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열두 살 생일을 맞이했다.
달력에 표시된 동그라미 옆에는 커다랗게
'내 생일~삼촌! 선물 잊지 마세요!'라고 적어놓았다. 삼촌이 퇴근하기 전까지 빵 케이크를 만들어놓고 문 뒤에 숨어있다가 깜짝 놀라게 해주는 게 오늘의 작전이다. 화들짝 놀랄 삼촌의 표정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입꼬리가 씰룩였다. 식탁 위에는 작년 크리스마스 때 꺼내 썼던 빨간색 접시와 반죽 용기, 프라이팬, 포크와 나이프를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소매를 걷어붙였다. 밀가루를 반죽 용기에 쏟아붓고 계란을 야무지게 깨뜨려 넣었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얼굴이 시뻘게질 때까지 휘저었다.
클릭콜럭.
아 맞다. 우유! 유통기한이 이틀 지난 우유를 붓고 흰 눈가루처럼 생긴 설탕 한 숟가락을 넓게 뿌렸다. 제법 빵의 모양이 완성되자 밀가루 반죽을 조심스럽게 들어 프라이팬에 올려놓았다. 이번엔 꼭 태우지 않으리라. 곧이어 노랗게 구워진 밀가루 빵이 고소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됐다!'
굳이 빵을 떼어먹어보지 않아도 이번엔 완벽하다. 내 생일이지만 빵 케이크까지 직접 만들다니. 내가 생각해도 또래답지 않은 기특함에 뿌듯함의 땀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혔다.
또각. 또각.
'어? 삼촌 발소리!'
삼촌이 집에 들어온 모양이다. 밖에 나가지 못하다 보니 발소리로 삼촌의 등장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사실 나는 한 번도 밖에 나가본 적이 없다. 한 번은 오늘처럼 삼촌을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방에서 나와서 현관 바로 옆에 있는 삼촌 서재에 숨어있다가 된통 혼난 적이 있다. 그때 그렇게 정색하며 소리를 지르던 삼촌의 표정은 정말 무서웠다. 그날 저녁 삼촌은 리모컨으로 움직일 수 있는 강아지 장난감을 선물해주며 울고 있는 나를 달래줬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내 방 문고리에는 손바닥만 한 자물쇠가 채워졌다.
철컥. 철컥.
"서프라이즈!!"
"히익! 깜짝이야. 놀랬잖아~와 이게 다뭐야?"
킥킥. 성공이다. 삼촌의 표정은 정말 끔찍하게 우스꽝스러웠다. 저 표정을 나 혼자 밖에 볼 수 없다니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너. 삼촌이 이 장난 그만하랬지! 그나저나 이걸 다 혼자 준비한 거야? 이야~대단한걸?"
삼촌은 잠시 무서운 표정을 지었지만 식탁 위에 놓인 빵 케이크를 보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삼촌! 선물은? 설마 잊진 않았겠지?"
"그럼~설마 우리 조카 생일 잊었을까 봐? 잠깐. 이것 좀 먼저 벗어놓고."
삼촌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을 감싸고 있는 두꺼운 방호복을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그리고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더니 동그란 캡슐 같은 것을 꺼내 들었다.
"우와. 삼촌 이게 뭐야?"
나는 입에 가득 밀어 넣은 밀가루 빵 케이크를 꿀꺽 삼키면서 삼촌이 들고 있는 캡슐을 잽싸게 낚아챘다.
삼촌은 TV에서 나오고 있는 공룡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공룡!"
"응? 공룡? TV에 나오는 그 공룡?"
내 방에는 TV가 하나 놓여있다. 비디오테이프를 넣으면 하루 종일 만화영화가 나왔다. 난쟁이들부터 우주선에 탄 외계인들, 공룡, 요정, 마법사들이 악당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하는 5편의 만화였다. 반복된 재생에 대사까지 다 외워버렸지만 삼촌이 출근한 시간 동안은 혼자 있기 무섭기도 해서 그냥 틀어놓는 편이다. 그래도 이 TV를 통해서 바깥세상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공룡은 우리 인간이 살기 전에 있던 생명체인데 그 크기가 우리 집 천장보다 더 크고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한다.
