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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 Mar 09. 2020

전지현과 [암살]과 나

사춘기 아들과 묵은 영화보기

영화 [암살]을 보고 있었다.

개봉한지는 여러 해 지났지만 몇 년이 지나 TV에서도 가끔 방영하기 때문에 중학생 아들 녀석도 봤다고 한다. 실제로는 학교에서 봤다지.

아무튼 그날도 케이블에서 [암살]이 재방송됐다.

극 중 전지현은 쌍둥이라 1인 2역이다. 실종됐던 동생 안옥윤이 독립투사가 돼서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돌아오고 친일파 아버지 역시 후일을 준비한다. 그러다가 키우던 아버지가 큰 딸을 둘째 딸 안옥윤인 줄 알고 살해한다. 안옥윤은 언니와 조국의 복수를 위해 그 집에 잠입한다.

안경을 쓰고 머리를 질끈 묶은 채 방을 서성이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그때 중1  아들이 외쳤다.

"어, 엄마 닮았어."

"엥?"

안다. 누가 들으면 눈살을 찌푸릴 일이란 .

입만 웃고 눈은 그대로인 가짜 어색 웃음을 짓거나

뭐라는 것이냐며 정색할 일이란 .


사실 만화채널을 제외한 모든 티브이에 거의 문외한인 아들은 전지현이 누군지 몰랐다.

(아들은 주로 게임을 한다.)

뭇 여성들의 워너비이며 Cf 퀸이며, 톱 여배우라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유 얼 마이 데스티니~~'도 모르는 지경이다.

아무리 극 중에서 꾸미지 않았다고 해도, 그 아무리 옆모습이라 해도 전지현을 닮았다니.

어, 근데 왜 이러지? 내 광대 올라간다.


"무슨 소리야. 저 아줌마가 얼마나 예쁜데. 엄마는.. 에이, 아니지 엄마는."

"아냐, 엄마. 안경이 동그란 게 닮았어."

그렇다. 안경이었던 것이다. 참나.

실룩거린 광대가 잘못했네. 그런데 그냥 안경이면 좋았을 뻔했다.

"근데 엄마. 진짜 어딘가 닮은 것도 같어. 아마 저 누나가 엄마 나이쯤 되면 엄마랑 더 닮았을 거야. 엄마 나이쯤 늙으면 엄마만큼 찔걸?"

아, 아들아. 전지현이 엄마보다 언니란다.

나보다 더 많이 먹었어. 무려 두 살...

큭큭 너무 웃음이 나서 뺨이 실룩댄다. 광대가 춤춘다.

굳이 았다 이쪽이 더...ㅋ(동그란 안경)




그런데 내가 진짜 좋은 이유는 별건 아니지만 사춘기 아들과 내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일방적인 말하기에 "응", "몰라", "싫어" 로만 돌려 막기 하던 아들의 말투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집에서 같이 영화를 보니 이렇게 대화도 하고 낄낄 웃기도 한다는 게 호들갑스럽게 좋았다. 퇴근한 남편에게 일화를 들려주고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지청구를 들어도, 영문 모르는 아들이 그 대화 후에 다시 입을 닫았어도 엄마는 금방 불어 묶은 풍선처럼 기분이 빵빵해졌다.

영화관에서 보는 신작도 좋지만 가끔 묵은 영화도 아들과 함께 즐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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