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는 것과 아는 것 사이의 ‘어긋남’

다르게 바라보기, 기쁨의 가능성.. 틈틈이 재밌으려면,

by 일상여행자


낙서.jpg

아카이브 기록단 동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M이 말했다.


떠나라

낯선 곳으로

아메리카도 아니라

인도네시아도 아니라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듣던 우리 모두 동시에 ’ 조 온데~...라고 말했다.


“근데 이건 내가 한 말이 아니고 ㅇd 시인이 쓴 문장...”이라고 M이 말했다.


내가 말했다.

“칠판에 좀 적어두면 어때?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이네~


그런데 이에 대해 S가 말했다.


"문장이 좋긴 한데 시인 ㅇㅇ는 예전에 그 사건에 연루되었어서.."


”아아 그렇지, 미투 사건에 연루됐었지

그러네... 시인의 글은 그의 “정신”이니까


우리가 함께 일하며 느슨해지는 마음을 다잡는 문장으로 칠판에

‘떠나라...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를 적어놓긴 하되

누구의 시로부터 인용함 이란 말은 생략했다.


지금도 칠판에 그 문장이 적혀있다.

가끔씩 쳐다보며 생각한다.

이 일을 마칠 때까지 마치 처음에 이 일을 하게 되며 설레었던 그 순정한 마음이었으면... 생각한다.


반복적인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어느새 ‘관점’을 새롭게 하기가 어렵다. 아카이브는 대상을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이런 점에서 상상력 동원을 위한 달리 보기가 늘 필요하다. 익숙해짐을 경계하자.



은행나무1.jpg
은행나무3.jpg
은행나무2.jpg

K 작가를 만나기 위해 집에서 가까운 카페 L에 갔을 때다.

그곳 카페를 지나오고 가며 “언젠가 들러봐야지” 생각했었다.

“커피 맛은 괜찮을까?” 커피맛이 좋을지 어떨지보다 일단 그 카페에 가보고 싶은 것에 의미를 두었다. 옥상 테이블이 있었기 때문이다.


카페에 약속시간보다 먼저 도착했다.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들고 2층 옥상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앉아 거리를 응시하고 싶었다. 지붕도 벽도 없어 바람도 하늘 풍경도 직접적으로 가까이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바람이 제법 쌀쌀함에도 옥상 테이블 자리가 없었다. 자리 나기를 기다렸다. 가까운 데서 웨이팅.. 10여분쯤 지나 자리가 났다. 얼른 빈자리로 옮겼다. 겨울바람에 살짝 코끝이 시렸지만 차를 마시니 속이 따듯했다. 더군다나 오후 햇살이 남아있어 춥지 않았다.


K 작가를 기다리는 동안 2층에서 1층 거리를 내려다봤다. 며칠 전부터 매일 걷는 거리이지만 “와우~” 위에서 내려다보니 역시 1층에서 느껴지지 않던 스펙터클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존 버거는 그의 책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에서 말했다.


‘보는 행위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결정해 준다.

(...) 우리가 보는 것과 우리가 아는 것 사이의 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결코 한 가지 방식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매일 저녁 해가지는 것을 볼 때, 우리는 해가 지평선 아래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지식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광경과 꼭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존 버거(John Berger), <다른 방식으로 보기>, 열화당, 최민 옮김







이 책은 원래 1972년에 방영된 텔레비전 연속 강의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 강의에서 존 버거는 일반적으로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법이라고 알려진 것들이 어딘가 잘 못된 또는 편협한 방식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며 기존의 아카데믹한 보는 방식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_최민, 옮긴이의 말 중에서



무심히 보든,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바라보든지 간에 본다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선택의 결과, 우리 나름의 눈으로 보고자 하는 대상을 내 시야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렇지만 선택의 저변에는 우리의 인식이든, 선입견이 깔려있다.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뜨( René Magritte)는

언어와 시각 사이의 영원한 어긋남을 <꿈의 열쇠>라는 그림 연작 속에 표현했다.

꿈의 열쇠 1930.jpg 르네 마그리트 <꿈의 열쇠>, 1930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꿈의 열쇠> 그림 속에는 6개의 각기 다른 그림이 있다. 각각의 그림에는 그 이미지를 설명하는 단어가 적혀있다. 하지만 각각의 그림과 그 밑에 적힌 프랑스 단어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계란 그림 밑에 아카시아(l’Acacia )라고 적혀있다.


구두=달(La Lune)이 아니다

중절모는 눈(la Neige)이 아니다.

촛불은 천장(Le Plafond)이 아니다.

유리컵은 폭풍(L’Orage)이 아니다.

망치 그림 밑에는 사막(L’Desert)이라고 적혀있다.

특정 용도와 이름을 가지고 만들어진 사물들은 그것이 만들어진 순간부터 특정한 사회적 함의를 갖는다. 선입견이 전제한다. <꿈의 열쇠> 속 이미지들의 배반이다.

화살표 벽면.jpg

우리가 풍경을, 사물을,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또는 우리가 믿고 있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


끊임없이 다르게 바라보기 해야 할 것 같다

슬프거나, 우울하지 않으려면,

기쁨의 가능성... 틈틈이 재밌으려면



12제자 그림 패러디.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해남 미황사 대웅보전‘있는 그대로의’ 매력에 빠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