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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유미 Dec 01. 2020

귤 따러 가자~!

손이 노래질 때까지 귤을 먹던 날

이번 제주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감귤 체험과 시장 구경이 아닐까 싶다. 아이가 귤을 좋아해서 귤밭에 뒹굴면 참 행복해할 것 같아 일정에 넣었는데, 상상 그 이상으로 즐거워했다. 제주 한달살기 중에 감귤 체험을 세 번이나 갔다.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우리가 한 달동안 먹은 귤의 양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진짜 손이 노래질 때까지 먹고 먹고 또 귤을 먹었으니 말이다. 


아이가 이제까지 본 귤은 바구니에 담겨 있거나 냉장고에 들어 있는 것이 전부였을 텐데, 그 주황색 귤들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을 처음 본 아이는 그게 얼마나 신세계였을까. 놀라움과 신기함을 합해 놓은 그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도 사실 귤이 그렇게 다닥다닥 붙어 있는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 누군가 귤나무를 그려보라고 한다면 나는 나뭇가지에 듬성듬성 달려 있는 귤을 그릴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 본 귤나무들은 한 가지에도 너무 많이 달려 무게를 이기지 못해 바닥까지 축 쳐져 있고, 여러 개가 겹쳐 있어 그야말로 '무더기'였다. 엄마는 한 나무에서만 따도 몇 박스는 나올 것 같다고 하셨다. 한달살기 올 때 참고했던 <아이와 제주한달>이라는 책에 보면 제주는 귤이 정말 흔해서 식당이나 카페에도 무료로 먹을 수 있게 놔 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굳이 귤을 사먹을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 말이 단번에 이해가 됐다. 귤이 이렇게 차고 넘치니까. 


감귤 농장에서는 자기가 딴 귤을 무제한 먹을 수 있고, 한 바구니만큼 귤을 따서 집으로 가져갈 수 있다. 아이는 아직 36개월이 안 되어 무료 입장이었고 엄마와 나는 각각 바구니 하나와 귤 따는 데 쓰는 가위를 건네받았다. 아이는 전력질주하듯 귤을 먹고 또 먹었다. 이 귤을 다 먹어버리겠다는 듯이 마음이 바빠보였다. 배탈이 나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으나 표정이 너무 즐거워보여서 그냥 두었다.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아이가 바구니 두 개를 낑낑대며 들고 다니는 걸 보고 엄마와 나는 한참을 웃었다. 귤이 들어 있어 꽤 무거웠기 때문에 '엄마랑 할머니가 들게' 얘기해도 소용없었다. 아이는 어떻게든 귤 바구니를 사수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자기딴애는 그 귤이 너무 소중해서 직접 들고 가고 싶은 거였다. 그 귤을 누가 가져갈세라 보물상자 만지듯 아끼는 모습이 영락없는 세 살짜리 아기였다. 


감귤 체험을 마치고 농장을 나서며 아이는 귤나무를 향해 연신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놀고서도 여전히 아쉬운 모양이다. 시간이 많이 흐른 어느 날, 아이는 귤밭에 가서 깔깔거리며 놀았던 것을 기억조차 못 하게 될 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기억 못하면 어떤가. 귤밭을 뒹굴며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하며 입 속에 귤을 쏙 넣던 아이의 모습을 엄마인 내가 오래도록 기억해 주면 될 테니. 흐드러지게 핀 꽃보다 더 아름답던 주렁주렁 귤나무, 그리고 귤향기를 느끼며 함박 웃던 엄마와 아이와 나. 마음 속에 소중하게 저장해 두고 싶은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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