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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 Oct 26. 2021

열정적으로 독서하고 만나

쓰는 여자들의 읽기 모임

2021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

대상 문진영, <두 개의 방>

수상작 윤대녕 <시계입구가게앞검문소>

안보윤 <완전한 사과>

정용준 <미스터 심플>

황현진 <우리 집 여기 얼음통에>

손흥규 <지루한 소설만 읽는 삼촌>

진연주 <나의 사랑스럽고 지긋지긋한 개들>



 소설집은 쓰기 위해서 읽는 공식적인  번째 책이다. 에세이를  쓰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읽은 책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강창래 작가 강연에서  수강생이 '에세이를  쓰려면 어떤 책을 읽는  좋냐' 질문을  적이 있었다. 그때 작가님이 문학동네에서 나온 수상작품집을 읽으라고 추천했다. 에세이든 소설이든 결국 이야기를 하고자 함인데 에세이들도 좋지만 소설이야 말로 문장과 서사구조를 배우기 좋다는 말씀이었다. 글쓰기 모임을 하다 보니 같이 책을 읽고 싶었고, 작가님의 추천도 있고 해서(사둔 이유도 )   작품집을 열독만의  번째 도서로 선정하게  것이다.

(열독만은 나의 에세이 쓰기 모임 열일쓰의 소모임으로 열정으로 독서 후 만나자는 의미를 담았다)



그러니까 결국 쓰는 사람들이 쓴 사람들의 이야기를 교본 삼아 찢어도 보고 할퀴어도 보고, 껴안아도 보려고 같이 읽게 됐다. 우리는 그 안에서 내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이 목표였다. 기어이 얼추 이뤄낸 것 같아서 너무 기쁘고 흥분되는 오늘이다.



우리는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두 편의 필수 단편과 한 편의 자유 단편을 선정했다. 일단은 경험이 많은 내가 선정하기로 했다. 내가 고른 세 편의 작품은 대상작 <두 개의 방>과 <완전한 사과>였다. 가장 좋았던 작품으로는 <미스터 심플>을 골랐다.



<두 개의 방>에서 가장 멋진 부분은 -개인적으로- 같은 동네에 살 줄 몰랐던 두 사람이 술 산책을 위해서 동네의 한 지점에서 만나는 장면이었다. 이미 익숙했던 곳이지만 바쁘게 지나다니다 보면 절대 보지 못할 어떤 것에 대해서 덤덤하게 서술해 둔 작가의 문체에서 이상한 기시감을 느끼기도 했고, 두 명이 한 동네에 살지만 다른 루트를 통해 약속 장소로 모이는 게 대단히 서정적이면서 로맨틱 했다.


걸음이라는 건 그런 거다. 차를 탈 때나 바빠서 뛰다시피 길을 건널 때는 절대로 모를, 다단했던 지난날을 반추하게 되는 매력적인 그 무엇이다. 우리는 걸으면서 못 보던 것들을 보게 되고, 기억나지 않던 무언가를 기억해내고 지금의 나를 비춰본다. 갑자기 걷고 싶어졌다. 걸으면서 내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싶어졌다. 문학 작품에게 사정없이 견인당했다고나 할까.



솔직히 처음에는 이 작품이 왜 대상 수상작인지 알지 못했고, 이해도 썩 어려웠다. 하지만 토론을 위해 두 번 읽고 나니 나야말로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된 듯하다.



책 읽기를 달리기처럼 하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다. 별로 안 좋아하는 표현이긴 하지만 미친 듯이 쓰고 싶은데 쓰질 못해서 남이 쓴 글들을 벼락 치듯이 읽어 재꼈다. 그야말로 턱 끝까지 숨이 찬 뜀박질 같은 독서였다. 물론 안 읽던 시절보다 훨씬 지평이 넓어진 것은 분명 하나 결국 원하던 것을 이루기 위한 책 읽기는 얼마나 이뤄졌는지 돌아보니 썩 이렇다 할 답을 내리기가 힘들다. 타인의 이야기를 추체험해본다는 것은 자기 위로에 불과했고, 사실은 도피가 아니었나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 걷기로 했다. 달에 겨우 몇 권 읽더라도 내 글을 끌어내는 마중물로 삼기로, 천천히, 세세히 우물이든 서랍이든 들여다보고 꺼내보자고. 그게 새롭게 내게 주어진 걷는 독서라고 생각한다. 난 좀 걸을 필요가 있어.



