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박 Aug 23. 2021

제발 죽읍시다, 우리

김성중 소설 [이슬라]를 읽고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억장이 무너진다는 상투적인 표현이 이리도 적절할까. 절대로 마르지 않을 것 같은 눈물이 끝도 없이 흘러 슬플 만큼 슬퍼야 인정의 단계로 도달하게 될 때까진 더 이상 볼 수 없단 상실감, 더 잘해주지 못했다는 부채감, 왜 날 두고 떠나느냐는 원망,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억울함이 범벅이 된다. 누군가는 짧게, 누군가는 아주 오랫동안. 어떤 죽음도 슬프지 않은 것은 없건만 나의 사람이면 더욱 아픈 것이 바로 가까운 이의 죽음이다.


그런데 죽음이 없어진다? 불로장생을 위하여 온갖 희생을 마다 않던 고릿적 사람들이 감은 눈을 희번덕 일만 한 일이 일어났다. 소설 [이슬라] 속에서다.

불사의 존재를 드라마에서 만난 적 있다. 죽지 않고 오래 살면서 -심지어 늙지도 않아서- 시대에 맞춰서 변화된 생활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 사람을. 그는 늘 죽는 것을 소망해 왔지만 방법을 몰라 그저 생명을 유지한다. 하지만 아주 멋진 모습으로.


[이슬라]의 세계는 다르다. 노환으로 임종 직전인 할아버지에게서 죽음이 멈췄다. 죽기를 소망하지만 절대로 죽지 않는다. 만삭의 임신부에게도 죽음이 멈추는 바람에 몇 년이 지나도 부른 배를 붙들고 살아야 한다. 죽음이 없어서 탄생도 없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어쩌면 죽음이라는 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다. 이별이 아쉽지만 적절한 이별이 나머지를 살게 한다. 순리를 거스르면 사달이 난다. 죽지 못하는 자의 삶은 얼마나 처절한가.




김성중의 [이슬라]를 처음 읽을 땐 너무 난해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 잘 몰랐다. 두 번째 읽으니 문장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었고, 작가의 상상력에 어느새 젖어들어갔다. 죽음이 사라진 세계를 부유하는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 


엄마여서 그랬겠지만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임신부였다. 아이를 열 달 동안 태 안에 품어본 엄마라면 누구나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안다. 점에 불과하던 아이는 점점 자라 몸집을 불리고 모체도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언젠가 뻥 터질 것처럼 자꾸만 늘어난다. 살이 터지고, 뼈 마디가 늘어나고, 아기가 장기를 붙들고 최대한 잡아당기는 것 같다. 줄다리기 선수가 뒤로 눕는 것처럼. 

그래도 버틸 수 있는 힘은 내 아이가 언젠가 -비교적 정해진 시기에- 무사히 밖으로 나올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언젠가 끝날 것에 대한 만족, 그 끝이 새로운 시작이고 그것이 살아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기쁨으로 인내를 감수한다.

그러나 [이슬라] 속 임신부는 아니다. 산통을 겪을 수 없다. 아이를 만날 수 없다. 3Kg 남짓한 아이와 10Kg에 육박하는 태반이 내 몸에서 분리되지 않은 채로 100년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느 지옥보다 고통스럽다. 일평생 사랑스러워야 할 존재가 암덩어리처럼 내 몸을 갉아먹으면서 절대로 해방되지 않을 구속을 선물하다니. 이보다 재앙이 있을까.


100년을 살게 된 사람들의 모습도 현실적이다. 학교는 사라진다. 치안은 무의미해진다. 약탈은 자연스러워지고, 일말의 도덕도 결국 사라진다. 아이들은 사막 같은 곳에 버려진다. 버려지지 않아도 버림받는 삶을 이어간다. 죽지 않으니까, 지킬 필요도 없는. 사랑은 소멸되고, 가족은 흩어지고 만다. 너무도 끔찍하다.


왜 이렇게 닮았는지. 희망이 없는 세대, 쉽게 포기하는 세대, 결코 도덕적 잣대로 처단할 수 없는 일들이 밀려드는 세대와. 구원은 없는가.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이다.


다행히도 우리의 삶은 유한하다. 절대 우리는 언젠가 도착할 사망 기차를 취소할 순 없다. 하지만 알아두라,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란 걸. 순환 섭리의 자연스러움에 올라타지 못하면 지독한 외로움과 타들어가는 생의 고통이 절망이라는 이름으로 우릴 집어삼킬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유한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열심히 살고 싶어지는 소설, [이슬라]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왜 자연을 알아야 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