"진짜 공룡? 사람 잡아먹는 그 공룡?"
내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 종말에 가까운 재난이 덮친 세상에서 공룡이 실제 한다고 딱히 이상할 건 없었다.
"겁먹기는. 공룡은 전부 멸종했다고 알려줬잖아. 자. 봐봐~이걸 물에 담가놓고 일주일이 지나면 손바닥만큼 커지는 거지. 신기하지?"
삼촌은 동그란 캡슐을 열고 젤리처럼 생긴 공룡 장난감을 물컵에 빠뜨렸다.
"에이. 시시해."
집채만 한 공룡이 무섭긴 했어도 진짜 공룡을 키울 생각에 잠깐 설레기도 했다. 차라리 읽을 책을 하나 사달라고 할걸.
"삼촌, 나는 언제쯤 밖에 나가 볼 수 있어?"
"왜...? 밖에 나가보고 싶어? 5년 동안 그런 얘기 한번 없더니 웬일이래."
"꼭 나가고 싶은 건 아닌데, 집에 불이나 거나 응급상황이 생기면 나가야 될 수도 있잖아."
이 방은 내가 사는 세상이었다. 내가 아는 전부가 이 방안에 다 들어있었다. 비디오테이프를 넣어야만 나오는 TV, 원목으로 된 식탁과 의자, 침대 위에는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이 어지럽혀있고 주방 옆에는 화장실, 화장실 벽엔 샤워기도 달려있다. 기억나는 건 6살 때부터의 기억이다. 하루하루 이 방 안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삼촌 품에서 잠들고 삼촌이 글도 알려줬고 목마도 태워줬다. 삼촌은 내가 아는 세상 전부였다.
"우리 조카가 스무 살이 되면 나갈 수 있지. 지금은 아직 몸이 버티질 못해. 운동은 빠뜨리지 않고 하고 있지?"
삼촌은 나에게 몇 가지 운동을 가르쳐줬다. 윗몸일으키기, 팔 벌려 뛰기, 12가지 체조라 불리는 우스꽝스러운 포즈들. 나는 하루에 한 시간씩 운동을 했다. 더 어릴 때에는 삼촌 앞에서 운동을 하고 정해진 시간을 채우면 내 손등에 귀가 큰 쥐가 그려진 파란색 도장을 하나씩 찍어줬다. 그땐 그 손등도장이 뭐가 그렇게 좋아서 하루 종일 신나 했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스무 살이 되더라도 뼈와 근육, 내장기관이 약한 사람들은 바깥세상에 나가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은 이후로 나도 꾸준히 운동을 해왔다.
"삼촌, 나도 저거 한번 입어봐도 돼?"
나는 삼촌이 퇴근 후 걸어놓은 두꺼운 방호복을 쳐다봤다.
"저거? 무거워서 아직 못 입을걸. 아마 입으면 걷지도 못할 거야."
흰색으로 된 방호복은 삼촌이 출퇴근할 때마다 입고 다니는 옷이다. 처음엔 저 옷을 입고 출근하는 삼촌의 모습이 멋있었다. 나는 언제쯤 저 옷을 입고 밖에 나가 볼 수 있을까. 내가 성인이 되더라도 2시간 이상 바깥세상에서 활동을 하려면 안전예방차원으로 저 방호복을 입어야 한다고 했다.
"밖에 나가면 뭐가 제일 하고 싶은데?"
삼촌은 마지막 남은 빵 케이크 조각을 마저 먹고 우유를 벌컥 들이켰다. 삼촌의 수염에 하얀 우유가 반달 모양으로 묻어있었다. 나도 칠칠맞지만 우리 삼촌도 나에게 그다지 뒤처지진 않는 것 같다. 역시 피는 우유보다 진하다.
"몰라. 그냥 삼촌이랑 기차 한번 타보고 싶어."
"기차... 같은 건 이제 다 없어졌어."