안보윤의 <완전한 사과>는 <두 개의 방>에 비해선 강렬하다. 가해자의 가족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불편해하는 회원이 등장할 만큼 사건만으로는 임팩트가 강했다. 다만 누군가의 말처럼 사건 자체에 초점이 맞춰진 소설이라기보다는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 때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비춰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소설은 보여줘야 할 것을 보여준 것뿐인데 나는 어떤 자세로 내 생각을 끄집어내서 관철시키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고나 할까. 절대로 내 경험이고 싶지 않지만 너나없이 자유로울 수 없는 게 '가해'와 '피해' , '사과'와 '용서'에 관한 게 아닐까.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다 안쓰러웠던 소설이었다.



각자 경험한 바가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른 여럿이 하나의 텍스트를 가지고 생각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공감한다는 것은 짜릿한 일이다. 나눈 모든 말들이 좋았다. 같이 읽는다는 것의 기쁨, 눈을 바라보고 있을 때의 따뜻함이 소설이 좋아서인지 사람이 좋아서인지! 아무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는 자유 단편으로 정용준의 <미스터 심플>을 골랐는데 네 명이나 그 단편이 좋았다고 해서 놀랐다. 게다가 처음에 이 단편을 고른 이유가 김금희 작가가 리뷰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어서 (그분이 먼저 말해서 너무 놀람) 깜짝 놀랐다.


<미스터 심플>은 당근 마켓에서 만난 두 남자가 빨래방에서 빨래를 같이 하며 대화를 하게 되고 서로 가진 상실과 슬픔을 마주한다는 이야기다. 대단히 시의적절하면서도 보편적 정서가 특이하게 묻어있는 소설이었다. 너무너무 좋았다. 슬픔과 슬픔을 꼭꼭 눌러 담은 고봉밥처럼 내 앞에 가져다 놓았다. 나는 사정없이 퍼먹었다. 눈물이 줄줄 날 줄 알았는데 잔잔한 감동이 가슴을 찔렀다. 버림받은 남자 둘. 한 사람은 그리움이 사무쳐 절망이 됐고, 한 사람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참담한 이별 앞에 널브러져 있었다.  자기 물건을 처분하며 잊고자 하지만 처분할 것이 너무 많아서 손도 못 대는 상황에서 두 사람이 스며들듯이 극복의 과정을 겪고 있는 건 아닐까 조심스럽게 결론 내려 봤다.



글쓰기는 무조건 치유의 기능이 있다. 예전에는 대체로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더욱 강하게 확신이 든다. 나뿐만 아니라 소설 속에서도 그렇고 우리 열일쓰도 그렇다.



지금 당장 뭐가 안된다고 해도 우리의 노력은 달콤하다. 한 달에 한편 단편들을 읽으면서 우리의 단면들도 나타나지 않을까? 점점 글 쓰는 마음이 커지고 깊어지고 짙어지지 않을까.



다른 단편들도 좋았다. 아무리 힘을 합쳐도 자꾸만 가난해지는 두 남녀의 모습을 다룬 <우리 집 여기 얼음통에> 도 가슴 아팠지만 좋았고, 지나간 사랑의 흔적을 아주 우연한 곳에서 찾아낸 용기 없는 한 남자의 이야기는 <시계입구가게앞검문소>에서 만났다. 윤대녕 작가가 수상작품집에 이름을 드러내서 놀라기도 했고! 올드하지만 어떠랴, 충분히 멋있었다. (토론은 조금 다르게 이야기했지만 ㅎㅎ) 아! 그리고 찐한 사랑의 여운을 흠뻑 남겨준 <낡은 소설만 읽는 삼촌>도 재밌었다. 어떻게 이런 설정을 했는지도 궁금하고! 다다 좋았던 작품집. 절대로 잊지 못할 작품들!


이 작품들이 수록된 작가 개개인의 소설집도 어서 출간되길 기다린다. 물론 우리도!!



시멘트 블록은 양생 되기까지 닷새 정도면 충분했다. 그 정도면 무얼 짓는 데  쓰더라도  상관없을 만큼 단단했다. 그러나 그 상태는 시멘트 블록이 단단해질 수 있는 한계치의 구십 퍼센트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나머지 십 퍼센트를 채우려면 삼십 년 동안의 양생 과정을 거쳐야 했다. 삼촌도 그와 비슷해서 어떤 고통을 고통의 최대치로 느끼기까지 백 년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지루한 소설만 읽는 삼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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