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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유랑자 Aug 12. 2021

뚱뚱해도 괜찮습니다

타고난 외모에 대한 지적은 칭찬 이어도 실례입니다

한국과 스웨덴에서 느끼는 가장 큰 차이는 외모에 대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점을 자랑삼아 학교에서 가르쳤던 탓인가 단일민족을 넘어 단일외모 단일성격 단일 몸매처럼 다양한 것을 단일화시키려 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정치인들 취미가 단일화인 것처럼 말이다) 우리보다는 조금 다인종 탓인지 몰라도 여러 사람이 그래도 화합해서 살아야 하는지 몰라도 속으로는 어떤지 몰라도 적어도 겉으로는 사람의 타고난 무엇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인종이라던지, 성지향성이나 성 정체성 혹은 타고난 체형, 건강 등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예절에 어긋난 이야기라는 것이다. 마치 한국에서 손아랫사람이 연장자에게 반말하지 않은 수준의 예의이고 매너이고 “교양”이다


특히 외모에 대한 이야긴 칭찬을 독으로 여기기도 한다. 물론 동물도 예쁜 것을 좋아하고 아이들도 예쁜 것을 좋아한다 외국사람도 예쁜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기호나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의에 관한 이야기이다. 특히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있을 때 한 사람의 외모에 대하 칭찬한다던지 어린아이에게 하는 것은 당연히 금기 시 되며 친분이 없는 사람이나 회사 동료라 한들 타고난 외모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없다. 미추를 가르는 언어는 그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사람에 대한 칭찬은 머리를 자른 것 잘 어울린다 라던지 오늘 입은 옷 멋있다 정도로 후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어떠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순 있으나 예쁘다 날씬하다 등등은 할 수없다. 단 할 수 있는 순간은 오로지 연애 때뿐이다. 데이팅 할 때 역시 외모에 대한 칭찬은 교양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외모의 칭찬의 허용범위는 진한 스킨십을 나눈 사이 정도나 데이팅에서 게팅투노 정도로 넘어갔을 때 한다. 사람에 대한 평가를 아무나 할 수 없으며 칭찬도 평가의 영역인 것이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지양하는 것은 칭찬에 매몰되어 아이들의 다른 재능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위험한 것이기에 조심한다 외모뿐 아니라 머리가 좋다 같은 칭찬도 잘하지 않는다. 노력한 것에 대한 칭찬을 주로 하는 편이다. 이런 이야기 하면 다이어트나 체형은 노력의 영역인데?라고 반론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허나 그건 아주 큰 착각이다. 당신이 그냥 건강히 태어난 행운을 기반으로 한 오만이란 이야기이다. 누군가는 운동을 하는 두 다리가 없을 수 있고 소아당뇨일 수도 갑상선일 수도 있다. 겉으로 보아서 누가 그런 지병을 타고났는지 알 수없는데 그것을 다만 노력을 영역으로 치부할 것인가? 누굴 만나서 “저기 건강검진표 좀 주세요 그러면 제가 어떻게 판단할지 알려드릴게요”하지 않은 한(심지어 누구에게도 그런 자격은 없다) 그렇게 함부로 입에 오르내릴 부분이 아니란 이야기이다. 스웨덴에 모 유명한 글로벌 기업에서는 최근에 사내에 “디톡스” “다이어트”등의 단어를 금지시켰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그 단어가 강요로 들릴 수 있고 또한 그것이 인격모독으로 이어지고 몇 명에겐 강박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동의한다. 사람은 단어에 매몰되기 마련이다.


나는 한국에서 말하는 흔히 말하는 모태 마름으로 태어나 병으로 인하여 살이 10킬로 정도 붙었었다. 나는 그 사이에 불특정 다수에게 꽤 많은 오지랖을 들어야 했다. 나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 역시 내 몸매에 대하여 품평하고 그것을 자신의 권리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이것이 살쪘을 때만 그랬을까? 아니다 마르고 날씬한 시절 역시 칭찬인지 성희롱인지 모를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스웨덴에 가서 여유가 좀 더 생기고 혼자 살다 보니 더 좋은 것을 챙겨 먹고 저녁엔 시간이 많다 보니 꾸준한 운동을 하면서 살이 다시 빠졌었다. 특별히 살을 빼고 싶었다기 보단 솔직히 여분의 시간이 많아서 가능했다. 하지만 스웨덴에서는 내가 살이 찌나 빠지나 그것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서로 조심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순수 나의 자기만족만으로 운동할 수 있었다 나의 복근이 얼마나 선명히 보이고 허벅지는 너무 근육질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잣대가 아닌 운동을 해서 무릎이 덜 아프고 허리가 덜 아파지고 이전보다 체력이 좋아지는 이유로 운동을 이어가거나 식단을 이어갔다.


한국에서 정말 미녀라고 부를 만한 지인들 역시 강박처럼 외모에 신경 쓰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더 날씬하고 더 예빠지기 위해 살을 빼고 다이어트를 하고 성형까지 하면서 혹자는 그런 삶의 태도를 자기 관리라 부르며 남에게 강요했다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것인가? 왜 자기 관리는 다만 외모에 국한된 걸까? 정말 외모만이 자기 관리인 것인가?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는 이유만으로 남을 폄하하면서 자랑하는 것은 멘털 관리는 못한 것이 아닌가? 인문학적 교양을 쌓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키우며 환경을 위해 한번 더 소비를 생각하는 것은 자기 관리가 아닌가? 유독 한국에서만큼은 자기 관리가 외모관리에 매몰되는 거 같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외모의 사람들도 넓게 보면 피해자다 그렇다 보니 한국에서 느낀 건 꽤 많은 준수한 외모의 사람들이 스웨덴에 비하여 강박이 심했다. 혹자는 그 이득을 누리기도 하지만 그 이점을 누리기 위해 나보다 더 젊고 예쁜 혹은 잘생긴 경쟁자에 비해 비교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물론 외모로 재화를 생산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는 이해하나 외모가 뛰어나다 해서 전혀 재산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리하게 에너지를 쏟는다는 것이다.


물론 스웨덴도 외모를 전혀 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예전에 큰 스캔들 중 하나가 북유럽의 모 카페 프랜차이즈에서 백인에 키 큰 잘생긴 남성만을 아르바이트로 채용해서 논란된 적이 있다. 적어도 이것이 논란이 되어 화제는 될 수 있단 이야기 이이다(물론 이것은 인종적인 문제도 엮여 있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일상생활을 살아가는데 내 외모가 어떠하든 한국에 비하여 스트레스 덜 받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비단 스웨덴뿐 아니라 웬만한 선진국에서는 지양하는 것이라 들었다. 흔히 여성 승무원이 예쁜 외모인 나라들은 여권이 다들 낮은 나라라고 한다. 실제로 스칸디나비아항공이나 루프트한자 등을 타면 다양한 승무원들을 만날 수 있다. 이제는 선진국에도 편입되었는데 이 정도는 각성하고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니면 누구를 외모로 지적하고 싶으면 1000만 원씩은 내고하던가 말이다. 적어도 운동 값 식비 병원비 보태줄 것 아니면 예의 없는 행동이란 사실은 각성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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