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에 들어서자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이 건물의 페인트 칠이 며, 액자며, 그 색감이 모두 일률적이었다. 어떤 사연도 들어있을 것 같지 않은 회색빛. 뿌연 잿빛이 되어버린 도경의 인생과 잘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유가 제한됐다. 즉 혼자 이동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사람들은 오와 열을 맞춰 침묵을 유지한 채 이동하고 생활했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보수가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건물 외벽에 여기저기 금이 가 있었다. 깨진 타일, 금이 간 벽처럼 엄마가 살해당한 이후 도경의 마음에도 금이가 있었다. 도경은 살인마를 만나러 직접 이곳에 들어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주인공들은 바보다. 그들은 복수를 하기 위해 죄를 저지르고 같은 죄인의 몸으로 이곳에 들어온다. 그러면 복수의 대상도 자유가 제한되지만 자신의 자유도 제한된다는 것을 왜 모를까? 도경은 생각했다. 이곳은 격리구역이다. 그러나 그들과 달리 이곳을 마음껏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 딱 하나 있다.
또각또각.
교도소의 긴 복도를 혼자 걷고 있는 도경의 발걸음에는 어떤 힘도 실려있지 않았다. 그를 잡으러 이곳에 들어왔지만 그는 이곳에 복역 중이지 않았다. 그는 검거되고 처음 이곳에 구속됐지만 도경이 교도관 시험과 살인, 사체 처리방법 등에 대해 숙지하는 1년의 기간 동안 그의 1심 재판이 끝이 났고 그는 항소하여 다른 교도소로 이송됐다. 하지만 포기하긴 아직 이르다. 항소심이 끝나면 그 살인마는 다시 자신이 있는 구치소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도경은 그때까지 이곳에 섞여 내 역할을 하며 그를 기다리면 될 일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이곳에 사람들... 이곳에 수감된 죄수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죽이고 싶다는 생각... 그 생각이 하루 종일 머릿속에 떠나지 않았다.
"교도관님. 왜 안된다는 거예요. 저번에는 저 혼자 운동하면서 샤워까지 했는데. 킥킥."
수감자 한 명이 도경의 허리춤과 목덜미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조소를 날렸다. 수감자들은 하루에 20분에서 30분씩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데 이 사람은 지금 그 외의 시간까지 혼자 운동을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요구였다. 아마도 도경의 인내력을 테스트하거나 이성을 잃게 만들어서 자신의 컨트롤 하에 도경을 두려고 시도하는 것 같다. 간혹 몇몇 교도관들이 수감자들의 간단한 요구를 들어주다가 그것이 빌미가 되어 더 큰 요구들을 들어줘야 하는 경우가 생기곤 했다. 그렇게 되면 그 교도관은 수감자에게 천천히 잠식되어 갔다.
"안돼요. 조용히 하고 앉아있으세요."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 도경이 이곳에 들어온 이유는 이 사람들을 교정하고 싶은 이유는 아니었다. 도경의 목표는 그 살인마, 그놈을 잡으려 이곳에 들어온 것이다. 굳이 다른 사람들과의 줄다리기에 자신의 에너지를 할애하고 싶지 않았다.
"안 되는 게 어딨어요. 교도관님. 귀에 문제 있어요? 귀 생긴 건 또 왜 그래요? 킥킥."
그의 말을 듣던 다른 수감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키득거리는 소리. 2년 전 그 살인마에게 당한 오른쪽 귀부분이 아려왔다. 도경은 그 당시 곧바로 치료를 받았으나 떨어져 나갔던 오른쪽 귀는 그 기능을 이미 상실했고 인공 귀를 봉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인공 귀는 확실히 티가 났다. 도경은 자신의 오른쪽 귀를 쳐다보며 히히덕거리는 그 수감자를 바라봤다. 그리고 담당실 근무지로 돌아와 그의 사건기록을 열람했다. 그의 죄명은 '몸캠 피싱'. 역겹게도 자신을 여자라 속이고 채팅어플을 통해 피해자를 찾아 나섰고, 그의 덫에 걸린 피해자는 결국 그에게 수천만 원을 입금해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 수감자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피해자의 나체 사진을 주변인들에게 모두 전송했고, 피해자의 가정은 파탄에 이르렀다. 결국 이 피해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하게 됐다. 사람이 죽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수감자가 사형이나 무기징역의 형을 받게 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출소 만기는 앞으로 한 달 후. 민간인이 될 신분이기에 더 이렇게 안하무인으로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사건기록을 보면서 엄마가 누워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도경의 집도 이름 모를 누군가의 행동으로 인해 가정이 산산조각 났고 엄마는 살해당했다. 사실 몸캠 피싱 피해자와 도경의 처지는 서로 많이 닮아있었다. 오른쪽 귀가 다시 아려오기 시작했다. 그때 도경은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