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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May 18. 2022

김도영 소설집 [달력2]

달력2

"빨리 옮겨!"

"이쪽으로."

갑자기 문밖에서 큰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아침이 되지도 않았는데 무슨 일이지.

철컥. 철컥. 쾅!

삼촌이 방문을 부실듯한 기세로 열고 들어왔다. 리고 웬 남자와 그의 등에 업혀있는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의식을 잃은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삼촌은 팔을 크게 휘저으며 식탁에 있는 식기들을 쓸어버렸다.

"이쪽에 눕혀!"

어제 먹고 남겨놓은 빵 케이크와 크리스마스 때 산 접시가 바닥에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삼촌... 무슨 일이야?"

아이를 눕히고 남자는 나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숨을 빠르게 몰아쉬었다. 삼촌은 식탁에 누워있는 아이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 당분간은 여기서 있어야 될 거 같은데..."

남자는 여전히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삼촌... 방호복도 안 입고... 괜찮아?"

"잠깐만! 조용!"

삼촌이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얼마 전 숨바꼭질 장난을 칠 때 봤던 그 무서운 표정이다. 촌은 그 무서운 표정을 유지한 채 남자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쟤가 여기 있는데 여기서 어떻게 있어!"

쟤? 날 얘기하는 건가?

"그럼 어떡해. 당장 방법이 없잖아."

"그래도 쟤랑 같이 여기 놔둘 순 없어. 일단 거실로 옮겨. 그러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자."

삼촌과 남자는 식탁에 누워있던 아이를 다시 등에 업쳐메고 방 밖으로 뛰어나갔다. 는 들이 나가고 한참 동안 멍하니 문쪽을 바라고 서있었다. 한바탕 휘몰아친 방바닥에는 깨진 접시 조각과 빵 케이크가 길바닥에 버려놓은 것처럼 불쌍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명치 깊은 곳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느낌에 코가 쓰라렸다. 어항에 물을 채우듯이 내 눈에도 물기가 점점 차올랐다. 고개를 떨구고 바닥을 쳐다보자 눈물 한 방울이 쭉 흘러내려 인중에 고였다. 코에서 눈물 냄새가 났다. 나는 무릎을 굽혀 깨져있는 크리스마스 접시를 집어 쓰레기봉투에 집어넣었다.

아!

깨진 접시 모서리에 엄지손가락이 베어 한줄기 피가 손바닥 아래로 쭈욱 미끄러져 내려왔다. 간 어제 삼촌이랑 같이 빵 케이크에 초를 불던 장면이 떠올랐다. 눈물이 갑자기 폭발한 듯 터져 나왔다. 소매로 눈물을 닦고 고개를 돌려보니 방문이 열려있다. 엇에 홀린 듯 열려있는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바꼭질 장난 이후 그동안 한 번도 나가볼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당장 이곳을 뛰쳐나가 도대체 무슨 일인지 삼촌에게 따지고 싶었다. 정확히는 삼촌에게 서운한 마음보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더 큰 거겠지만. 혼날 때 혼나더라도 지금은 삼촌이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는 건 아닌지 꼭 알아야겠다. 휴우.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때였다.

쿵. 쿵. 쿵. 쿵

삼촌이 계단을 세 개씩 건너뛰며 내려오고 있었다. 문이 열려있는 걸 보자 삼촌의 눈동자가 주먹만 해졌다.

"문 닫아. 어서!"

나는 대꾸도 하지 않고 제자리에 서서 삼촌을 노려봤다. 촌은 을 닫더니 급하게 허리를 굽혀 나를 꼭 안아줬다.

"미안해... 많이 놀랐지?"

나는 여전히 대꾸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하게도 자꾸 눈물이 흘러나왔다. 내 눈가에 닿은 삼촌의 손은 참 따뜻했다.  고개를 들어 삼촌의 얼굴을 쳐다봤다. 삼촌의 눈에도 물기가 머금어 있었다. 나도 손가락을 구부려 삼촌의 눈가를 닦아줬다. 하지만 따질 건 따져야 했다.

"삼촌! 도대체 무슨 일이야. 다친데 없어?"

방호복도 안 입고 밖을 뛰어다녔다고 생각하니 돌멩이 하나를 명치에 얹어놓은 듯 마음이 무거웠다.

"삼촌은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까 그 아이는 괜찮은 거야? 그 아저씨는 또 누구고?"

분명 그 아이의 상태는 심각해 보였다. 그리고 삼촌은 한 번도 내 방안으로 외부인을 데리고 온 적이 없었다.

"그 아이는... 아마 심하게 다쳤을 거야. 길거리에 쓰러져있는걸 내가 발견해서 망정이지. 보호복도 안 입고 있는 거 보면 분명 장기가 심하게 손상됐을 거야. 옆에 있던 아저씨는 삼촌이 예전부터 아는 의사 아저씨고."

삼촌의 표정은 심각해 보였다.

"그래서? 그 아이는 어떻게 됐어? 설마..."

"의사 아저씨가 병원으로 데리고 가고 있을 거야. 방호복도 안 입고 길거리에 쓰러져있는 거 보면 범죄에 연루됐을 수도 있고... 바이러스에 간염 됐을 수도 있고, 여하튼 누군지도 모르는데 우리 집에 머물고 있게 할 순 없잖아."

그때, 방문을 열고 아이를 둘러업고 갔던 그 남자가 돌아왔다.

"어떻게 됐어?"

삼촌이 그 남자를 다그치듯 쳐다봤다.

"이제 걱정 안 해도 돼. 잘 마무리하고 왔어."

남자는 삼촌의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나를 내려다보며 얘기했다.

"이야. 많이 컸네. "

뭐지. 나를 아는 사람인가?

그 남자는 외투 안주머니에서 작은 플래시를 꺼내더니 내 눈을 비췄다. 그리고 청진기를 꺼내 내 윗옷을 올렸다.

"왜 이러세요!"

낯선 사람의 접촉에 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차가운 청진기의 감촉에 소름이 볼살을 저리게 했다.

"괜찮아. 의사 아저씨가 우리 조카 건강한지 보려고 하는 거니깐 걱정 안 해도 돼."

삼촌은 뒷걸음치는 나를 잡아세웠다.  어깨를 잡은 삼촌의 손에 강하게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아파."

나는 짜증 나는 표정으로 삼촌을 째려봤다.

"이제 그만 놔줘도 돼. 아주 잘 컸어."

남자는 흡족한 표정을 짓더니 귀에서 청진기를 떼 안주머니에 넣었다. 러더니 삼촌의 귀에 대고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이제 슬슬 진행해도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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