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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유미 Nov 14. 2020

제주를 알고 싶거든 시장으로 가세요

제주민속오일시장에 가다

나는 시장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 단양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엄마 손을 잡고 시장 구경하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 엄마가 뭘 사나 가만히 지켜보기도 하고, 가끔가다 엄마가 군것질거리를 사서 입에 넣어주면 그게 또 그렇게 맛있었다. 그때의 추억이 오래 기억에 남아서인지 새로운 지역에 가면 꼭 먼저 시장을 찾게 된다. 속초의 수산시장, 원주의 중앙시장, 정선 아리랑시장, 영월 서부시장, 부산 자갈치시장과 남포동시장... 이름난 대형마트는 어디든 비슷한 느낌을 풍기지만, 시장들은 그곳만이 지닌 고유의 냄새와 이미지로 내 머릿속에 아름답게 차곡차곡 기억되어 있다. 시장은 매대에 올려진 생선들만큼이나 팔딱거리는 활기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인들의 얼굴에서 고단하지만 악착같은 삶의 의지가 보인다. 생존 전선에서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깨끗하고 세련된 마트 안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진짜 사람 사는 것 같은 곳이었다. 시장만이 가진 그 북적거림과 사람 냄새와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늘 좋았다. 


제주에 왔으니, 그것도 한달이나 있다 갈 참이니 내가 시장을 놓칠 리 없다. 여러 시장이 있다지만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두 군데를 찜해 놓았다. 동문시장과 제주민속오일시장. 오일장은 2일과 7일에 열린다고 해서 12일 가보기로 했다. 아침 일찍 채비를 해서 도착한 주차장에는 차들이 가득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주차하느라 고생 좀 했을 것 같다.


여행 책에서 본 대로 이곳 오일장은 볼거리가 참 많았다. 입구에서부터 새장에 든 앵무새들이 삑삑거리며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토끼며, 햄스터며, 거북이며, 어항 속의 물고기들까지... 작은 동물원 같았다. 덕분에 아이는 연신 싱글거리며 그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형형생색의 제철 채소와 과일들이 너무 많아서 보는 눈이 즐거웠다. 시장이 꽤 넓었는데 가는 곳마다 온통 귤천지였다. 며칠 전 아이와 함께 애월 농장의 감귤체험을 하면서 귤나무에 귤이 엄청 다닥다닥 붙어서 많이 열린다는 걸 처음 알았다. 시장에 귤이 저리도 넘쳐나는 게 이해가 갔다. 그러니 귤을 빼놓고 제주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제주에 와서 꼭 먹어야 한다는 오메기떡도 두 접시 샀다. 오메기떡이야 워낙 잘 알려져 있어서 단번에 알아보았는데, 빙떡이라는 것도 제주에서 유명하다는 것을 시장에서 보고 처음 알았다. 겉에서 보기엔 마치 전병 비슷하게 생겼는데 그 안에 무나물이 들었단다. 제주에서는 빙떡을 제사 지낼 때나 집안 행사가 있을 때 자주 올린다고 한다. 별로 맛이 없을 것 같아서 안 샀는데 다음 시장에 가서는 빙떡 맛도 한번 봐야겠다. 


수산시장도 생각보다 컸다. 제주에서 많이 먹는다는 딱새우가 여럿 보였고 길쭉한 은갈치가 많았다. 평소에 회를 좋아하지만 내가 물고기에 대해 정말 잘 모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고등어나 갈치 같은 생선 빼고는 아무것도 이름을 모르겠는 거였다. 야식으로 가끔 우럭 회를 시켜먹었어도 실제 우럭은 이날 처음 보았다. 싱싱함이 묻어나오는 생선들을 보는 게 그리도 즐거웠다. 아이가 호기심 있게 눈을 반짝거리며 생선 구경을 하는 동안 나도 옆에서 열심히 구경을 했다. 


두 손에 다 잡을 수 없을 만큼 물건을 많이 샀다. 엄마는 이게 숙소 냉장고에 다 들어갈지 모르겠다고 걱정하시며, 일 주일 이상 장을 안 봐도 될 것 같다고 하셨다. 아이는 두 시간이나 시장 구경을 하고서도 집에 안 가겠다고 울었다. 또 다시 시장으로 들어가서 어묵을 사 먹고 어항 속의 금붕어들을 한참 보고 나서야 차에 올라탔다. 오늘 시장에 가서 느꼈던 점은 오일장 상인들이 정말 친절하다는 것, 그리고 시장은 언제나 재미있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제주 여행을 온다면, 마트에서 후다닥 장을 보지 말고 시장에 한번쯤 꼭 가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진짜 제주를 온전히 느끼고 싶다면. 다음 시장 코스는 19일에 열리는 한림민속오일시장이다. 그곳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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