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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유미 Nov 15. 2020

소라게야, 안녕?

이 바다는 모두 나의 것

바다는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바다 없는 지역에 살다 보니 가끔 바다를 보려면 큰맘 먹고 움직여야 했다. 바쁘게 살다보니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오랫동안 살았던 단양에는 산이 정말 많다. 여기를 봐도 산, 저기를 봐도 산. 산 너머 또 산. 산으로 둘러싸인 풍경은 그 나름의 매력이 물론 있었지만 탁 트인 바다가 나는 항상 그리웠다. 그래서 바다가 있는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면 바다의 공기와 냄새, 바다의 풍경이 오래도록 남아 마음을 설레게 했다.


지금 지내고 있는 숙소는 사실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별 다섯 개 중에 두 개 반 정도(후하게 준 점수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저렴한 비용만 제외하면 장점이 그리 눈에 띠지 않는다. 위생 상태도 별로고 베란다에 가끔 왕거미도 기어다닌다. 가격 말고 유일하게 좋은 점은 창밖으로 바다가 보인다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매일 파아란 바다를 보며 아침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눈다. 얼마나 낭만적인지. 바다 위에 떠 가는 배도 종종 보이고 물질하는 해녀들의 모습이 테왁과 함께 보인다. '여기가 명당이네, 명당이야.' 하는 엄마 말씀에 공감한다. 난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우리가 식탁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던 이 풍경이 제일 그리워질 것 같다.


우리는 무한한 바다 사랑을 만끽하고 있는 중이다. 엄마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한 시간씩 바닷가 산책을 하고 돌아오신다. 오늘은 바람이 세게 부네, 오늘은 미세먼지가 안 좋더라 하는 그 날의 날씨 정보를 알려 주신다. 이게 바로 부지런한 엄마와 게으른 내가 극명하게 대립되는 부분이다. 나는 아이 봐줄 테니 한 시간 산책 겸 운동하고 오라는 엄마의 말씀에도 한 번도 실행한 적이 없다. 아마 남은 여행 기간에도 그건 어려울 것 같다. 아침잠은 너무 소중하니까.  


아이와 나는 해수욕장에 자주 간다. 세화 해변이 물이 맑고 참 예쁘다던데, 거리가 좀 멀어서 아직 가보지는 못했다. 대신 3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해변은 몇몇 가 보았다. 아이가 놀기 좋은 널찍한 해수욕장에 가면 가장 먼저 신발과 양말을 벗고 아이와 함께 모래 위를 걷는다. 엄마는 맨발로 놀기에는 이제 날씨가 춥다고 감기 걸릴까 봐 걱정하시지만, 나는 언제 또 이렇게 바닷가에서 놀아볼까 하는 생각에 주저하지 않고 신발을 벗는다. 어제는 석양을 보고 싶어 늦은 오후에 이호테우 해변을 찾았다. 엄마가 등대 구경을 다녀오시는 동안 나는 아이와 손을 잡고 모래사장을 걸었다. 아이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물이 얕게 흐르는 곳이 있으면 발로 밟아 찰찰 소리를 내 보기도 하고, 물 때문에 모래 사이로 발이 푹푹 들어가는 느낌이 재미있는지 까르르 웃으며 그곳만 여러 번 왔다갔다 하기도 했다.


해수욕장에서 놀 때마다 우리는 운 좋게도 소라게를 만났다. 아이도 나도 소라게를 직접 본 건 처음이었다. 얼마 전, 안녕달의 <할머니의 여름휴가>라는 그림책을 아이와 함께 재미있게 읽었는데 눈으로 보게 되니 신기했다. 처음에 바닷가에 왔을 때 우리가 우연히 두 마리를 잡아서 통에 넣어놓고 한참을 관찰했고, 그 다음에는 소라게를 잡고 놀던 아이들과 함께 놀게 되면서 소라게와 친해졌다. 소라게는 그 앙증맞은 몸뚱이를 막 움직이다가도 누군가 손으로 만질 기미만 보이면 소라 안으로 쏙 자취를 감추었다. 작고 귀엽고 민첩하다. 아이가 처음으로 바닷가에서 만난 바다생물이니, 이 소라게는 아이에게 이미 좀 특별해졌을 거다.


애월해안도로를 따라 운전을 하다 보면, 창밖으로 푸른 바다가 보인다. 내가 바다를 매일 보고 있다는 게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꿈 속에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우리는 평생 볼 바다를 한 달 동안 몰아서 보고 있다. 한 달 이용료를 결제하고 무제한 음악듣기 서비스를 신청한 것처럼, 우린 한 달 사용료를 지불하고 무제한 바다 보기를 승인받았다. 모래시계에 모래가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열심히 바다를 느끼고 눈과 가슴에 담으려고 한다. 돌아가면 바다와 지냈던 지금의 시간들이 무척 그리워질 것이기에. 내일은 오늘 잠시 들렀던 협재해수욕장에 가 볼 것이다. 거기에서도 소라게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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