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 검사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조카뻘인 어린 상사의 분노의 50대 검찰 수사관들은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들이 기소한 피고인은 결국 무죄로 석방됐다. 언론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검찰과 경찰의 무능함을 앞다퉈 보도했다.
"지금부터, 모든 수사를 원점으로 되돌립니다. 살해 현장에 있었던 유일한 생존자 김도경.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조사하고 바로 보고 올리세요."
그녀는 결정적인 순간에 말을 바꾼 김도경에게 화가 났다. 어차피 모든 게 틀어진 현 상황에서 수사는 다시 원점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김도경. 당신부터 탈탈 털어주지.'
경찰서에 전화를 거는 그녀의 손가락에 분노가 서려있었다.
경찰도 세간의 비난에 자유롭지 못했다. 한치운 경감은 이정우 경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위에서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야. 다시 잠복근무 시작이야. 제수씨한테 미리 전화 넣어놔."
이정우 경위는 상당히 지쳐있었다. 처음 연쇄살인마의 출현에 한껏 상기됐던 그의 표정은 실망과 피로에 찌들어갔다.그는 과학수사와 낭만적인 잠복수사를 통해 연쇄살인마를 검거하고 특별승진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왔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나 드라마와는 확연히 달랐다.
"제가 김도경 뒤를 밟아야 하는 건가요?"
내키지 않았다. 김도경 그 사람도 엄연히 피해자였다. 누구라도 자신의 가족이 살해당하는 그런 상황에서는 기억이 뒤죽박죽이 될 수 있다. 분노의 대상이 그에게로 향하는 거 같아 기분이 찝찝했다. 까라면 까야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러울 뿐이었다.
씬# 다시 교도소
교도소에 밤이 찾아왔다. 깊은 산중에 위치한 교도소의 밤은 달빛조차도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삼엄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취침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이곳 에 완전한 소등은 없었다. 사람의 형상이 구분될 정도의 조명등이 은은하게 켜져 있는 복도에서 도경은 취침 중인 수감자들의 머릿수를 세며 순찰근무에 임하고 있었다.
"거기, 화장실에서 뭐합니까?"
도경은 수감자들이 자고 있는 방 창살 앞에 멈춰 섰다. 교도소의 화장실은 밖에서도 내부를 볼 수 있었다. 화장실에서 자살이나 자해, 수감 질서를 해 칠 수 있는 일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에 계호의 명목으로 완전한 차단이 불가능했다. 물론 인권문제 때문에 하단 부분은 외부에서도 볼 수 없게끔 차단막으로 가려져있었다.
수감자는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 중이었다. 개인적인 사생활이라고 볼 수 있었지만, 다수가 생활하고 있는 공동체 생활에서 혼자 화장실에 오래 머물고 있는 것은 금지됐다. 수감자는 도경을 기분 나쁜 눈으로 쳐다봤다. 끝내야 할 것을 끝내지 못해 짜증이 바짝 오른 모양이다.
"아씨... 짜증 나게."
그는 도경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리고는 고함을 질러댔다.
"그냥 지나가세요. 사람 짜증 나게 하지 말고."
잠들어 누워있는 수감자들이 그의 큰소리에 눈을 떴다.
그 순간 아물었다 생각했던 도경의 오른쪽 귀가 다시 욱신거렸다. 도경은 그가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 올리는 걸 본 후 담당실 책상에 돌아와 앉았다.
'아동 성폭행범'
방금 전 그 수감자의 파일이 컴퓨터 화면에 띄어졌다. 그의 사건기록은 도저히 읽어 내릴 수 없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 10년을 복역한 그의 출소일은 앞으로 2주 후. 도경은 입가에 비릿한 조소를 지으며 작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