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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유미 Sep 19. 2020

'함께' 아이를 키운다는 것

아이를 기르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육아를 하며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아이의 존재는 '나'라는 사람을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성찰하게 만든다. 아이를 낳기 전의 나를 다듬고 깎아내고 매만져서 전혀 새로운 모습의 나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나는 지극히 폐쇄적인 부류의 인간이었다.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낙인찍고 살아왔으니, 직장을 비롯한 사회에서의 공동체 생활은 내겐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남들에게는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모임이나 술자리, 회의 등이 나에게는 꽤나 큰 맘먹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었으니까. 직장에서 중요한 워크숍이나 발표가 있을 때, 2박 3일짜리 연수가 있을 때 나는 전날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다. 남들 앞에 나를 온전히 드러내야 한다는 것, 새로운 환경에서 누군가를 만나 어울려야 한다는 것은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피곤한 일상이 많았지만 그래도 큰 문제없이 잘 살아왔다.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그저 내 일을 묵묵히 열심히 하면서. 가끔 외롭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건 나의 성격 탓이니 어쩔 수 없고, 무리해서 인간관계를 넓힐 시도를 하기보다는 지금 갖고 있는 소소한 인간관계나 더욱 신경 쓰면서 살면 되지 싶었다. 세상에는 누구와도 쉽게 가까워질 수 있는 친화력을 타고난 사람도 있는 반면 나처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명제에 너무나 동떨어진 사람도 있는 법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낮이 밤인지, 밤이 낮인 건지 모를 전쟁 같은 신생아 시기를 보냈다. 어느 따스한 봄날, 아이와 둘이 집에 덩그러니 있는데 원인을 알 수 없는 고립감이 자꾸 밀려왔다. 그것은 내가 20대에 가끔 느꼈던 외로움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는데, 해결할 방법을 알 수 없어 답답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몇 번 인사 나눈 것이 전부인 이웃들에게 다짜고짜 들이대며 친해지기도 어렵고, 삼삼오오 모여있는 엄마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어색하게나마 친한 척을 해보자니 그럴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을 혼자 보냈다. 그때 나는 실감했다.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은 거친 파도에 혼자 맞서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라는 것을. 육아 초보인 내가 궁금한 게 생겼을 때 서슴없이 물어볼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직접 겪어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육아의 고충을 함께 나눌 사람이 곁에 있었으면, 우리 아이와 함께 놀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또래 친구가 있었으면 싶었다. 대학 때 나보고 일본 사람 같다고 가끔 얘기하던 선배가 있었다. 추측해 보건대 깍듯한 예의와 미소로 일관하지만, 쉽사리 누구에게도 마음을 내주지 않는 차가움 때문에 붙은 수식어 이리라. 사람들 앞에서 철옹성을 쌓았던 나에게 이제 조금씩 변화가 필요함을 나는 아이를 키우며 절감하게 되었다.


   작년 10월, 내가 사는 지역에 '공동육아나눔터'라는 곳이 오픈한다는 반가운 이야기를 들었다. 진정 나를 위한 장소인가 싶었다. 지친 육아에서 드디어 오아시스를 만난 느낌이랄까. 장난감과 책 들이 종류별로 구비되어 있고 더욱 좋았던 점은 엄마들과 아기들과의 모임을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이곳에 정기적으로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아이들도 함께 돌볼 수 있는, 그야말로 '공동육아'의 공간이다. 그룹 속에 들어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은 이전의 나에게는 무척 힘든 일이었을 테지만, 나는 이제 용기를 내어 마음을 열었다. 엄마는 용감하다고 했으니, 나라고 못할 게 없다. 그리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조금씩 사람들에게 다가가 보았다. 내가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 다른 엄마가 우리 아이를 돌봐 주고, 아이들 여럿을 모아 놓고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함께 밥도 먹고 그러는 사이 우리 사이에는 견고한 끈이 조금씩 생겨나는 것 같다. 서로를 돌보고 다독이는 것, 나는 그것이 공동육아의 힘이라 믿는다.


   어제 공동육아나눔터에서 부모들을 위한 강의가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김지연 그림책 작가가 온다고 하여 한달음에 달려갔는데 마침 주제가 '공동체의 중요성'이었다. 사람들이 일단 모여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모이면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들을 얻을 수 있고 다양한 인적자원이 구축되며, 다름을 인정하고 품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이야기.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엄마 혼자서만 아이를 외롭게 키우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복닥거리며 그 속에서 주고받음을 통해 관계를 맺고 성장한 아이가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도 더욱 빛을 발하지 않을까. 아이가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갈 것이 아니라면, 어차피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상 속에서 삶을 꾸려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홀로 열심히 일하고 어느 정도의 만족감을 느끼며, 나의 원래 성격대로 사람들 틈에 잘 끼지 못한 채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위로하며 약간의 씁쓸함과 체념을 지닌 채로. 그러나 아이의 존재는 나를 둘러싼 성을 조금씩 부수게 하고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늘 한결같을 것 같은 나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세계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그 속에서 분투하고 고민하다 보면 나는 한 뼘 더 자라 있었다. 밥 주고 기저귀 갈고 씻기고 재우며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 같지만, 아이 역시 매 순간 나를 성장시키고 있다. 아이는 세 살, 나는 엄마 된 지 2년이 다 되어가니 두 살이다. 오늘도 아이와 함께 부지런히 커야겠다, 쑥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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