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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회상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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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Oct 10. 2022

제스퍼에서 만난 청춘

  미정이와 나는 7박 8일 일정으로 캐나다 Rocky산맥을 여행 중이었다. 밴쿠버 미정이네 집에서 출발해서 캠루프스를 시작점으로 제스퍼와 밴프를 돌아 레벨스톡을 거쳐 캘로나로 돌아오는 코스다. 지금 생각해 봐도 너무나 멋진 코스였다.     


  제스퍼 국립공원에 갔을 때의 일이다.     


  구글 지도를 보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찾아낸 숙소 'Hi Jasper' 호스텔은 ‘제스퍼 국립공원’ 깊숙이 자리한 탓에 자칫 길을 잘못 들어섰다가는 고생 좀 할 것 같았다. 

다행히 지도를 보며 찾아간 숙소는 ‘Jasper National Park’ 톨게이트를 통과하자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마침 ‘Hi Canada’ 행사로 입장료 할인 기간이었고, 서울에서 핸드폰에 할인 쿠폰을 받아 간 상태였기에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부터 여행 코스에 맞추어 몇 날 며칠을 서핑해서 찾아낸 곳으로 ‘제스퍼 국립공원’ 안에 있는 몇 안 되는 숙소 중 ‘Sky Tram(케이블 카)’ 타는 곳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숙소였다. 이곳에서 우린 2박을 할 것이다. ‘제스퍼 국립공원’ 안에는 캠핑카 이용이 가능한 캠프촌이 크게 만들어져 있었다. 이곳에 오는 동안 캠핑카와 캠핑카를 대여해 주는 곳이 유달리 많이 눈에 띄었다. 캠핑카 이용 관광객이 많아 보였다. 로키 여행 중에 자칫 해가 지고 숙소를 못 찾게 되면 노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마 그래서 캠핑카 여행객이 많은 것 같았다. 주유소 찾기도 쉽지 않아 여행 중에 주유소가 보이면 무조건 주유를 해야 할 정도였다. 부지런히 달려서 저녁 무렵 도착한 숙소에는 우리 또래의 일행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젊은이들이었다. 8인실 널찍한 방에 들어서자, 우리는 위치 좋은 나란한 침대 두 개를 선점했다.      


  우리는 가방 등 소지품을 침대 밑 사물함에 넣고 주방으로 향했다. 이미 그곳엔 많은 사람들이 저녁을 준비하느라 시끌벅적하다. 우리도 가스레인지 하나를 차지하고 준비해온 재료들을 펼쳐 저녁 준비를 했다. 왁자지껄 다양한 언어로 오고 가는 이방인들의 대화가 이해는 잘되지 않았지만, 정겹게 들렸고 즐거웠다.     


  이튿날 미정이와 승용차로 약 5분 거리에 있는 제스퍼 국립공원으로 갔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오를 예정이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케이블카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도 줄을 서서 표를 끊고 차례가 되기를 기다렸다. 이곳은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는 오르기가 쉽지 않을 듯싶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다본 산의 모습은, 하얀 서리를 머리에 인 삼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빼곡하게 줄을 맞춰 서 있었다. 창밖의 풍경은 ‘이게 정말 겨울이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생각에, 로키의 기온은 밴쿠버보다 섭씨 10도 이상 더 추운 듯했다.

  난 서울에서부터 단단히 준비를 하고 갔다. 두툼한 장갑에 오리털 파카까지. 그런데, 정작 캐나다에 살고 있는 미정이는 그런 준비를 하지 못했다. 사실, 나도 미정이도 로키는 처음이기에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는 잘 몰랐다. 산속이라 그런지 10월의 날씨치고는 상당히 추웠다. 케이블카로 도착한 산마루 가까이는 상상 속의 시베리아를 연출하고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날리는 눈보라는 얼굴을 단숨에 얼려버릴 기색이었다. 미정이는 내가 하나 더 준비해 온 장갑을 끼긴 했지만, 도저히 참지 못하고 대합실로 돌아가고 말았다. 나는 객기를 조금 부려봤다.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오겠어!’를 되뇌며 산을 올랐다. 함께 케이블카를 타고 온 사람들 중에는 대합실로 돌아가는 사람이 많았다. 얼마 못 가 결국 나도 어찌하지 못하고 대합실로 돌아갔다. 정말 추웠다. 눈보라까지 일어 산을 더 오를 수가 없었다.     


  바로 그날이 10월 8일 일요일, 캐나다 ‘추수감사절’이었다. 숙소에 들어가니 분위기가 어제와 다르다. 웅성웅성 잔칫집 분위기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모색이 다른 여행객들이지만, 호스텔 주인의 주선으로 추수감사절 축제를 함께 준비하고 있었다. 서로 각자 준비한 음식을 들고 모였다. 저녁 식사 파티가 열린 것이다. 숙소 주인이 몇 가지 음식과 다과를 준비해 주었다. 우리도 음식 두어 가지를 준비해서 한자리 차지하고 앉았다.

  이번에 안 사실이지만, 캐나다는 10월 두 번째 월요일, 대체로 10월 8일부터 14일 중에 공휴일로 기념하고 있다. 미국은 11월 네 번째 목요일이면서 주일까지를 추수감사절 휴일로 정하고 있고, 칠면조 고기를 먹는 날이 바로 이날인 것이다.      


  지금 기억에 숙소 주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아가씨의 진행에 맞추어 모두들 축배를 들었다. 너무도 신선하고 흥분되는 분위기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쯤이었다. 나라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남미 쪽에서 온 우리 또래의 한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나보다는 언어가 되는 미정이가 주로 얘기를 하긴 했지만, 그 여자는 자기가 다녀본 외국 여행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우리도 여행 중임을 말하며 분위기에 어울려 한참을 수다 떨며 즐겁게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 남미 여자가 꽤 수다쟁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자리에 함께한 젊은이들의 오고 가는 웃음과 대화는 한동안 식을 줄 몰랐다.       


  내 젊은 시절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던, 이런 청춘들의 모습이 너무도 신선하게 가슴에 와닿았다. 우리도 그들과 어울려 분위기에 젖어들고 있었다. 이것이 여행인 것이다. 여행 아니면 어디서 이런 즐거움을 맛볼 수 있겠나.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순간이었다. ‘Rocky’ 여행 중에 경험한 ‘Jasper’의 숙소에서 맞이한 ‘추수감사절’의 기억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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