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집착, “하루노야(春乃家), 어디쯤에 있었나?

_사진출처 : 광주역사민속박물관

by 일상여행자

집착을 사랑과 혼동할 때가 있다. 하지만 사랑은 상대에 대해 배려심이 포함된 감정, 반면에 집착은 이기심이 포함되어 있는 감정이다. 때문에 집착이 심해질수록 그 부담감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건 상대방으로 도를 넘어선 집착은 고통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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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동 카페 '시점'에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반면에 사물 또는 주제에 대한 집착은 필요할 때가 있다.


늦은 시간 K선생님의 전화


“하루노야가 옛 적십자병원 자리에 있었다고 한 것 말이지

잘못된 거야. 그 자리가 아니야”


지난번 내가 참여했던 아시아 음식문화거리 아카이브 프로젝트 결과로 만든 자료집에 수록된 내용 관련 말씀이다.


“오류야”

“과학적 검증이 필요하단 말이지. 후배이건 동료이건 간에 우린 오류를 바로잡는 용기를 가져야 해”


광주 근대 생활사 중 많은 부분을 우리는 박선홍 선생님의 <광주 1백 년> 책 1~3권에 의지한다. <광주 1백 년> 2권에 실린 하루노야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광주 최초의 일본 요릿집이 광주에 처음 생긴 것은 1908년 초엽이고 황금동의 옛 학생회관 자리에 문을 연 기타무라로(北村樓)이다. 이 요릿집은 전국을 통틀어 규모면에서 빠지지 않을 만큼 컸다. 내부에 2백여 명이 게이샤와 어울려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출 수 있는 연회장도 갖추고 있었다.


한편 순수한 요릿집으로는 기타무라로 다음에 생긴 하루노야(春乃家)가 있었다. 옛 적십자병원 자리쯤에 있었는데 개업할 당시만 해도 아직 광주천을 따라 제방이 없었다. 그 시절에는 물길이 구불구불 흘렀고 적십자병원 쪽으로 아름드리 고목이 울창하여 짙은 그늘을 물 위에 드리우고 있었다. 하루노 야는 이런 풍광을 이용해 광주천에 수상 발코니를 짓고 강물을 감상하며 술을 마시고 놀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제법 인기가 있었다. (<광주 1백 년 2>, 박선홍 저, 광주 문화재단 , 2014, 102~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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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노 야 : 사진출처 <광주 1백 년> 2권


책에는 1920년대 하루노야 주변 사진(위)과 옛 광주적십자병원(서남대병원) 사진(아래)이 수록되어 있고 다음과 같은 설명글이 있다.


옛 적십자병원 자리에 있었는데 고목이 울창하게 우거지고 그 밑에 넓고 깊은 웅덩이가 있었다. 풍광이 아름다운 이곳에 수상 누각이 있어 술을 마시며 놀았다.


하루노야에 대한 광주역사문화자원 스토리텔링

(http://gjstory.or.kr/sub.html?pid=48&formtype=view&code=1081)에 따르면

‘광주천변 옛 적십자병원 자리에 있던 하루노야(春の家)가 불로동 옛 우미 여관 옆으로 이전하자 그 자리로 옮겼다. 당시 신광원은 광주 주요 인사들이 출입했다.’로 기록되어 있다.


조광철(광주시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의 <광주드림> 2021년 10월 24일 자 글에 따르면 ‘광주천이 아직 직강공사를 하기 전이라 강물은 유리알처럼 맑고, 강폭은 쟁반처럼 널찍하며, 강둑에는 덥수룩한 수목들이 빼곡히 들어차 자연하천의 면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중략)


물론 당시엔 녹십자병원이나 그 전신인 적십자병원도 없었다. 그 자리엔 ‘하루노야’란 요정이 들어서 있었다. 1911년 5월에 처음 문을 연 하루노 야는 앞서 1908년부터 황금동 학생회관 자리에 있었던 기타무라로(북촌루)와 함께 광주의 대표적인 일본식 요정이었다.


1920년대 광주에는 이런 요정이 아홉 군데나 있었는데, 그 당시에나 그 뒤에도 유달리 하루노야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미 1910년대에 기타무라(北村)란 일본인은 “수루(水樓)가 강과 얼굴을 맞대고 있어 여름철 더위를 식히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라고 했고, 광주 토박이 최윤상 씨에 따르면, 강물 위로 일종의 나무데크 같은 것을 설치해 주변의 경치를 ‘독점하듯’ 감상할 수 있었다고 했다.


물론 이 자리에 하루노야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향토사가 박선홍 씨에 의하면, 후일 하루노 야가 구시청 사거리로 옮겨가면서 원래 그랜드호텔 자리에 있던 광주 최초의 조선 요릿집인 신광원(新光園)이 이곳으로 옮겨와 문을 열었다고 한다.


오늘날 녹십자병원 일대에서 조탄보나 옛 자취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용케도 녹십자병원 뒤편 주차장에 몇 그루의 고목들이 우두커니 서 있는데, 사진에 나오는 하루노 야 주변의 나무들과 연관이 깊어 보인다. 사람들이 버려둔 기억을 나무만이 되새김질하고 있으니 그 앞에 서면 기분이 묘해진다.


이러한 내용들에 근거해 나는 아카이브 자료에 하루노야에 대해 ‘1911년 5월, 옛 적십자병원 자리에 요정인 하루노야(春乃家)가 개업했다. (...) 큰 나무에 둘러싸여 숲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물이 바로 하루노야이다. 오래된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지고, 수상 누각이 있어서 술을 마시며 풍류를 즐기기에 좋았다고 한다.’라고 적었다.


K선생님은 일제 강점기의 주소를 재확인하는 작업 중이시라고 했다. 관련된 토지 대장 등을 모두 확인하고 계신다고 했다.

나 또한 아카이브 작업 당시 1912년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부동정 지적원도(일제강점기 토지조사 사업 당시 토지의 지번, 지목, 소유자명을 기록하고 있다.)를 국가기록원에 의뢰해서 받아 살펴보면서 이를 토대로 지번의 변화에 따른 장소적 상황들을 맥락적으로 살펴보고자 했지만 프로젝트 과업기간이라는 시간적 한계로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


“관념적으로 하지 말고, 현장감 있게(...), 사명감을 가지고 개척해야 한다"


대개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그 일을 지우고 또 다른 일에 몰입한다. 그러다 보니 머릿속과 정신은 늘 엉킨 채 그 자리를 맴돌기 일쑤다.


지도상에 없는 기억의 장소. 이에 대해 아카이브를 할 때에는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의심해야 한다. 그럼에도 계속 빠져들기에는, 잊지 않으면 산적한 다른 일들을 할 수 없기에 그 일에서 손을 떼고 또 다른 상황 속으로 뛰어든다. 조직 안에 있을 때나 밖에 있을 때나 반복되는 일상이다.


“당면한 돈벌이에 집착하지 말고 왜곡된 것을 과학적으로 바로잡는 것에 집착을 가져야 한다”


일침과 애정 어린 조언이시다.



광주 불로동 옛 하루노야로 추정되는 장소 주변에 유독 큰 나무들이 많았다. 그 나무들은 바라보며 광주 근대 일상사 아카이브를 몇 개월이 아닌 좀 더 지속적으로 장기간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다.

나무들이 품고 있는 그 기억의 시간들을 받아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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