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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이라도, 몰입을 한 경험이 있으세요?

면접을 준비하면서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

by 슈아

'당신은 몰입을 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T사 최종면접이 얼마남지 않아 예상질문들을 정리하고 하나씩 답해 가는 와중에 턱 막힌 질문이 있다.

바로 몰입과 관련된 질문. 어떻게 보면 당신이 이룬 성과 중 자랑할만한 것이 있나요? 랑 질문의 궤를 함께 할 수 있는 질문임에도 이 몰입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 때문인지 선뜻 경험들이 바로 떠오르진 않았다.


'몰입'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시간 가는지 모르고 일했던 경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건만 몰입의 결과, 성취로 인해 기뻤던 경험이 있는지. 여러 경험들이 머리속에서 흩어 지나가지만 이게 면접관 입장에서 듣기에 과연 설득력이 있는 경험인지 모르겠다는 압박감 때문일까, 선뜻 대답이 나오진 않는다.


그럼 기름기를 쫙 빼고, 친구가 나한테 이걸 물어본다면? 이라고 부담감을 낮춰서 생각해봤다.

최근에 내가 몰입했었던 순간이 무엇이지 ? 언제 시간 가는지 모르고 일을 하다가 늦게 택시타고 집에 갔지 생각하면 결과는 소박하더라도 개인적으로 몰입을 한 경험이 떠오른다.


처음 컨설팅 업무를 시작했을 때 나는 내 고객들에게는 정말 실질적인 조언을 하고 싶었다.

의사선생님처럼 단순히 광고비를 늘려라, 상세페이지를 최적화해라 이런 다들 아는 선의 훈계가 아니라,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는데 'How to' 까지 제시하여 한달동안 액션을 취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A 건강식품 브랜드를 맡았을 때 일이다.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A 브랜드는 기존에 방판에서 시작된 브랜드 인지도로 소위 말해서 아는 사람들이 목적 구매로 구매하는 행동을 보였다. A 브랜드사는 이러한 기존 구매고객이 아니라 신규 고객들을 타겟으로 인지도와 구매를 확대해 나가고 싶어서 자동 검색형 광고 등에 돈을 투자하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유입은 증가했으나 구매전환율이 많이 떨어져 실질적인 매출 상승 효과는 더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A브랜드사 담당자라면 '단순히 구매전환율이 떨어졌으니 구매전환율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라'는 원론적인 가이드보다는 뭐라도 실행할 수 있는 액션 아이템을 제시해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브랜드 제품이 왜 신규고객 모객을 위해서 AI 자동 검색형 광고을 운영하는데 구매전환율이 떨어지는 것일까 ? 가설을 세우고 접근을 해봤다. 첫번째, 상세페이지가 신규고객이 보기에 직관적이지 않다. 두번째, AI 자동 검색형 광고가 매칭하는 검색어가 실질적으로 관련성이 떨어지는 것들이 많다 (허수가 많다) 세번째, 상세페이지에 타겟팅하는 광고 검색어와 매칭되지 않은 속성으로 구성되어 관련성이 떨어질 수 있다.


첫번째로 상세페이지 관점에서 '내가 신규고객'이라면 관점에서 해당 상세페이지가 충분히 이 제품을 처음보는 사람이 제품의 정보를 파악하고 내가 찾는 제품과 연관성이 있는 니즈가 있는 제품인지 여부를 확인해보았다.

