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 둘레길이란 걷고 명상하고 자연과 교감하면서 단조롭고 건조한 매일매일의 흔적들을 씻어내거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받는 곳이다. 누구나 자신만이 간직하고 싶어 하는 비밀의 장소 같은 곳이 나에겐 둘레길이다. 그리고 초록이 주는 그 신선함과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에 동화되어 가는 나를 마주하는 곳이 둘레길이다.
그런데 항상 같은 둘레길의 코스를 걷다 보면 똑같은 풍경 속에서 한 번씩 지루함을 느낄 때가 있다. 가끔은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았던 식물들이 갑자기 눈에 띄거나, 새소리를 따라 눈길을 옮기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풍경들이 내 가슴을 뛰게 할 때도 있다.
언젠가부터 무심코 지나치던 돌무더기에 눈길이 머물기 시작했다. 누군가 쌓아 올린 돌멩이들마다 담아 둔 감정들이 나의 마음에 들어와 음악을 울리기 시작했다. 돌멩이 하나하나에 각자의 마음과 소망을 담아 켜켜이 쌓아 올려진 그 모습을 보면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다. 그저 나의 오만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인지 모르지만 돌멩이 하나에 사연과 믿음, 기도 그리고 축복과 갈망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대상에 대한 생각이 깊어질수록 '아차' 하는 순간에 왜곡된 길로 빠지는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생각의 바다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좁아진다는 것을 인생의 길 위에서 배워왔기 때문에 난 가슴을 크게 열고 나의 생각을 배제하고 그저 내 눈에 들어온 그 모습, 그 순간을 포착하고자 노력했다.
어느 날은 스칼렛 오하라를 만났고, 어떤 날은 아기를 안고 있는 사람을 보았고, 어떤 날은 기도하듯이 촛불을 가슴에 안고 있는 이도 보았다. 그리고 어떤 날은 서로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연인도 보았으며, 사랑스러운 가족들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다시 그 자리에 가보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새로운 누군가의 소망으로 쌓아 올려진 새로운 돌탑을 만나게 되었을 때는 '사라짐'이라는 약간의 섭섭함도 있었으나 그 자리에 다시 채워진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만나는 순간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이름 모를 다양한 사람들이 마음을 담아 쌓아 올린 돌탑들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