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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유미 Nov 15. 2020

그깟 80만 원 때문에 여행을 망칠 순 없지

오늘만 울고 끝!

오늘은 한림공원에 다녀왔다. '한림공원' 하면 그냥 평범한 수학여행 코스 같은 느낌이었는데 왠지 한번 가보고 싶었다. 생각보다 꽤 괜찮다는 블로그 후기도 있었고, 무엇보다 숙소에서 출발해 3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라서 오늘의 목적지로 당첨되었다. 마침 국화축제를 하고 있었다. 몇 년 전에 직원 여행으로 제주도에 왔을 때 5월의 수국이 너무나 아름다웠었는데, 수국을 못 보는 아쉬움을 국화로 달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큰 국화보다 소국을 좋아하는데 색색별로 다양한 소국들이 정원을 이루고 있었다. 눈이 즐거웠다. 국화를 배경으로 한 사진은 어떻게 찍어도 예쁘게 나왔다. 예전에는 아이 사진을 찍어주려고 하면 자꾸 휴대폰 쪽으로 달려와 휴대폰을 쳐다보느라고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 "채훈아, 저기 가서 서 봐. 사진 찍어줄게." 했더니 혼자 국화 옆으로 가서 손가락을 브이자로 만들며 "브이!" 하고 말을 했다. 며칠 사이에 참 많이 컸다. 아이가 못 하던 말을 하고, 못 하던 행동을 새롭게 보일 때 아이 키우는 것의 즐거움을 느낀다.  


공원 관람 후 협재해수욕장에 들러 예쁜 바다를 넋을 잃고 보았다. 내가 여기에 와서 본 바다는 숙소 앞의 애월 바다, 곽지 해수욕장, 한담 해변, 협재 해수욕장, 이호 태우 해수욕장인데 바다마다 색깔과 분위기가 매우 다르다. 시퍼렇다, 푸르스름하다, 새파랗다, 검푸르다 등 '파랑'의 범주를 다양하게 볼 수 있다. 배가 고파 바다를 오래 보지는 못했다. 내일 다시 오기로 기약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 오후엔 렌트한 차를 반납하고 다시 빌리기 위해 렌터카 회사에 가야 했다. 한 달간 렌트를 하고 싶었으나 어찌 된 일인지 렌터카 사이트에는 최대 일주일만 렌트를 할 수 있도록 설정이 되어 있었다. 원래 규정이 그런가 보다 하고 일주일 단위로 렌트 계약을 했다. 차를 반납하고 또 빌리는 수고를 몇 번씩 해야 된다는 번거로움이 있었으나 내가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 여기고 받아들였다. 숙소에서 렌터카 회사가 그리 멀지 않아 그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런데 오늘 차를 반납하러 갔을 때, 나는 직원으로부터 한 달을 한꺼번에 빌리면 훨씬 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싼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차를 매번 변경하지 않아도 되니 편리했다. 홈피 아래에는 장기 렌트를 원하는 고객의 경우 전화로 상담하라고 되어 있다는데 난 그걸 눈여겨보지 못했다. 제주 한 달 살기를 결심하고 급하게 일을 추진하다 보니 사달이 났다. 천천히 알아보고 준비할 수 있는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45만 원이면 빌릴 수 있는 경차를 100만 원 가까이 되는 돈을 내고 빌린 셈이다. 일주일 정도 택시를 탔던 비용까지 합치면 거의 80만 원 정도를 손해 보게 되었다. 이제 와 취소하고 다시 진행하자니 지불해야 할 수수료가 만만치 않았다.


한숨이 나왔다. 렌트한 차를 받고도 한참을 운전하지 못하고 주차장에 서 있었다.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으니 오로지 나의 불찰인데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왜 그걸 미리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직원에게 따질 수도 없었다. 인터넷 중개 업체를 통해 신청한 거여서 렌터카 직원은 아무 관련이 없었고, 내가 미처 몰랐다고 해도 장사하는 사람들이 고객인 나에게 더 값싼 제안을 할 리 만무했다. 그저 모든 것이 신청 내역과 결제 내역으로만 판단되었다. 냉정한 자본주의 세계에 친절과 배려를 바라다니. 내가 어리석은 것일지로 몰랐다.


남편은 돈 생각일랑 그만 잊어버리라 했다. 급하게 추진하다 그리 된 것이고, 그렇게 서두르지 않았으면 제주도 한 달 살기 못 왔을 거라고. 생돈 날린 것에 마음 아팠겠지만 따뜻하게 감싸주어 고마웠다. 엄마도 잠시 안타까운 표정은 지으셨지만 이미 지나간 일 더 이상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다. 남편 말대로 그깟 80만 원 때문에 나의 소중한 남은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다. 비싼 경험을 했으니 다음 한 달 살기 오게 될 때는 지금같은 실수는 안 하고 더 잘할 수 있겠지. 저녁을 먹고 편의점에 가서 맥주와 안주를 샀다. 오늘은 술이 술술 들어갈 것 같다. 오늘까지만 딱 속상해하고, 내일부터는 다시 즐겁게 지내야지. 하루하루 가는 게 아까운데 제주에서의 남은 18일을 행복으로 꽉꽉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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