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회상 05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ny Oct 10. 2022

편지

  물끄러미 남편의 얼굴을 쳐다본다. 내 속도 모르고, 왜 보냔다. 젊은 시절 부끄러워 얼굴 마주하곤 말 못 해 보고픈 마음을 글로 써 보냈던 그 사람이, 쭈그렁 아저씨 저 사람이 맞나 싶어 웃음이 난다.     


  남편은 당시 내가 보낸 편지에 단 한 번도 답장을 보내온 적이 없다. 그땐 손해 보는 것 같으면서도 난 열심히 편지를 썼었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나에 비해 무뚝뚝하고 정감 없던 경상도 사나이.  

   

  “만나면 되는 데 무슨 편지, 편지에 쓸 말이 없다.”라고 했었다.     


  그랬던 남편이 유일하게 내게 보내준 글은, 선물로 준 ‘명상의 시간’이라는 시집에 남긴 ‘본인의 이름 석 자와 날짜’ 그게 다다.

  신혼 시절, 난 남편에게 불만이 있거나 하면 다투는 대신에 구구절절 편지를 써서 살며시 양복 주머니에 넣어 두곤 했었다. 물론, 남편은 내 글에 감동했고 상당한 기간 효과가 있었다.     


  내겐 아직도 없애지 못한 편지 상자가 있다. 젊은 시절 여러 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둔 상자이다. 나이 들어 전원에 집을 짓고 벽난로를 만들면, 내 인생을 반추하며 한 장 한 장 읽어 보면서 벽난로에 소각을 하겠다고 버리지 못하고 그날을 기다려 온 편지들이다. 그런데, 전원에 집은 지었는데 여러 가지 문제로 벽난로를 만들지 않았다. 법규상 소각도 함부로 할 수 없다 한다. 언젠간 쓰레기로 버려지겠지만 아직은 그냥 갖고 있다. 

  어떤 이들은 영수증도 모으지 않고 그 자리에서 버린다는데. 난, 어찌 사오십 년 전 편지마저도 지니고 있는지? 그 모든 것이 내 인생의 흔적인 것 같아 함부로 버리지 못하고 있다.     


  국민학교 시절 국군장병에게 위문편지를 쓰고, 답장이 와서 기쁜 마음에 엄마와 함께 답장을 써놓곤 아버지의 반대로 부치지 못한 적이 있다. 그땐 아버지가 약간은 야속했는데, 나이 들어 회상해 보니 그때 아버지의 염려가 조금은 이해가 간다.


  중학교 시절 펜팔을 하던 홍콩 친구가 있었다. ‘육병웅’ 물론 남자!

  우표 수집이 취미였던 내게 우표뿐만이 아니고 포스터, 동전까지 보내주었었다. 지금도 내 수집 앨범엔 그 애가 보내준 것들이 보관되어 있다.

  우리 집이 이사를 몇 번 하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기긴 했지만, 그 애가 보내준 중국 액션 배우 ‘이소령’의 무술 영화 포스터는 그 시대엔 자랑거리기도 했다. 그 친구에게서 온 편지와 선물들은 내 아이들에게 엄마 시대엔 펜팔이 유행했었다는 것을 실감시켜줄 수 있었고 엄마의 학창 시절 외국 사람과의 펜팔 이야기를 자랑삼아 으쓱하기도 했었다. 그 시절에 요즈음처럼 카톡이나 SNS가 있었다면 그 아이와 오래도록 연락하고 지내지 않았을까?     


  지난번 홍콩 여행 중에 문득 그 애 생각이 났다. 그 애도 나처럼 많이 늙었겠지? 오히려 만날 수 없다는 거리감이 있었기에 그 아이와의 펜팔은 아버지의 반대 없이 그래도 몇 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갑자기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라 미소 짓는다.     

이전 04화 외가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