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 대신 곡선길을 예찬

옛 광주여고에서 구시청사거리 길 위에서의 단상

by 일상여행자
광주폴리.jpg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가 전통 누각과 포장마차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설계한 광주폴리 중하나. 광주 구시청 사거리 설치되어 시민들이 일상 공간으로 활용한다


구시청사거리 일원 아카이브 프로젝트 PM으로 합류해 새로운 길이 일상 공간이 되었다. 15분쯤 소요되는 길을 걸어서 출근한다. 그러므로 출퇴근길에 마주치는 새로운 길은 옛 광주여고 근처에서 출발하여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을 가로질러 구시청 사거리까지이다.

이전에도 간간히 걷던 길이지만 이렇듯 매일 마주치며 걷는 공간의 주변 공간을 바라보면서 문득 길도, 건물들도, 미디어캔버스 등도


왜 이렇게 모두 반듯한 직선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각형박스.jpg

길이 직선화 되면서 사람은 점점 길 밖으로 소외된다. 자동차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공간의 측면에서 본다면 자동차와 사람이 공존하는 도로뿐 아니라 보행자 전용 도로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이제는 어디에서나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길들이다. ‘빠름’즉 속도는 산업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그렇지만 직선의 길에서는 길의 여정이 생략된다.

2번출구.jpg


우리 시대의 가장 독창적인 철학자, 속도의 사상가로 불리는 폴 비릴리오(Paul Virilio)는 그의 책 <속도와 정치>에서 질주학(Dromologie)이라는 개념을 선보였다. 비릴리오에 의하면 질주학 즉 드로몰로지는 드로모스(dromos)는 속도(speed)라는 의미도 있지만 그리스어로 경주, 경주로, 민첩한 움직임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질주학에서의 질주는 속도의 논리를 뜻하는 개념이라기보다 그 근원에 ‘경쟁’의 원리가 깔려 있다.


이처럼 ‘빠름’은 마음의 여정을 상실, 즉 접촉하고 관계를 맺는 과정 혹은 관계 속에서의 좋은 마음, 때로는 아픈 마음, 마음의 울림, 예기치 못한 경이로움을 잃어버리게 하며 무의식 중에 사람들로 하여금 경쟁심을 당연시 여기도록 만든다. 비릴리오는 기술의 발달로 인해 갈수록 가속화되어가는 이런 상황으로 인한 현대사회의 파국을 우려한다.



속도와 정치.jpg


직선은 차선이 아닌 최선을 향해 끝없이 나아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일까 출근길에서의 일상 풍경에 직선과 함께 곡선이 좀 더 어우러져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새삼 해본다. 이건 아마도 지금까지의 내 삶을 되돌아볼 때 너무 앞만 보고 달렸던 직선형의 삶을 살았기 때문 아닐까!!


그래서 어제는 비록 비가 내렸지만 출근길이 걸어서 15분 거리임을 감안해 20여분 미리 집에서 나와 일직선의 보행자도로를 최소화하고 오솔길을 걷듯이 최대한 구불구불, 느릿느릿하게 샛길로 걷는 여유를 살짝 부려봤다


작고 사소한 이러한 ‘마음 여정의 회복’을 통해 생각했다



‘내면의 기쁨은 휘어짐으로부터 온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무벤취.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쩌다 전주여행의 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