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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유미 Oct 08. 2020

엄마는 달을 좋아한단다

달이 주는 행복

  나는 달을 무척 좋아한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고, 그저 달을 바라볼 때면 알 수 없는 행복감에 젖곤 했는데 그 느낌을 오래도록 사랑했다. 달은 내게 아름다움, 신비로움, 독특함 그 자체였다. 보름달은 둥글고 충만한 느낌을 주었고, 반달은 탐스런 사과 한 조각이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듯했다. 언젠가부터 밤에 산책을 나갈 때면 달부터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달을 손바닥으로 가려보며, 만약 달이 없다면 얼마나 이 세상이 어둡고 우중충하고 삭막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달이 얼마나 좋았으면 첫 아이의 태명도 '보름이'였고, 나중에 둘째를 갖게 된다면 태명을 '초승이'로 해야겠다고 미리 정해 두었다. 학창시절에 지구과학을 무지 싫어했지만 달의 위상 변화만큼은 열심히 공부했던 나다. 달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달에 대한 예의라고나 할까. 이쯤되면 나, 분명한 달 예찬론자다. 

   

  몇 년 전, 김용택 시인의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라는 시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달을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완전히 취향 저격인 이 시를 읽으며, 달이 예쁘다고 전화를 걸어줄 수 있는 낭만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은 요즘도 가끔 '지금 창문 밖으로 달 좀 봐. 진짜 예쁘다.' 라는 문자를 보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이상형을 만나 결혼을 잘 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부부는 서로를 닮게 만든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달이 그냥 달이지 뭐.' 하며 평범하게 여겨졌던 것이 어느새 특별한 존재가 되고, 떡볶이를 전혀 좋아하지 않던 남편이 떡볶이 킬러인 나를 만난 후부터 어느 순간 떡볶이를 잘 먹게 된 것처럼. 

 

  아이와 함께 그림책 읽는 것은 내 일상의 커다란 즐거움 중의 하나다. 분명 아이에게 읽어줄 요량으로 책을 고르고 함께 읽는 것인데, 아이보다도 내가 큰 감동을 받아 가슴이 먹먹해지거나 눈물을 떨굴 때도 있다. 숨어 있는 보석을 찾는 느낌으로 매일 설레는 마음으로 그림책을 읽고 있다. 아이가 오 개월때부터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으니, 여태까지 꽤 많은 그림책들을 읽었다. 며칠 전 집에 있는 그림책들을 살펴보다가 갑자기 깨달은 것이 하나 있는데, 내가 달이 나오는 그림책을 자연스럽게 고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달님의 산책》,《달님 안녕》,《잘자요 달님》,《달샤베트》등등. 달 그림책을 많이 보여줘야겠다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달에 대한 나의 관심이 책 선택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달이 주된 테마가 아니더라도 그림책 속에 달이 작게라도 그려져 있으면 나는 달 그림을 유심히 보고 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아이도 나처럼 달이 궁금해졌으리라. 아이는 밖이 어두워지면 가끔 '음!음!' 하고 창밖을 손으로 가리키며 달이 있나 살펴보자는 표현을 한다. 그리고 나와 함께 창문을 열어 달이 보이면 아이는 이내 달처럼 환하게 웃어보인다. 내가 달을 볼 때와 비슷한 표정이다. 


  사람이 되었든, 사물이 되었든 무언가 내가 좋아하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다. 어떤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삶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것이고, 내가 그 좋아하는 대상으로부터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는다는 뜻이다. 내가 삶이 힘이 들 때 '나에겐 책이 있어. 그래서 다행이야.'라고 느끼는 것과 비슷하게, 때때로 위로가 필요할 때 밤하늘의 달을 가만히 올려다보면 언제나 그랬듯 달은 상상 이상의 힘을 내게 주었다. 언젠가 달의 따스함을 담은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 생각해 오고 꿈꿔왔던 것은 그간 많이 이루면서 살아온 편이니, 이것도 마냥 허황된 꿈은 아닐 것이다. 내지를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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