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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 Feb 17. 2022

딸을 주시기만 한다면

너라는 이름의 풍선

 "제게 딸 하나만 주시면 온 정성을 다해 예뻐하고 행복하게 키우겠습니다!!"


 나는 딸을 정말 원했다. 둘째를 원치 않는 남편을 설득해 아기를 갖기로 하고 의외로 금방 임신이 되었지만 곧 유산이 되고 말았다. 수술 없이 자연스럽게 된 건데도 마음이 아팠다. 생각보다 임신이 지연되자 취직을 했다. 큰 애가 어린이집에 가서 돈 쓸일이 늘자 생계에 보탬이 되고 싶어서였다. 학원에서 6개월쯤 일을 했는데 어쩐지 어지럽기 시작했다. 임신이었다. 이번엔 조심하리라 결심하면서도 일을 그만둘 생각은 없었는데 조금 많이 어지럽던 어느 날 애들이 하도 '선생님, 선생님' 시끄럽게 불러서 눈을 떴더니 교실 바닥에 누운 채였다. 임신성 빈혈이었다. 곧장 일을 그만두고 태교에만 전념했다. 열심히 기도도 했다. 딸만 낳게 해 주신다면 무엇이든지 하겠노라 다짐하고 또 생각했다. 세상에 없는 소중한 아이로 큰 애 때는 몰라서 못 주던 세심한 사랑까지도 주겠노라고.


 넷쨋달 정기검진 날 의사는 오빠 물건 싹 다 버리라는 낭비벽 심한 말로 태아의 성별을 흘려주었다. "진짜예요, 선생님?"을 열두 번 넘게 연발하자 남편이 약간 창피해하는 걸 보았다. 의사는 우리를 보며 웃었다.


 한날은 낮잠을 자는데 꿈에서 의사가 아들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펑펑 울었다. 일어나 보니 베개가 젖어 있었다. 일하는 남편에게 전화해서 아닌가 봐, 의사가 오진인가 봐 법석을 떨었다. 남편은 꿈은 반대라고 딸이 분명하다고 다독였다.


 2009년 2월, 품에 곰인형만 한 아이를 강보에 싼 채 안아 들고는 간호사에게 딸이 정말 맞느냐 물었다. 그랬다. 딸이었다.




"너 진짜 그따위로 말할 거야? 왜 이렇게 싸가지가 없어, 요즘!!"


 훈계랍시고 자행되는 저속하기 이를 데 없는 욕설과 비난에 눈이 축축해진 채 입술을 꼭 물고 있는 딸과 대치한다. 요즘 그런 날이 잦다. 이제 사춘기가 되면서 짜증이 많아지고 조금 난폭해진 딸을 본다. 행동만 거친 거면 참아주겠는데 짜증 가득한 말로 온 가족에게 행패(?)를 부리는 질풍노도의 청소년을 보면서 오늘은 못 참고 모진 말을 쏟아버렸다.


"엄마가 싸가지 없다는 말 안 한다고 했잖아."


 돌연 얼굴에 핏기가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화가 나면 목소리를 깔고 얼굴에 잔뜩 힘을 주어 피가 몰리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데 허를 찔리면 핏기가 싹 가시는 느낌이 든다. 어젯밤이 꼭 그랬다. 나는 지지 않으려고 한마디 덧붙였다.


"그러니까 그런 말이 나오지 않게 말 예쁘게 하란 말이야. 오빠가 네 친구야?"


 들어가라는 말을 끝으로 훈계(?)를 종료했지만 어딘가 켕기는 마음이 들어 딸아이가 닫고 들어간 방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금 들어가서 모진 말은 미안했다고 할까? 아냐 그러다가 애가 또 못됐게 말하면 잔소리를 더 하게 될 수도 있어, 심한 말을 더 할지도 몰라. 혼자 고민하던 중에 어쩐지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아이는 잠들었을 것이다. 이미. 에이, 내일이면 풀리겠지. 혼나고 자러 가도 늘 웃으면서 아침 인사하는 애잖아.


 딸만 주신다면 온 마음을 다해 아이가 노하는 일 없이 키우겠노라 다짐을 거듭하고서 그때의 간절함과 소중함은 쓰레기통에 처박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단추인가 내내 빼서 다시 끼워보려고 해도 암수가 어긋나 버린 지퍼처럼 고장 난 마음이 돌아오지 않는다. 예의라면 가르칠 만큼 가르쳤는데 어째서 가족에게 저렇게 이야기하는 걸까? 사춘기여서 그럴까, 아니면 천성이 못돼 먹은 걸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시간을 훌쩍 밤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책을 붙잡고 있다가 문득 아까 받아만 놓고 뜯지 않은 택배 상자가 생각났다. 파티 풍선이었다.


