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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회상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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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Oct 10. 2022

엄마의 손맛


  얼마 전 속초 ‘아바이 마을’에 다녀왔다. 그곳은 이북 5 도민 특히 함경도 지방에서 피난 온 분들이 전쟁이 끝나면 돌아갈 그날을 기다리며 모여 살던 곳으로 지금은 이북 음식을 팔고 있는 관광지가 되어있었다. 그곳 모습이 돌아가신 아버지 고향이 함경도라 그런지 아주 낯설지 않았다.


  엄마는 해마다 늦가을이 되면 명태와 가자미를 궤짝으로 사셨다.

  명태는 알이 꽉 배어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마 그때가 알배기 명태가 나는 계절이었던 것 같다.

  명태 알과 내장으로 명란젓과 창난젓을 만들고 내장을 뺀 명태로는 순대를 만드셨다. 순대 소는 지금 생각해보면 김치 만두소와 비슷해 보이긴 하지만 엄마만의 특별한 비법이 있었던 것 같다. 소를 만들어 명태 몸속에 꽉꽉 채워 넣고 철사로 고리를 만들어 끼어 마당 빨랫줄에 걸어 말렸다.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꾸덕꾸덕하게 잘 말려진 명태는 냉장고 냉동실로 옮겨져 명란젓과 함께 겨우내 아버지가 즐겨 드시는 최고의 반찬이 되었다. 엄마가 아버지 고향 친척 분들의 구전에 의지해 배운 솜씨로 아버지 고향의 맛을 재현해 내신 것인데, 아버지는 엄마가 만든 ‘명태 순대’가 할머니 손맛과 너무 똑같다고 좋아하셨다.

  ‘가자미식해’는 우리가 아는 음료수 식혜와는 전혀 다른 젓갈과 같은 것이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먼저 찐 좁쌀과 무채를 고춧가루에 버무려 작은 항아리에 담아 아랫목에 담요를 씌워 익혔다. 거기에 깨끗하게 손질해서 적당한 크기로 자른 가자미를 섞은 후 잘 삭히면 ‘가자미식해’가 된다. 그 또한 엄마는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시어머니 손맛을 잘 재현해 내셨다. 

  아버지의 최애 고향 음식 ‘명란젓’과 ‘명태 순대’, ‘가자미식해’는 우리 집 단골 저장 식품이었다. 엄마는 고향이 충청도인데, 드셔 보지도 않은 이북 음식을 참 잘 만드셨다. 친척 분들도 감탄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더 이상 ‘명태 순대’와 ‘가자미식해’를 드실 수 없었다.     


   몇 년 전 그 음식을 먹고 자란 동생이 원해서, 올케가 집안 친척 분께 배워서 ‘가자미식해’를 재현해 내었다. 엄마의 그 맛을 기억해 낼 정도로 제법 잘 만들었다. 올케가 가끔 만들면 시누인 나와 동생에게 나누어 준다. 그런데, 경상도가 고향인 식성 좋은 남편은 생선회는 좋아하면서도 이상하게 ‘가자미식해’는 못 먹겠다고 한다. 덕분에 그것은 온전히 내 몫이 된다. 

  동생은 지금도 아버지 제사에 ‘명태 순대’와 ‘가자미식해’는 못 올려도 양념 안 한 ‘명란젓’은 올린다. 동생도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그 맛을 제사상에 올리고 싶은가 보다. 그 모습을 보는 내 마음은 동생과 올케가 예쁘고 고맙다.     


  오늘따라 아버지 엄마와 우리 삼 남매가 밥상 앞에 둘러앉아 ‘명태 순대’와 ‘가자미식해’를 맛있게 먹던 그 시절, 엄마의 손맛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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