삼촌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삼촌은 바깥세상 얘기를 할 때면 눈시울을 붉혔다. 가끔 독한 위스키를 마실 때면 세상에 처음 재난이 일어났을 때를 이야기해주곤 했다. 그런데 꼭 얘기의 끝은 새드엔딩이다. 나를 지키려다 높은 건물 옥상에서 떨어진 엄마,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 어땠는지 얘기하면서 콧물까지 쏟아냈다.
"엄마, 아빠... 안 보고 싶어...?"
"그다지."
본 적도 없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엄마, 아빠라는 개념은 그저 나에게 네 글자의 단어일 뿐이었다. 하지만 삼촌은 우리 엄마, 아빠가 보고 싶은 모양이다. 우리 엄마, 아빠는 재난이 처음 시작했을 때 돌아가셨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과 물체들이 조금씩 공중으로 떠올랐고 귀에선 피가 흘러나왔다고 했다. 삼촌의 말에 따르면 지구밖에 달이라는 동그란 행성에 문제가 생겼고 뼈와 장기에 문제가 생긴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나갔다고 한다.
"삼촌은? 삼촌은 몸 안 아팠어?"
삼촌은 그날을 회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죽을뻔했지. 처음엔 갑자기 토가 나오더니 귀가 안 들리기 시작했어. 하늘은 하루 종일 깜깜했고 어른들은 그나마 치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어린아이들의 같은 경우는 문제는 심각했지. 그때 참 많이 죽었어. 실종도 많이 됐고."
컴컴해진 하늘에 사람들은 집에서 나오지 않기 시작했고 밖에 나간 아이들은 몸이 심하게 망가졌다. 갓난아기들 같은 경우는 손쓸 틈도 없이 하늘로 둥둥 떠올라 실종된 아이들만 수만 명이 넘었다고... 삼촌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니깐 아직은 절대 밖에 나가면 안 돼. 알겠지?"
"내가 바본 줄 알아~나도 아직 죽기 싫거든!"
삼촌의 표정이 점점 더 심각해지자 나는 분위기를 풀기 위해 혓바닥을 길게 내밀며 바보 표정을 지었다.
"밤늦었다. 이제 양치해야지?"
나는 후다닥 화장실로 달려들어갔다. 양치가 끝나면 하루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삼촌은 자기 전에 책을 세 권씩 읽어줬다. 우리는 누워서 장난도 치고 이불속에서 손전등을 켜놓고 책을 읽었다.
"삼촌."
"응?"
"사랑해. 고마워."
나는 진심을 담아 삼촌에게 말했다. 이상하게 꼭 이 말을 할 때면 눈이 따끔거렸다.
"감동이네... 삼촌도 사랑해. 이제 불 끄고 잘까?"
"삼촌, 오늘은 같이 자면 안 돼...?"
우리는 잠은 따로 잤다. 삼촌은 언제 외부인들이 침입할지 모른다며 현관문을 등지고 보초를 서야 한다고 했다. 난장판이 된 바깥세상에는 괴물처럼 변한 사람들이 호시탐탐 우리 집을 노리고 있을지 모른다고 밤에는 더 조용히 해야 한다고 말해줬다. 하긴 그래서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던 거였겠지만.
"우리 조카 이제 아기 아니지? 씩씩하게 혼자 자야 나중에 이 삼촌도 지켜줄 수 있는 거야."
삼촌은 내 볼에 뽀뽀를 해주고 이불을 내 턱밑까지 올려줬다. 그리고 허리춤에 찬 열쇠뭉치를 꺼내 방문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철컥. 철컥.
비가 땅에 떨어져 내는 소리 때문인지 오늘따라 철 자물쇠가 잠기는 소리가 더 차갑게 느껴졌다. 삼촌의 발걸음 소리가 조금씩 작아지는 것을 확인하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까치발을 들어 손바닥만 한 창문을 내다봤다. 한 뼘 남짓의 창문밖에는 흙바닥에 잡초만 무성히 보였다. 가끔은 궁금하다. 정말 삼촌의 말이 맞는 걸까.
-2화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