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날, 생각이 복잡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날에는 모든 것에 초연해지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인간관계부터 돈 버는 문제까지, 어느 하나 손바닥 위에 있는 것이 없기에 시시때때로 불안과 근심이 드리운다. 사막 위에 홀로 선 정승처럼, 비바람이 흩날리는 광야에 우뚝 선 소나무처럼 단지 숙연한 존재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일까.
늘 행복해야만 한다는 어리석음은 훌훌 벗어던진 지 오래지만, 여전히 미숙한 심장은 담대함을 배우지 못했다. 좁쌀만큼 좁은 가슴과 뜨거운 머리를 짊어지고 사느라 노곤한 정신력이 흐릿해진다. 남 탓, 환경 탓, 정의와 공평의 이름을 울부짖느라 신세는 더욱 아찔한 절벽으로 내몰렸다. 언젠가 스무 살 무렵, 담장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다고 느꼈다. 마침내 평지를 밟게 되리란 희망과 젊음의 낙인으로 버텼다. 그러나, 세월은 단지 바람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진실과 행동으로 쌓아 올려야 한다는 걸 깨달은 후에도 역시나 담장 위를 걷고 있었고, 건너편으로 내려가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담장은 더욱 높아져만 갔다.
지혜와 지식이 부족한 걸까. 돈이 부족해서? 사회성이 없어서? 아니다. 세상을 미워하는 마음, 그것 때문이었다. 잘 살고 싶다는 욕심 뒤에 가려진 한탄과 자조가 문제였다. 잘 사는 것도 결국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애당초 그 세상 자체를 부정한 것이 잘못이었다. 미워하는데 사랑받고 싶은 사춘기 아이 같은 심장으로는 결코 담장 위를 벗어날 수 없었을 테다. 내가 미워하는데 나를 사랑해줄 존재는 부모님밖에 없다. 세상의 모든 존재에게 부모가 되어 달라고 속으로 끙끙 앓는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나는 아직도 30대의 유아기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다. 그저 그런대로, 생긴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물처럼 모든 것 위로 흘러내릴 수 있는, 모든 것에 부모가 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더 이상의 이해득실과 불확실의 환상은 뒤로하고 모든 것에 초연해지고 싶다. 오늘은 더욱 그런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