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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 Nov 18. 2021

네 글이 뉴스에 나왔어!!

가족에게 글 공개하세요?

 출근 중에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블루투스로 받았더니 엄마가 상기된 목소리로 외친다.


"지금 뉴스보고 있는데 네 글이 뉴스에 나왔어!"

"뉴스? 혹시 '다음' 보고 있는 거 아냐?"

"어,어. 뉴스보려고 '다음'에 들어갔는데 아무리 봐도 네 글 같아."


 엄마는 스마트폰으로 '다음' 앱에서 뉴스를 보다가 '브런치' 코너에 올라온  글을  모양이었다. '무인 편의점에 사람있어요'라는 제목을 보고 무심히 클릭했는데 삽입된 사진이 아무리 봐도 딸이 운영하는 편의점 같더란다. 끝까지 읽어보니 맞는  같다고.


 그건 뉴스가 아니라 글쓰기 플랫폼에 쓴 에세이라고, 다음에서 만든  '브런치'에 대한 설명과 그 앱의 기능까지 말하고나서야 전화를 끊었다. 엄마는 내게 축하한다는 말을 남겼다. 나 진짜로 출간 작가되면 우리 엄마 기절하는 거 아냐?  


다음 메인 화면 캡처(좌) , 내 글 갈무리(우)


 

 그런데 전화를 끊고나니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사실 내가 글을 써야겠다 생각하고 실천하는 순간 가장 먼저 쓰게 되는 건 나의 이야기였고, 그것들은 때때로 가족들의 이야기를 동반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내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가닿기 위해선 진솔한 태도가 필수인데 그러려면 약간의 각색은 있을지 몰라도 대체로 솔직해야만 했다. 나를 설득시키지 못하면 남도 절대 설득시킬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을 가슴에 품고 글을 써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가족의 이야기가 깊게 열릴수록 '어디까지 공개할 것인가' 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 나를 괴롭혔다. 개인을 결정짓는데 있어 가족은 결코 빠질 수 없어서 어떤 식으로든 드러나기 마련이다. 무턱대고 비난은 않겠지만 등장 자체가 달갑지 않을 수 있다.  따뜻하고 좋은 내용만 있기가 어렵기 때문에 다 좋았노라 쓰면 거짓이고, 날 것의 그대로를 보여주자니 부끄러웠다. 쓴다고해도 가족들에게 보여줄 용기는 더욱 없었다. 글이 갇히는 느낌이었다. 자기 검열이 심해졌다. 그래서 '브런치'에 에세이를 쓰면서 크게 결심한 한가지는 가족 및 지인에게는 글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거였다. 여태 실천 중이었다. 근데 엄마가 내 글을 찾아내다니!


 브런치 작가가 되자마자 너무 좋아서 남편에게 자랑했더랬다. 글을 처음 올렸는데 구독자가 없어서 쓸쓸했다. 남편의 휴대전화에 브런치 앱을 깔아주고 친절한 사용 설명을 곁들였다. 그런데 곧 후회했다. 당시 내가 자꾸 글로 뱉고 싶었던 이야기는 사춘기 아들과의 다툼과 엄마로서의 반성이었다. 아들과 나는 굉장히 많이 충돌했는데 남편은 그 사실을 잘 몰랐다. 아이와의 거칠고 속상한 관계를 털어놓기에 남편은 믿을만한 사람이 못 됐다. 그는 격렬한 사춘기를 보내는 아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으며 다름을 인정하지 못했다. 내가 도움을 요청하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아빠로 변할 것만 같았다. 결국 남편이 볼까봐 끝내 발행하지 못한 글들도 많았다. 어느날 아침, 브런치에서 남편을 탈퇴시키고 앱을 삭제해 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남편은 글 읽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아마 내가 출간 작가가 된다고 해도 그 한 권을 끝까지 다 읽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꾸준히 글을 올렸다고 해도 어느 순간 안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불안했다. 글은 내게 숨 쉴 구멍이고, 감정을 돌아보는 통로가 돼 주었지만 가족에게 공개하는 순간 지금처럼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가족에게 인정받는 게 가장 힘든 일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나에게도 그것은 정설처럼 굳어져 있다. 가족에게 먼저 신뢰받는 사람, 인정받고 존경받는 사람은 그 어디에서도 그럴 수 있으리라 지금도 믿는다. 하지만 나는 내가 인정받을 거란 자신감도 없을 뿐더러 가족 모두를 불신했다. '내가 쓴 글을 무턱대고 비난할 것이다, 혹은 곡해하거나 오해를 쌓아둘 것이다' 생각했다. 그래서 가족 그 누구에게도 내 글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박완서 작가도 어머니에게 글을 안 보여줬다지 않은가.  


