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에 반해 버린 곳
제주에는 오름이 많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면 '1일 1오름이 목표'라고 이야기하는 제주 여행객들의 글을 자주 보게 된다. 제주에 오기 전에 읽은 책에도 다양한 오름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었다. 한 달이나 머물게 될 텐데 가고 싶은 오름에 다 가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크나큰 착각이었다. '아 맞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지.' 모든 스케줄을 아이에게 맞춰야 했다. 갈 수 있는 곳은 한정되었다. 비자림과 곶자왈 환상숲은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 였는데, 아쉽게도 어렵게 됐다. 세 살 꼬마와 일행들에겐 너무 험난한 여정일 테니까.
그럼에도 새별오름에는 가보고 싶었다. 그 이름도 예쁜 '새별오름'. 애월 숙소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더 가볼만했다. 아이가 오르지 못한다면 그 근처에 있는 목장 구경을 하면 될 터였다. 목장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바람부는 허허벌판에 아이를 심심하게 놔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장소에 도착해서 멀리서 오름을 보았을 때 민둥산 같아 보였다. 개미떼처럼 많은 사람들이 오름을 오르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뭘 보겠다고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을까 의아했다. 주차장까지 꽉 찰 만큼. 나는 아이와 목장 구경을 하고 엄마 먼저 오름에 다녀오셨다. 30분 후 돌아온 엄마는 오름에 얼른 다녀오라고 하셨다. 진짜 끝내준다는 말과 함께. 오름을 오르자마자 난 엄마가 끝내준다는 이유를 알았다. 멀리서 봤을 때 민둥산이었던 그것이 온통 하얗게 넘실대는 억새밭이었던 것이다.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억새는 보는 위치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걸으며 중간중간 바라본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그때그때 달랐다. 매일 산책하며 보는 애월의 바다 색깔이 날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것처럼. 파아란 하늘은 오름의 아름다움을 완성시켜 주었다. 오늘 이 순간에 내가 이 오름에 있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기사님이 물었다. "새별오름은 들불 축제가 정말 볼만한데. 코로나 땜에 취소가 되었어요. 그나저나 오름 정상에서 바다 보셨지요?" "바다가...있었나요?" 정상에서 경치를 한참을 바라보았는데 바다는 못 본 것 같았는데. 집에 돌아와 요즘 읽는 소설 <복자에게>를 펼쳐 들었는데 '새별오름에는 나홀로 나무가 있어. 요즘 핫한 장소라지?' 라는 부분이 나온다. 나홀로 나무가 있었나? 그리고 지인에게 새별오름에 다녀왔다고 메시지를 보내니 '석양 보러 간거야?' 한다. 이 곳이 석양이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란다. 놓친 게 많아 아무래도 제주에 머무는 동안 또 한번 가야겠다. 노을이 질 즈음의 새별오름. 가야 할 리스트가 또 하나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