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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 Aug 24. 2021

어차피 또 낀다니까?

 “가게 가서 매일 뭐해?”


오늘은 얼음을 깼다. 가게는 아이스크림 할인점답게 커다란 아이스크림 냉동고가 여섯 개 있다. 거기에 얼음컵만 넣어두는 소형 냉동고도 있고.

처음에 냉동고가 오던 날, 아이스크림 업체 직원이 플라스틱 주걱을 주면서 얼음이 끼면 주기적으로 제거해 줘야 전기세가 덜 나온다고 했다. 얼음이 왜 끼냐고 물었더니 자주 열고 닫으면 그렇게 된단다. 야무지게 알았다고 하고- 늘 그렇듯이- 곧 잊어버렸다.




아이스크림 냉장고는 여름 석 달 동안 영하 24,5도의 세기로 뱅뱅 돌며, 판매고를 올렸다. 아이스크림은 업체 기사가 먼저 가져다주고 영수증을 주면 우리가 입금하는 식이다. 음료, 과자, 애견을 포함해도 아이스크림 매출이 더 좋았다. 그러니까 아이스크림이 주력인 셈. 또, 음료나 과자는 배송된 것을 직접 진열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아이스크림은 주에 두 번 업체에서 딱딱 진열해주니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손님들은 생각보다 냉동고의 문을 잘 닫고 가질 않았다. 전기세보다 아이스크림이 녹을까 봐 걱정되었다. 손님들 중에는 본인이 열지 않은 문도 잘 닫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래도 고마웠다. 걱정이 깊어지던 어느 날 냉장고 문을 청소하다가 문이 너무 쉽게 열리는 것을 발견했다. 알고 보니 아이스크림 진열 기사님이 ‘문이 뻑뻑하면 장사가 잘 안된다’며 기름칠을 했단다. 별걸 다 해준다.


아이스크림 냉동고뿐만 아니라 얼음 컵을 넣어놓는 냉장고도 벽면에 두꺼운 얼음이 낀다.


그의 친절에 발맞춰 얼음은 더욱 급속도로 끼었다. 아, 그래서 얼음을 떼내야 한다고 했구나. 아이스크림 냉동고 내부 벽면에 낀 얼음은 삽시간에 불어났다. 매일매일 늘어나 있었다. 어느 날은 물의 결정이 세로로 언 것처럼 얼음이 뾰족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징그러웠다. 그 얼음들이 곧 냉동고를 모두 차지해 버릴 것 같았다. 나의 주력상품들이 맥없이 녹아버리는 상상이 들 정도였다.


아이스크림 냉동고 벽면엔 얼음이 자주 낀다.



 ‘얼음을 깨자.’



 가로 10센티 정도 되는 플라스틱 T자 주걱을 들고 얼음을 꽝꽝 내리쳤다. 어떤 건 밀어도 슥슥 밀리지만 어떤 얼음은 꽝꽝 내리치니 시끄럽기만 하고 별로 떼지지가 않았다. 오히려 힘보다는 기술이 필요했다. 냉동고 벽면과 얼음 사이의 틈을 비집고 T자 주걱의 아랫면을 밀어 넣은 다음에 지렛대를 이용하듯이 앞으로 퍽퍽 퍼내야 겨우 떨어졌다. 얼음은 차가운데 손에선 열이 났다. 고무장갑을 깨끗이 씻어 끼고 떼는 것으로 요령을 터득했다.


한날은 그 얼음을 꽝꽝 떼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기세 아끼려고 얼음을 떼기 시작했는데 문을 열면 얼음이 더 끼는 거 아닐까?’


냉동고 문을 열었다가 닫으면 냉동고는 다시 설정된 온도를 따라잡기 위해 모터를 돌린다. 얼음을 깨겠다고 1분여간 문을 열고 서 있으니 가게에 아무리 에어컨을 틀어놓았대도 냉동고 안보다 밖의 공기가 훈훈할게 분명했다. 다시 수증기가 생기고 얼음이 되겠지. 한낮의 추격전. 이거 괜한 일 아냐?


 “또 낄 걸 왜 떼려고 애를 써? 그냥 둬.”




살다 보니 별로 표 안나는 일도 많다. 지금 하는 일이 무의미해 보이는 것도 흔하다. 어쩌면 내겐 글쓰기가 그럴지도 몰랐다. 손이 벌게진 것도 모르고 얼음을 깨는 일은 '당장'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지만 그렇게 되면 언젠가 더 오랫동안, 더 많은 힘을 들여 그 얼음을 떼내야 한다. 과거의 게으름 때문이면서 현재의 문제점에 불만만 제기할지도 모른다.


 ‘뭘 써, 봐주지도 않는 글을! 일 년에 책이 8만 권이 나온다는데 내 글이 출간이나 되겠어?’


죄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는 틀렸다. 하루 이틀 미룰수록 나태한 내게 죄의식만 쌓일 것이다. 일단 쓰자, 그게 맞아. 보잘것없는 일이어도 필요한 일이니까. 나를 나로 살게 하기 위해 선택한 글쓰기인 만큼 오늘도 내 멋대로 펜을 움직인다. 완벽하지 않다고 해도 꾸준히 써 둘 것이다. 하루 이틀 미루다가 냉동고 속 얼음벽이 될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오늘은 얼음 깨기 했다니까. 왜 글을 써야 하는지도 새기고 말이야. 너는 오늘 뭐했어?"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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