제품에 대한 구매후기 100개를 일일히 읽으며 긍,부정 후기를 나눠서 이 제품에 대해 어떤 요소로 인해 사람들이 찾았으며, 구매하게 되었고 ,어떤 요소가 만족을 저해하는지를 나눠서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이런 긍정 요소에서 찾은 키워드와 부정요소에서 찾은 키워드가 제품 상세페이지에서 잘 설명되어 있는지 확인했다. (거의 이 작업만 해도 1-2시간이 지났을 것이다). 분류작업을 끝내니, 이 제품을 사람들이 사는 이유는 potassium을 liquid 형태로 먹을 수 있다는 간편성 때문이고, 혈관의 PH 농도를 안정화시켜 준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서 해당 키워드가 상세페이지에 있는지 확인했는데 놀랍게도 구매후기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된 특징들의 키워드가 전혀 표현이 되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은 potassium 이라는 소재라는 점에서 이 제품을 구매하는데 단순히 minerals로만 표현되어 있고, PH 농도를 안정화시켜준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을 하면 좋을 텐데 이러한 언급조차 없었다. 또한 해당 제품의 레시피의 원천에 대해서 (XX's formula)라고만 적혀져 있었지만, 해당 레시피가 왜 유명해졌는지 어떻게보면 기원이 되는 브랜드 스토리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오히려 구매후기에서 자세하게 적혀져 있는 걸 발견했다) 구매후기에서 '강점'에 해당하는 키워드들을 정리해서 상세페이지를 강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방법을 하나 만들고 난 뒤 다음으로는 '단점'을 커버리지 할 수 있는 것들을 확인해봤다. 제품의 단점으로는 '쓴맛'이 있는데, 제품 상세페이지에는 대놓고 'bitter'하다는 말을 써놓고 있었다, 하지만 제품의 단점을 긍정적으로 보는 다른 후기에서는 이 bitter이라는 표현을 'earthy'하다는 표현으로 바꿔서 쓴 경우도 있어서, 우리도 마케팅적으로 단순히 쓰다라기 보다는 자연의 맛이라서 bitter taste가 난다는 식으로 표현을 고치자고 제안을 넣었다.


다음으로는 광고 캠페인의 자동 검색어 광고를 통해 어떤 검색 키워드가 매칭되는지 확인했는데 몇몇 키워드들은 아예 제품과 관련이 없는 키워드들도 있고 (예를 들면 이건 미네랄인데 이상하게 멜라토닌이랑 매칭이 되어있다라던지) 아니면 제품의 브랜드 키워드도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검색광고에 제외할 키워드와 그 중에서도 효율이 괜찮게 나온 키워드들을 발굴해서 자동광고가 아닌 수동광고로 해당 키워드에서 노출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마지막으로는 광고 캠페인이 타겟팅하고 있는 검색어가 제품 페이지의 백엔드 단에 설정되어 있는지 확인해보았는데, 전혀 광고 캠페인이 타겟팅하고 있는 코어 속성의 검색어가 백엔드 단에 설정이 되어 있지 않음을 발견했다. 자동광고가 조금 더 정교하게 타겟팅하기 위해서는 백엔드 단에서 관련되어 있는 단어들을 제대로 잘 넣어주는 게 필요한데 이게 빠져있는 것이 결국 적합한 고객을 찾아 보여주는 관련성을 떨어뜨리는 요소라고 생각하여 마지막 제안 사항으로 넣었다.


하나씩 제품 후기를 뜯어보고, 다른 제품과 우리 제품을 비교하고, 광고 캠페인을 하나씩 뜯어보고,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훌쩍 지나 새벽 2시가 되었다. 계속 노트북을 보고 있어서 그런지 눈은 침침하고 어깨도 경직되어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고객에게 당장 실천가능한 제안을 만든 것 같아 후련히 잠에 들었다.


날이 밝고, 드디어 대망의 미팅시간이 왔다. 그때가 업무를 시작한지 거의 초창기 (2번쨰 미팅이었을 것이다) 여서 긴장되는 마음으로 발표를 이어갔다. 제안이 끝난 후 그때 그 고객이 해주셨던 피드백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매니저님 정말 감동이에요. 이렇게 세세하게 분석해서 제안해주셔서 저희 입장에서는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조언 받아 너무 좋습니다 "라는 말이었는데 그 말한마디로 어제의 피로감이 싹 잊는 기분이었다. 그런 말 한마디 때문에 지금도 거의 노예를 자청하듯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다(맨날 말로는 대충 미팅 준비하고 워라벨 챙기겠어 하지만 마지막까지, 아 이것 하나만 더 분석해야지를 외치는)


다른 사람들의 몰입한 경험에 비해서는 사실 별볼일 없는 경험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내 자신을 돌아봤을 때 몰입한 순간을 생각하자면

처음 업무를 맡게되었을 때 고객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는 제안을 하자라는 생각

그래서 얻은 결과가 칭찬일 뿐이겠지만 나한테는 몰입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던 경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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