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박 Aug 18. 2021

청소 일 안 하는데요?

누가  직업을 묻는다면 이제는 자영업자다. 점주 정도 되겠다. 고급 세단을 타고 다니면서 직원들에게 이것저것 지시하는 것만 사업이 아니건만 사업가 하면 흔히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남이 먹고 아무렇게나 버린 쓰레기를 분리하고, 손걸레로 타인의 손이 닿는 곳을 훔치고, 밀대 걸레로는 바닥을 닦는다. 걸레를 박박 빨아서 볕이 좋은 곳에 널어 말린다. 그것이  사업의 주된 임무다. 어떤 날은 빗자루로 거미줄을 모두 걷어낸다. 그런 날은 빗자루도 박박 빨아서 뒤집어 둔다. 청소  하냐고? 아니,  편의점 한다.


무인 편의점을 시작한   달째. 남들은 일약 돈방석에라도 앉은  알지만 돈방석은커녕 매일 쓰레기 치우기 . 하루에   가게에 들러 수북하게 쌓인 아이스크림 봉지(그래봤자 남이 먹다 버린 쓰레기)를 5리터짜리 종량제 봉투에 구겨 넣고 있노라면  인생도 여기서 구겨지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직원 없는 사장, 허울 좋은 무인점포의 사장.

 

내가 처음 무인 편의점을 시작한다고 했을  들려온 수많은 소리는 '좋겠다. 나도 그런  하고 싶다. 부럽다'였다. 그때 사람들은 몰랐겠지. 내가  시간씩 고무장갑을 끼고  하는지.


출처 픽사 베이


사람들은 이상하다. 분명히 쓰레기 분리수거를 위해 휴지통을   놔두었는데 어째서 마구 섞어 버리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35리터짜리 파란색 사각기둥형 쓰레기통에는 투명한 비닐을 씌워두고 오염이 많은 잡다한 쓰레기를 버리게 표기해 두었고, 15리터쯤 되는 검은색 원통형 쓰레기통에는 숫제 재활용품을 버려달라는 문구까지 적어두었다. 항상 쓰레기는 뒤죽박죽 되어있다. 그럴   마음도 엉망진창이다.  쓰레기통에   손을 넣어야 하다니 차라리 분리수거라는 시대적 사명으로부터 스스로 분리되고 싶다. 애석하게도 환경 책을 여러  읽어두어서 그런지 분리수거를 않고  봉투에 마구잡이로 넣는 것을 커다란 범죄처럼 여긴다. 결국 오늘도 손을 넣었다.


 '쓰레기가 많을수록 좋은 거야,  쓰레기  누가 버린 거야? 손님이 버린 거잖아. 그만큼 손님이 많이 왔다가 갔다는 거라고.'


 이런 긍정의 문으로 들어서자마자 내 눈에 띄는 것은 C편의점 비닐봉지, 우리 가게에서 나올 리 없는 컵라면의 용기나 꼬치 막대기, 담뱃갑, 담배꽁초, 맥주 캔. 그래, 우리는 술은 안 파니까 술을 사서 오는 길에 안주 사러 들렀을 거야. 거나하게 취한 아버지가 자식들 주겠다고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갔을 수도 있지. 듣는 이도 없는데 셀프 위안으로 중얼거리며 쓰레기를 뒤적거린다. 캔, 플라스틱, 큰 종이박스는 한쪽에 모아 아파트 쓰레기장으로 직행하고, 나머지 쓰레기는 부피를 최대한 줄여 종량제 봉투에 구겨 넣는다. 물론 숨은 입으로 쉬고.


출처 픽사베이


쓰레기통에 새로운 비닐을 씌우고 나면 쓰레기와의 싸움은 거의 마무리된다. 이제 오염된 걸레를 빨 차례. 얼마 전, 상가 화장실에서 걸레를 빨았는데 세면대에 물이 잘 안 내려갔다. 고물차가 언덕을 위태롭게 넘어가듯 꿀렁꿀렁 간신히 물이 빠졌는데 갑자기 발이 축축하다. 여름이라 플립플랍을 신은 내 발에 닿은 건 바닥으로 넘쳐버린 하수구 물. 으윽. 오수가 역류하였다.