 지인에게 공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와 친분이 있는 모든 사람들, 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내 독자가 되는 순간 그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각은 모두 달라질 것이다. 글의 주인공이 나라면 차라리 괜찮은데 가족일 경우에는 더 심각했다. 나의 고통과 고단을 진솔하게 털어놓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가족인데 폄하하고 욕하면 어떻게 하지? 내가 동생 험담을 할지언정 친구가 내 동생 욕을 하면 못 참는 것처럼 내로남불식 정의감에 불타오르며 비공개 작가놀이를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글은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은 일단 글로 모두 쏟아놓자. 그 다음에 세계를 확장하자. 훌륭한 습작들이 모이다보면 언젠가 당당하고 용감하게 나를 드러낼 수 있겠지. 그렇다면 언제까지?


 일단 글쓰기의 포문을 열고 매주 한 편이상 글을 올리면서 습관을 잡고 나니 슬슬 조회수에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몇 개의 글이 높은 조회수에 도달했고, 독자들의 따뜻한 댓글도 달렸다. 구독자가 늘어날 때는 좋아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조금씩 마음에서 공개를 꿈꾸었다. 전에 읽은 출간 독려를 위한 책에서 'SNS도 활용할 것'이란 챕터가 생각났다. 실명으로 만든 개인SNS에 홍보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곧 소심해졌다. '언젠가 더 많은 곳에 공개하는 글을 써야 하는데 나는 괜찮은 작가인가?' 싶었다.


 며칠 전 읽고 있는 어떤 과학서적에 대해 SNS에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책의 한 구절을 발췌해 올리면서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했다. 그런데 댓글 중에 저자에 대한 비난이 있었다. 강연이 있어서 갔는데 청중으로부터 얼토당토한 질문이 있었나보다. 적당히 얼버무리던지 위트있게 넘겼으면 되는데 작가가 화를 냈다는 거다. 책에서 비춰진 인간성과는 사뭇 달랐던 작가의 모습이 실망스러웠단다. 나도 좋아했던 작가니만큼 화가 나거나 안타까웠어야 했는데 '작가란 그런 것이구나, 내 글이 나의 인성이 될 수도 있구나' 싶어서 망연해졌다.  '아무리 좋은 이미지를 쌓아도 한순간에 성격 나쁜 작가로 전락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울적해졌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나의 지인들은 내 글을 보면서 공감할까, 어이없어 할까?


 이것저것 따지다보면 글은커녕 말 한마디 내뱉기가 어렵다. 아무렇게나 쓰겠다는 것도 함부로 행동하겠다는 것도 아니지만 용기를 갖고 일단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시간만 보내게 될 것이다. 엄마가 우연히 내 글을 발견하게 된 것처럼 언젠가 나의 가족과 지인에게 내 글을 공개해야 할 날이 올 것이다. 지나치게 많아진 자기검열은 마치 그들이 내 글을 보게 될까봐서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감이 없는 건 아닐까? 아무나 글 쓴다고 그런 글 써서 뭐하냐는 식의 뜻모를 비난이 쏟아질까봐, 집안일이나 잘 돌보지 무슨 글이냐고 손가락질 당할까봐 그냥 겁먹은 건 아닐까?


 자, 이제 나는 선택해야겠다. 이왕 쓰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 먹은 거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을 것인지, 아님 자유로운 글쓰기 뮤즈의 출현을 위하여 은둔의 작가 한박으로 남을 것인지. 메인에 뜬 글을 엄마가 알아봐주니 괜히 입꼬리가 자꾸 올라가는 게 어째 '모두 공개'의 그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용감하게 씩씩하게 오늘의 당신을 적어봐요!*




*자우림 <매직 카펫 라이드> 중에서 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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