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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회상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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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Oct 10. 2022

청실홍실

  찜질복을 입고 평상에서 잠이 든 남편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애잔하다. 

  벌써 몇 달째, 왼쪽 팔이 아프다며 양, 한방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아도 낫지 않는다며 힘들어한다. 남편은 코로나 3차 주사를 맞고부터 아픈 것이 코로나 주사 후유증 같다고 4차 접종도 마다한다. 병원에선 ‘나이가 들어 근육이 노화되어 일어난 염증 증상’이라고 병명을 지정해 주었으나, 치료에 차도가 없자 병원을 신뢰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코로나가 조금 진정되어 숯가마도 문을 열었다기에 집 근처 숯가마에 함께 왔다. 수년 전 내가 허리 아파 고생할 때 자주 찾던 숯가마. 그땐 남편과 전국에 유명하다는 숯가마를 꽤 많이 찾아다녔다. 효험도 있었기에, 오늘은 남편의 치료를 위해 이것이 최상이다 싶어 함께 온 것이다. 


  남편과 나는 C.C(company couple)다. 그 당시 난, 같은 직장 남자들은 일단 배우자감으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윗분의 주선으로 용감하게 우리 집에 찾아와 아버지께 인사부터 한 그와 반신반의 첫 데이트를 한 이후, 지금까지 40년을 함께 하고 있는 걸 보면 보통 인연은 아닌가 보다. 

  당시 남편은 성실하지만 말이 별로 없는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였다. 난 여직원 대표를 할 정도로 일 잘하는 직원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넘보는 남자가 좀 있었지만, 같은 직장 남자에겐 맘을 안 주겠다며 약간의 콧대를 높이던 시절이었다. 그런 나에게 용감하게 데이트 신청을 한 것에 점수를 주었던 것 같다. 돈도 없고 말도 별로 없던 남자인 남편에게 끌렸다면 그건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요즈음은 나보다 더 말이 많은 남자로 변해있으니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  


  그 당시엔 결혼식 후 친구들에게 집들이를 하면 주인공에게 노래를 시키곤 했는데, 그때마다 우리는 가요 ‘청실홍실’을 불렀다. 정말로 그때는 청실홍실 엮어가며 잘 살 것 같았고 영원히 행복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삶이 어찌 그렇게만 흘러갔겠는가. 

  남편과 나는 연애 시절엔 한 번도 다툰 적이 없다. 다툴 일이 없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생기고 다툴 일도 많았다. 내 생각과 다르게 엮어지는 삶 속에서 결혼을 후회한 적도 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행복한 시간도 찾아오고, 풍요로운 시절도 있었지만, 남편의 사업 부도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오늘 문득, 남편과의 인연을 생각해 본다. 

  같은 직장 동료로 만나서 누가 알까 조심조심 연애하던 일. 당시는 혹, 결혼 안 하고 연애했다는 소문만 나면 여자들이 더 많은 피해를 보는 시대였다. 나중엔 응원군이 생겨 도움도 받았지만, 늘 몸조심 말조심을 해야 했다. 하루라도 안 보면 생각이 날 정도로 남편을 사랑하게 되고, 결혼하고 아이들 낳아 키우며 다사다난한 삶을 살아왔다.   


  내년이면, 결혼 40주년이 된다. 

  오래전 친구들과 대화 중에 한 남자와 20년 정도 산다는 것이 정말 지루하고 쉽지 않은 일이라며 깔깔거렸던 적이 있다. 그런데, 벌써 그 세월을 두 번째 맞이하고 있다니 정말 대단한 인연이다. 아이들을 혼인시키고 나니, 오로지 서로밖에 없는 듯하다. 이젠 남편이 어디를 가든지 내가 무엇을 하든지 서로 이해하고 조력해 주게 된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온전한 하나가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고뇌의 경험이 쌓여야 되는 것 같다.  


  팔이 아파 힘들어하고 있는 남편에게 “그래도 내장 기관이 아픈 게 아니고 팔이니 얼마나 다행 이유?” 하고 위로는 했지만, 지금 숯가마 평상에 누워 잠이 든 남편 모습을 보니 ‘힘이 부족한 나 대신 무거운 거를 많이 들어서인가?’ 싶어 미안한 맘이 든다.  

  나는 허리가 아파 무거운 것을 잘 들지 못하기에 남편이 있어야 하고, 덜렁대서 깜빡할 때 챙겨줄 사람이 필요해서, 아이들 세배 혼자 받기 싫어서, 아플 때 병원에 데려가 줄 사람이 필요해서라도......, 남편은 내 곁에 오래 머물러 주어야 한다. 강해 보이기만 했던 남편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칠순을 바라보는 초로의 모습으로 더 크게 투영되어 씁쓸하다. 


  남편과 인연의 끝이 언제까지일지는 모르나 우리가 엮어 온 청실홍실, 하늘이 부르는 그날까지 아름답게 매듭지을 수 있도록 위해주며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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