 내일은 딸애의 열네 살 생일이다. 생전 처음으로 홈파티를 준비해주고 싶어서 파티 풍선이며 반짝이 커튼 등을 주문했다. 내일 학원에 다녀오면 짠하고 공개할 생각으로 산 것이다. 아이가 얼마나 좋아할까, 그 얼굴에 번진 행복한 미소 한번 보고 싶어서 용돈을 헐어 준비했다. 아이의 마음은 정리 못한 짐가방처럼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는데 저런 게 다 무슨 소용일까 싶다가 그래도 산 거니까 확인 차 뜯어서 바람을 넣어봤다. 처음으로 꺼낸 풍선은 기다란 숫자 풍선이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방안까지 새어들지 않게 조심히 꺼냈다. 입으로 불가능하고 가느다란 빨대를 끼워서 불어야 어느 순간 팽팽해진다. 무슨 글잔지도 모르다가 바람이 들어가니 '14'라는 숫자가 선명해진다. 바람을 살살 불어선 안된다. 훅 불어야 순간적인 힘으로 팽팽해진다. 그러고 빨대를 빼면 그 모양이 유지된다. 나는 그 과정을 모두 수행하고 두리번거렸다. 칠흑 같은 밤에 거실 한 귀퉁이에서 반짝이 풍선에 바람을 넣고 있는 내가 너무 웃겨서 혼자 웃었다. 그때 방문이 열렸다.


"엄마 뭐해?"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풍선을 소파 옆으로 던지고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딸이 아니라 다행히 아들이었다. 안심의 한숨과 더불어 풍선이 발 달린 것처럼 소파 옆에서 기어 나왔다. 사실은 아들에게도 미리 알려줄 생각이 없었다. 혼자 간식 먹다 들킨 사람처럼 멋쩍게 웃었다. '보미 주려고 준비한 풍선인데 한번 불어보고 있었다. 너는 왜 안 자고 나오느냐, 누가 이 시간까지 안 자랐느냐' 목소리를 낮추고 잔소리도 퍼부었다.


아들은 내 이야기를 물끄러미 듣더니 한 마디 했다.


"근데 엄마. 그런 거 하지 말고 그냥 보미한테 말 좀 예쁘게 하지 그래?"


 '안다, 이 자식아. 나도 풍선을 불어보면서 혼자 그렇게 생각했단다. 풍선이고 뭐고 딸아이 맘에 불어 찼을 서늘하고 서러운 공기나 따뜻하게 데워줄 걸. 왜 그렇게 짜증이 많으냐고, 무엇 때문에 그리 화가 났냐고 물어나 봐줄 걸 그랬다고 나도 후회 중이란다. 그런데 내 화는 누가 풀어주는 거야? 왜 엄마는 견뎌야만 하는 거야? 그렇게 예뻐하면서 키웠는데 결과가 이게 뭐야. 배신이잖아.'


 내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도로 자러 들어가 버린 아들을 보며 '지나 잘하지' 웅얼거렸다. 보미가 저렇게 사나워진 데는 너랑 나랑 일말의 책임이 있노라고 말해줄까 싶기도 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쟤는 또 언제 저렇게 커서 엄마에게 훈수를 두고 홀연히 사라지고 그럴까?


 아이를 키우는 일은 항상 좌충우돌이고, 엄마는 늘 뒤늦게 깨닫는다. 동화나 소설, 드라마에서 기다려주고, 안아주고, 아이를 따뜻하게 보살펴 주는 엄마들은 항상 있어왔고, 나의 워너비였지만 이상형은 이상형일 뿐 나는 그러지 못한다. 그래서 아이가 있는 건가. 아이를 둘 낳아놨더니 하나가 속 썩이면 하나가 위로해주기도 하고, 엄마라는 극한 직업을 담당하며 잘하고 있다고 혼자 붕붕 떠 있는 내게 갑자기 입바른 소리를 뱉어 반성하는 시간을 주기도 한다.


 오늘 아침, 여전히 부루퉁한 채 휴대전화를 보고 있던 딸을 보고 있자니 어제 일이 생각이 났다. 자고 일어나서 곧잘 풀리던 마음인데 아직도 안 풀린 걸 보니 마음의 상처가 자못 있었나 보다. "보미 뭐해?" 따뜻하게 말을 걸어 보았지만 딸은 차가웠다. 나도 더 말하기 싫어 돌아섰다. 왜 또 나만 넉넉해져야 하나 못된 마음이 고개를 쳐든다.


 세탁기 옆 좁은 공간에는 미리 불어놓은 풍선이 열개쯤 숨겨져 있다. 내일이면 진짜 생일을 맞이하는 딸아이를 위해서 절반은 불어놓고, 절반은 그저 두었다. 딸이 친구 만나러 나간 후, 아들을 불러 내일 벽면 꾸미기를 좀 도와 달라고 하니 그전에 보미랑 화해나 하라며 또 훈수를 둔다. 어이구.


 따지고 보면 배신자는 나다. 딸만 주시면 뭐든지 하겠다고 굴더니 내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 행패 부린 것은 내가 먼저다. 착하게 말해라, 예쁘게 말해라 하면서 정작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음을 알고 또 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처치 곤란한 마음을 혼자 이고서 아이들에게 이 짐을 들어달라 떼쓰는 꼴이 아니었을까? 아이들은 파티 풍선과 달라서 한 번에 훅 하고 바람이 그득 차는 게 아니라 천천히 오랫동안 사랑의 훈기를 넣어줘야 자기만의 모양을 갖추는 건 아닐까? 어쩌면 보미의 풍선은 사춘기라는 바늘을 만난 데다가 너무 한 번에 내 멋대로 훅 불어넣은 바람에 몇 번쯤 뻥 터져버리고 말았는지도 모르겠다.


 이젠 그러지 말아야지. 좀 더 기다려줘야지. 아들에게 그랬듯이 보미에게도. 풍선이고 파티 커튼이고 내버려 두고 오늘은 딸이 좋아하는 주꾸미나 좀 볶아야겠다. 진짜 좋아하는 걸로! 분명히 태어나 줘서 고마우니까.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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