상가는 작년에 완공된 아파트에 딸려 있다. 당연히  건물이다. 처음에 가게에 왔을  C편의점, 미술학원, 부동산, 유기농 야채가게를 제외하고는 여덟 개의 상가가 공실이었다. 오래된 상가들은 상가번영위원회도 있고, 점포가 많으니 상가 회비를 걷어서 청소용역을 고용한다. 우리 상가는 아직  차지 않아서 청소용역을 고용하지 않고 돌아가면서 청소를 하기로 약속했다. 상가 번영회가 만들어지진 않았지만 회장의 역할을 맡고 있는 부동산 소장이 이런 일들을 전해주었다. 그러면서 우리 가게는 남자화장실을 청소하라고 했다. 여자화장실 청소도 못마땅한데 남자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한다는 것에 뜨악 했다. 너무 하기 싫었다. 그리고 많은 시간 주인이나 파트타이머가 상주하는 다른 점포들이나 아이들이 매일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교습소들과는 달리 나는 화장실 이용시간이 턱없이 짧았다. 그런데도 동일하게 청소를 해야하다니 못마땅했다. 투덜거려봤자 소용 없는데도 계속 투덜댔었다. 게다가 오늘은  역류라니! 걸레를 내일도 모레도 계속 빨아야 하는 나로선  막힌 하수관을 보며 황망해했다. 우선 이야기를 해보자. 상가 부동산을 찾아갔다. 밖에서 죽은 가지를 치고 있던 소장은 멀리서 성큼성큼 걸어오는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저 소장님, 화장실 세면대가 막혔어요. 바닥에서 물이 역류해요."

"아, 그래요? 그런데 저희가 지금 청소용역을 못 부르잖아요. 아시죠?"

"네."

"그래서 어쩔 수가 없어요. 화장실이 막히면 일단 그걸 본 사람이 뚫어야 하는데."


나는 귀를 의심했다. 차라리 얼마를 걷어서 사람을 부르자고 했으면 그 정도로 놀라진 않았을 것이다. 본 사람이 뚫으라니.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났다. 소장은 자꾸 내 손에 끼워진 분홍 고무장갑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나는 다른 대답이 나올 때까지 '아'만 거듭하였다.


"아..."

"제가 가볼게요. 일단 돌아가 계세요."


'계시기는  집에  거다.  다했어.'




내가 처음 이 일을 하겠다고 수락했을 때는 나름의 자신이 있어서였다. 가게를 잘 운영하겠다는 다짐, 수익을 내기 위해서 가진 잔재주를 총동원해서 한번 성공해보겠다는 다짐. 수십억 자산가는 못 되더라도, 갑자기 벼락부자는 아니더라도 끙끙 댄만큼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면서도 오물에 발을 적시는 나는 계산에 두지 못하였다. 쓰레기통에 손을 넣는 나를 상상하지 못하였다. 별로 쓰지도 않은 화장실을 청소해야 한다는 것도 너무 충격적이었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어쩌나 이것도 사업이라는데. 상가점포를 책임지는 입장에서 내 가게만 돌봐서는 안 되는 것도 이번에 배운다. 그렇지만 하수구를 뚫을 재간은 없어.

결국 부동산 소장은 배수관 뚫는 업체를 부른 모양이었다. 며칠 동안 화장실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몰랐다. 나는 며칠 동안 걸레를 집으로 가져가서 빨아와서 사용했다.  


산을 그리라고 하면 뾰족하게 삼각을 세우고 초록으로 칠하듯이 사업가를 그리라고 하면 양복에 세단을 그릴지도 모르겠다. 나는 알았다. 그 검은 세단과 흰 셔츠는 내가 그리고 있었던 그림이라는 것을. 세상엔 그렇지 않은 사업가가 너무나 많다는 것을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관심도 없었다. 나 역시 편의점을 편안한 일로만 여겼던 것이다.


한동안 특수 청소에 관한 에세이들이 인기를 끌었다. 특별한 에피소드들과 저자의 진솔한 감정들이 공감을 샀다. 그들의 노고에 비하면 편안한 축에 속하지만 예상보다 적은 수입과 그것의 운용을 위해 평소에 해보지 않았던 여러 가지 일들을 -그마저도 손이 덜 익어 끙끙대는 나의 모습이 찌르르한 건 왜인지 생각 중이다.




요즘 편의점에 관한 글을 쓰면서 가장 망설이는 이유는 '배부른 소리 한다' 얘길 듣는  겁나 서다. 내가 여태  일들도 나름대로의   눈물이 있었지만 편의점 운영도 처음 해보느니 만큼 힘들다. 좋아하는 일도 아니다 보니 신경질  때도 많다. 그러게 누가 하래? 한다면 서운해 눈물  것만 같다. 그때 누군가 내게 말했다. 너의 마음을 글로 써보면 어때? 나는 그렇게 무인 편의점과 나의 이야기를 쓰기로 다.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것을 원하지 않다가도 모두가  글을 좋아할 수는 없으니 자유롭게 일단 쓰라는 것에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혼자 해내는  어떤 사업도 힘들지 않은  없음을. 어떠한 노고에 대하여 배부른 소리라고 폄하하던 지난 나의 모습이 고스란히 내게 돌아온다고 할지라도 글을  쓰고 싶다고.  역시 나를 나로 만드는 위대한 사업임을 절감하기 때문에.

그래, 나 배부르려고 편의점 한다.




이전 01화 무인 편의점에 사람 있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