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가장 행복한 얼굴을 본 날
아주 오래 기억해 두고 싶은 순간
오늘은 날씨 좋은 일요일. 평일에 육아를 전담하는 나는 주말이 오면 남편 찬스를 쓰고 잠시나마 휴식 시간을 갖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편이 일정이 생겨 평일과 다름없는 주말을 보내게 되었다. 이런. 순간 마음속에서 확 짜증이 일었다가 얼른 정신을 차렸다. 육아하는 엄마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히 집중할 시간적 여유가 없으므로. 서둘러 식사를 하고 짐을 간단히 챙겨 일단 밖으로 나왔다.
코로나 19는 불행하게도 주말에 나갈 수 있는 장소를 축소시켰다. 아이가 마스크를 벗어버리는 상황에 대비하여 일단 사람이 많지 않아야 하고, 밀폐 장소는 안 되며 아이가 돌아다니기에 위험하지 않은 곳이어야 한다. 내가 아이와 자주 가는 곳은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기적의 도서관이다. 코로나가 닥치기 전에는 내 집 드나들듯 오던 곳이었는데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현재는 굳게 문이 닫혀 있다.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바꾸었다. '도서관 안에 못 들어가면 밖에서 놀면 되지!' 남들이 보기에는 그 작은 도서관 앞마당에서 뭘 하고 노는지 의아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여기는 곳곳에 놀잇거리가 숨겨 있는 최고의 놀이터다. 오늘도 나는 고민 없이 이 곳으로 차를 몰았다.
마당에는 조롱박이 한가득 열려 있고 열 종류도 넘는 다양한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 있어 아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한쪽에는 사과나무가 있고 밭에는 고구마가 무럭무럭 자란다. 게다가 도서관 전체가 많은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어 온갖 새들이 드나들며 예쁜 소리를 낸다. 아이는 천천히 걸어가면서 꽃이 눈에 띄면 손으로 가리키면서 '음! 음!'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엄마, 여기도 꽃이 있어. 이쁘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우리는 낡은 나무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집에서 싸 온 간식을 꺼내 먹었다. 사과 한 조각을 손에 든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집에서도 서러워 울다가도 '사과 줄까?' 하면 눈에 눈물을 매달고서 금세 배시시 웃는 녀석이니까.
도서관 앞마당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그네다. 아이는 그네를 좋아하는데 아파트 놀이터에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지 여기에 있는 그네를 특히 좋아한다. 나는 아이를 내 위에 앉히고 함께 그네를 탔다.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그네를 타면서 아이가 좋아하는 동요를 불러주었다. 아이가 까르르 웃기 시작했다. 간지럽힌 것도 아닌데 너무 즐겁고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서 소리 내어 한참을 웃었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 눈을 맞추며 또 웃었다. 나는 이 순간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무리 육아가 힘들고 때로는 내 몸이 부서지는 것 같은 아픔을 느끼더라도 결국은 지금처럼 아이의 가장 예쁘고 빛나는 모습들로 인해 난 다시 일어서게 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알고 있는 동요는 다 부른 듯하다. 노래 부르기에 지칠 무렵 슬며시 그네에서 내려오려고 하는데 조금 더 타자는 아이의 성화에 결국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까지 완창하고 나서야 겨우 내려올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채훈아, 오늘 엄마랑 그네 타기 재미있었어?" 물어보았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눈이 안 보이도록 씩 웃어준다. 분명 엄마의 노래 실력은 별로였을 테지만 그네 타며 얼굴에 스치는 시원한 바람, 눈 앞에 보이는 파란 하늘과 나무, 자신을 꼭 안은 따스한 엄마의 품, 노래보다 더 아름다운 새소리... 이 모든 것들이 모여 아이를 행복에 젖게 했을 것이다. 아이의 웃음은 마치 비타민 100알을 한꺼번에 먹은 것 같은 긍정 에너지를 내게 준다. 나는 오늘과 같은 아이의 행복한 순간을 자주 보고 싶고, 엄마로서 그 순간을 함께하는 날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행여 하나라도 놓칠까 봐 아쉽고 조바심이 난다. 코로나로 움츠러드는 요즘이지만, 코로나 따위가 결코 아이의 행복을 빼앗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는 곳 어디에서든 행복을 만들어나갈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