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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재 Apr 06. 2022

[단편] 나는 사토시다

사람들은 나를 사토시라고 불렀다. 사실 그리 마음에 드는 닉네임은 아니었지만, 항상 내가 똑똑한 사람이 되기를 바랐던 어머니의 염원을 조금은 이루어 드렸다는 생각에 그런대로 만족해야 했다. (*사토시='똑똑하다') 똑똑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타고난 불평등을 해소할 정치인이 되고 싶었다. 비록 얼마 남지 않은 시간 탓에 원대한 소망을 이룰 수는 없게 되었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될 사토시만큼은 그런 사람으로 남아 주기를 바랐다.


평생 어려운 형편이었다. 아버지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불편한 몸에 갇힌 나를 키우기 위해 어머니는 고된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나온 기억의 한 켠에는 작은 어물전을 운영하던 그녀의 비릿하고 거친 손이 남아있다. 미소를 잃지 않던 그녀의 얼굴만큼 정겨운 손이었다. 불편한 몸 때문에 단 한 번도 직접 바다를 본 적은 없었지만, 그녀는 늘 내게 바다 같은 존재였다.


자정이 되어도 오지 않던 그녀 대신에, 급하게 문을 두드리던 료타 씨는 이제 너의 어머니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소식을 전하던 때, 바다가 뒤집혀 온 세상 아래로 파도가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2톤에 달하는 철제 구조물이 그녀 위로, 내 어머니에게로 쏟아졌다. 아마도 고통은 짧았을 것이다. 그랬어야만 했다. 휠체어에서 떨어져 처절하게 기었다. 그녀가 좋아하던 장미꽃을 영정사진 앞에 올려놓기 위해 하염없이 기었다. 3일 내내 어머니의 주마등을 자처하던 나는 외롭고 슬픈 장례식에서 영영 헤어 나올 수 없음을 직감했다.


장례가 끝난 후 주변의 도움으로 지역 복지원에서 지냈다. 세상의 마지막 배려였다. 컴퓨터 말고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에게 아직 더 살아보라는 누군가의 비아냥거림이었다. 몇몇 학우들과 교수님들이 다녀갔다. 잘 지내고 있냐는 안부 치레 뒤에 행여 자신에게도 그러한 불행이 닥치게 될까 염려하는 눈빛들 그다지 대수롭지 않았다. 그리고 한동안 눈을 뜰 수 없었다. NDM(국제 데이터 학회) 상임위원을 지내던 와타나베 교수가 불쑥 찾아와 나를 흔들어 깨우기 전까지.


"개제 일이 한참 지나서 놀랐네..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죄송해요. 좀 더 자고 싶어요. 개제는 안 할 거예요. 사실 다 지웠어요. 재미없거든요"

".... 일단 푹 쉬게나.. 논문이야 언제든 다시 써서 올리면 되지. 정말 유감이야. 유감이네. 그렇다고 자네 그 재능을 버리지는 말았으면 좋겠어. 어머니께서도.."

"제발!! 나가주세요 제발.... 제발...."


하얗게 질린 그의 얼굴은 금세 복도 너머로 사라졌다. 차갑고 고요한 공기 사이, 잿빛으로 식어가던 내 심장은 더욱 더 차가워졌다. 정신은 다시 혼미해졌고 언젠가 다시 눈을 떴을 땐 푸른 새벽이었다. 노트북을 켰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지난 2년 동안, 가치의 분산화 데이터 사슬을 연구하던 야심 찬 논문도 속절없게 느껴졌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평생 짐짝이 되어 그녀에게 기생하던 나는 기어코 어머니를 잡아먹은 괴물이 되어 있었다. 초기화 버튼을 누르면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갈 터였다. 홀가분해질까. 어느 도체에도 새겨지지 않을 데이터 쪼가리는 전류를 타고 열에너지로 증발할 것이다. 그러면 나 역시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어질 것이었고 모든 것을 끝내버릴 좋은 기회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난 겁쟁이였다. 세상에 아로새겨지고 싶은 욕망이 존재의 이유를 앞질렀다. 비록 학회도 아니고, 신분을 밝힌 것도 아니었지만 누군가 내 정신의 일부를 알아봐 주기라도 한다면, 그런대로 아주 조금의 위안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침이 밝아왔다. 수십 통의 메일이 쏟아졌다. 칭찬의 글과 미팅 제안, 프로젝트 제의와 회의론자의 글들이 한데 뒤섞여 메일함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사토시라고 부르고 있었다. 어제보다 조금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몸은 고꾸라졌다. 저 멀리서 빠르게 뛰어오는 조무사들이 점점 멀게만 느껴졌다.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그래도 최악의 인생은 아니었다는 안도감에 볼은 옅은 미소를 띠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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