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한박 Jun 17. 2021

도둑인가 아닌가

무인 편의점을 오픈했다. 책 읽고 글쓰기에만 관심 있던 내가 가족과 함께 일을 하면서 일어난 이상한 일 중에 하나다. 그래도 이왕 하기로 한지라 열심히 돕고 있다. 나의 일은 주로 없는 물건을 채우거나 쓰레기를 버리고, 바닥을 쓸고 닦고, 거미줄을 떼는 일이다. 없는 물건을 주문하고, 간간히 폐쇄회로 카메라를 들여다보는 일도 맡았다.


출처 픽사베이


며칠 전 어떤 손님이 카드를 두고 갔다. 그 손님은 본인이 근처에 공부방을 하는지 전단지를 한 묶음 가져와서는 매대 옆에 얌전히 올려두고는 몇 개의 물건을 사서 결재를 하시곤 카드를 고이 두고 떠났다. 나는 그 카드를 돌려줄 길이 없어서 포스기 위에 살포시 올려두고 주인을 기다렸다.


카드사에 전화를 걸어 번호를 불러주고 주인을 찾게 도와주라고 말해도 되지만 가게에 도착하면 늘 바빠서 그럴 겨를이 없었다. 사실은 손님이 말없이 두고 간 전단지에 기분이 상해서이기도 했다.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길은 물론 있겠지만 개업한 지 이틀밖에 안 되는 곳에 주인 허락도 없이 홍보용 물건을 거치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 됐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카드를 찾아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물론 전화 와서 있냐고 물어보면 당연히 있다고 말할 것이었지만.


아무튼 저녁나절에 카드 주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받았더니 카드를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수가 없었는데 오늘 우리 매장에서 600원이 결재돼서 기억이 문득 났단다. 600원이 결재된 것은 자기 잘못이니 어쩔  없고 일단 카드는 가져가겠으니 어디 있느냐고. 나는 포스기 위에 있다고 안내해주었다. 끊고 나니 내심 그녀가 나를 원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찝찝해졌다. 본인 잘못임을 시인하지만- 나조차도  잃어버린 카드를 정지하지 않았는지 의아하지만- 이상하게 내가 잘못한  같은 느낌은 애초부터 나의 마음을 내가  알았기에 갖게 되는 거겠지.  손님의 카드 분실을 비열하게 놀리고 있었으니까.


그러다가 문득, 대체 카드로 600원을 긁고 사라진 맹랑한 작자는 누군지 궁금해졌다. 오늘 청소하러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30분경. 가게를 향해 걸어오면서 수상한 행동을 하는 두 명의 고등학생을 보았기 때문에 혹시나 하며 그 시간대의 CCTV를 돌려보았다. 그리고 발견했다. 두 명의 짓궂은 도둑을.



아, 미리 말하자면 도둑이라고 보기 어려운 도둑이었다. 아이스크림을 엄청나게 신중하게 - 넣었다 뺐다 하면서- 고르던 두 아이들은 자기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결재를 했다. 그러면서 포스기 위에 있는 카드를 잡더니 만지작 거리고 내려놓았다. 아이스크림 껍데기를 탁자에 놓더니 화면에서 사라지고는 600원짜리 젤리를 하나 집어와 카드로 계산을 하는 것이 고스란히 찍혔다. 유유히 떠나는 것 까지.

그리고 마침 내가 등장하였다. 가게에 들어서면서 그 아이들을 분명히 보았고, 포스기계 앞 탁자에 놓인 그 젤리도 보았다. 처음에 사려다가 아무도 안 사고 놓고 간 줄 알고 원래 있던 자리에 가져다가 놓았는데 알고 보니 그 젤리가 바로 학생들이 가져온 그 젤리였다. 다시 화면을 재생해보니 그 아이들이 결재만 하고 젤리는 두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니까 남의 카드로 젤리는 결제했는데 젤리를 먹은 사람은 아무도 없고 , 잃어버린 물건도 없으니 그 아이들은 도둑이 아닌 거지. 응? 이게 무슨 일이지?


따지고 보면 내가 도둑이 돼 버렸다. 짓궂은 고등학생들은 장난으로 카드를 긁었고. 그 상품은 두고 갔고, 나는 그게 반품된 물건인 줄 알고 제자리에 넣었기 때문이다. 왜 나는 도둑이 된 거야?


그 시간에 책이나 읽을걸 후회했지만 진실을 알아버린 나로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통화목록을 더듬어 저녁나절 받았던 모르는 전화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XXXX입니다. 짓궂은 어린 학생들이 카드로 600원짜리 젤리를 구매하고는 그저 자리에 두고 갔어요. 아마 장난을 친 모양입니다. 혹시 가게에 들리시거든 600원짜리 물건을 아무거나 그냥 가져가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견물생심이라는 말은 여전히 있다. 정직한 사람이 더 많은 세상이지만 남의 물건을 제 물건인양 함부로 하는 족속도 여전히 존재한다. 어쩌면 나는 견물생심을 부추기는 사업을 하고 있다. 일곱 대의 CCTV로 협박하면서 , 누구나 물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그래도 가져가지 말라고 억지로 정직을 강요하는 건 아닌가? 나 때문에 사람들이 괜히 가져가고 싶은 마음을 먹으면 어떡하지? 누구나 견물생심의 마음은 있다면서.


아직은 정직이 무너지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무인 편의점을 선호한다. 사람이 있는 곳보다 훨씬 편하고 느긋하게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7대의 폐쇄회로 카메라가 자기의 모습을 담고 있지만 관계없다. 나는 훔쳐가지 않을 테니까.


이제 할 일이 더 생겼다. 잃어버린 카드는 반드시 빨리 찾아주기. 그 사람이 행여 쓰레기를 버리고 간대도, 냉장고 문을 오래도록 열어뒀대도 개인적인 원한 품지 말고 빨리 주인을 찾아주자. 알아서 분실신고하겠지 하지 말고, 귀엽지만 짓궂은 악동을 양산하지 말고.


물건을 향한 생심의 트리거가 내가 되지 말자고 괜히 진지하게 다짐해보는 이 밤.

그나저나 오늘 밤도 우리 가게 안전하겠지?


이미지출처 픽사베이




 

작가의 이전글 좋아하는 글을 쓰고 있나요?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시작하기

카카오계정으로 간편하게 가입하고
좋은 글과 작가를 만나보세요

카카오계정으로 시작하기
페이스북·트위터로 가입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