맛자락을 날리며 겨울의 차가운 바람 속에 서 있었다. 부드러움 속에 감추어진 여인의 강인함이 고스란히 배어 나오는 듯했다. 하지만 바스락 거리는 낙엽과 얼음장처럼 차가운 겨울의 공기 속에서 우아함을 잃지 않는 그녀의 고고함이 내 가슴에는 애달프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