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집으로 돌아간다. 무엇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지만, 끝은 언제나 아쉬움을 남기게 마련이다. 순간순간 내가 제주에 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때가 많았는데 내일 여기를 떠난다는 것 역시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한 달이 생각보다 참 빠르다는 것과 제주는 너무도 좋은 곳이라는 것, 이 두 가지만 확실하게 느껴진다.
제주 한 달 살기의 시작은 제천의 어느 책방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나 홀로 제주>라는 책이었다. 책을 펼쳐보는 동안 나는 제주로 떠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힘든 육아와 늘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에 지친 나는 그 소망을 비로소 현실로 이루어냈다. 난 새로운 곳에 가서 지금 여기에는 없는 신선한 무언가를 느끼고 싶었다. 낯선 동네, 새로운 음식, 짠내 나는 바다의 공기... 제주 여행 역시도 육아의 연장선임에는 틀림없었으나 내게 너무도 익숙해서 때로는 지긋지긋한 이 공간을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급하게 온 만큼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시행착오가 많았다. 대충 살펴보고 예약한 숙소는 생각보다 너무 지저분했고, 렌터카는 내 실수로 인해 80만 원이나 비싸게 지불하고 빌리게 되었으며, 내가 예약한 차는 예상치 못하게 후방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지 않아서 며칠간 운전할 때마다 진땀을 흘려야 했다. 할머니와 딸과 손자의 오순도순 즐거운 여행을 기대했던 나는 엄마와 종종 의견차로 인해 부딪치게 되면서 마음이 불편한 날들이 있었다. 수첩에 잔뜩 적어놓았던 맛집들은 코로나 때문에 거의 가질 못했다. 이게 제일 슬픈 일이다. 밀폐된 공간에서의 식사는 절대 안 된다는 엄마의 강경한 입장을 나는 결국 꺾지 못했다. 애월에서 꼭 가 봐야 한다는 갈치조림 식당도, 흑돼지 돈가스가 맛있기로 정평이 나 있는 맛집 탐방도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오직 힘든 일들만 가득 찬 여행은 결코 아니었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여행 루트를 짜다 보니, 생애 첫 감귤 체험도 실컷 할 수 있었고 바닷가의 소라게를 자세히 관찰할 수도 있었다. 신발과 양말을 벗어던지고 몇 시간 동안이나 바닷가 해수욕장에서 모래놀이를 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아이가 있었기에 내가 경험할 수 있었던 것들이다. 남편이나 친구와 함께 왔다면 그저 바다 배경으로 감성 사진 몇 컷 찍고 떠났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 지내며 엄마와 투닥거리기도 했지만 길고 긴 대화들을 나누어 무척이나 좋았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그리고 아이 둘을 키우며 분명 녹록지 않았을 엄마의 지난 삶 이야기. 언젠가 이렇게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던 우리의 시절을 그리워하게 되겠지.
동전의 양면처럼 무엇이든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는 법. 여행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힘들고 지치는 일 투성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날 웃게 하는 일도 무지 많았다는 것을 나는 깨닫는다. 그리고 아무리 완벽하게 계획을 짰더라도 결코 내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음을, 또 허들을 넘듯 내가 맞닥뜨린 크고 작은 시행착오들을 하나씩 하나씩 겪어내며 난 조금씩 더 성장해 간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제주 한 달 살기를 추천하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yes다.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매일 했으니까. 다시 돌아올 언젠가, 그때는 마스크 벗고 바닷바람 신나게 쐬고 이번에 이루지 못해 한 맺혔던 맛집 투어를 성공적으로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