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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회상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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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Oct 10. 2022

외가댁

   ‘충청북도 영동군 황금면 죽전리’ 추풍령.     


  초등학교 시절, 방학이 되면 나를 데리러 온 큰 외삼촌을 따라 새벽에 떠나는 완행열차를 타고 외갓집으로 갔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외갓집에 간다는 설렘에 눈이 반짝 떠졌다. 당시에는 외갓집에 가려면 서울역에서 영동역까지 완행열차로, 내 기억에 거의 8시간 이상을 갔던 것 같다. 기차역에 도착해서 버스로 갈아타고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려 추풍령 면에 도착하면 그때부터는 한참을 걸어가야 오후쯤에 죽전리 외가에 들어갔다. 그렇게 가는 길이 힘이 들어도 나는 외할머니댁에 가는 것이 좋았다.      


  막냇동생을 낳고 나와 여동생까지 셋을 돌보느라 힘이 든 엄마를 위해 외가에서 나를 돌봐 주신 것이다. 몇 년간은 방학을 거의 외가에서 보냈던 것 같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외가에서 논과 밭을 느끼고 들에서 뛰어다니며 놀던 기억이 있은 덕에, 적어도 벼를 쌀 나무라 하지는 않았다.     


  엄마는 외가댁에 나를 보낼 때 예쁜 옷을 사 입혀 보내셨다.

  외가에 가면, 내 또래의 아이들이 나를 보려고 몰려왔다. 그때는 아이들이 왜 그렇게 나를 보려고 했는지 잘 몰랐고, 아이들이 있어서 전혀 심심하지가 않았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얼굴은 그리 예쁘지 않아도, 피부색이 하얗고 예쁜 옷을 입은 내가 이방인처럼 신기해 보였나 보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이다.      


  어느 해 여름이었다.

  난, 동네 아이들과 함께 추자(호두)를 따서 냇가에서 열심히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그런데, 호두 껍데기에서 나온 즙이 옷에 물들어 버렸다. 내가 입은 옷은 엄마가 ‘신세계 백화점’에서 새로 사 입혀 보낸 새 옷이었다. 새 옷이 엉망이 되었고 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이들이 나를 달래고 위로해 주면서 우리는 좀 더 친해질 수가 있었다. 호두 껍데기 즙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생생히 알게 해 주는 사건이었다. 지금 같으면 옷을 갈아입고 놀았을 텐데,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였다.


  겨울 방학 때는 벼를 베고 난 논에 물이 고여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벼 밑동이 발밑 얼음 속에 그대로 보이는 썰매장에서 외삼촌이 만든 썰매를 타고 놀았다. 외삼촌은 나무를 붙여 썰매판을 만들고, 굵은 철사를 양쪽 밑에 달아 썰매 날을 만들었다. 나무로 만든 꼬챙이엔 긴 못을 끼워 넣어 얼음을 지칠 수 있게 했다. 외삼촌이 밀어주는 썰매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달려가는 그 맛은 정말 환상이었다. 열심히 조카를 즐겁게 해 주던 막내 외삼촌이 지금은 이 세상에 안 계신다. 문득 삼촌이 보고 싶다.     


  외가가 시골인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여고 시절엔 친구들을 데리고 외갓집에 놀러 간 적도 있다. 나의 외갓집이 친구들에겐 부러움이었다. 친구와 함께 마당에 있는 커다란 멍석 위에 누워 쏟아져 내리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무수히 많은 대화도 나누었다. 친구와 난 지금도, 별이 쏟아지던 그 밤하늘을 기억하며 너무나 좋았던 추억으로 새기고 있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 큰 외숙모를 생각해 보았다. 외숙모는 한 번도 내게 싫은 기색을 보인 적이 없다. 외숙모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시동생들과 함께 사셨다. 그런 대가족인데, 남편의 큰 누나인 시누의 딸이 방학 때만 되면 와서 한참을 머물다가 가니, 밥 챙겨 먹이고, 빨래해 대고 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셨겠는가. 다 커서는 그것도 모자라 친구들까지 데리고 놀러 갔으니, 정말 죄송할 일이다.

  외숙모는 장날이면 나를 데리고 가서 옷도 사 입히고 맛있는 것을 사 주기도 하셨다. 외숙모의 조용하고 예쁜 미소는 ‘너도 나중에 그렇게 해라.’ 하시는 것처럼 가슴에 새겨있다. 내 기억에 외숙모는 엄마를 좋아하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실, 외삼촌들이 서울에 오실 일이 있으면 으레 우리 집에서 지냈고 엄마도 잘해 주셨다.     


  요즈음 여름만 되면 우리 집 마당에 수영장이 만들어진다. 손주들 놀라고 해 놓은 것이다. 수영장이 딸아이 친구들에게 소문이 나면서, 해마다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놀다 간다. 물론 당일이나 1박 정도이지만, 뒤치다꺼리가 만만치 않다. 

  그런데, ‘그때 외숙모께서는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요즘처럼 환경이 편하지도 않았는데,’ 철없던 내 모습이 주마등 되어 스치며 외숙모께 감사의 마음과 만수무강을 기원드린다. 내게 외가댁은 너무나 좋은 추억이고, 마음의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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