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이런 살인사건의 경우, 그 판결의 과정이 더 엄격했다. 그동안의 경험상 사형이나 무기징역이 나올만한 사건, 그리고 언론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에 재판부는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결국 직접증거가 있느냐,
실제 살해하는 그 순간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 있느냐,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어떡하죠?"
한 경감은 며칠간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고생한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담배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을 하는 한 담배는 영원히 끊지 못할 것이라고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일단 좀 더 고생을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혹시 그때 살해 현장에 있었다는 피해자의 아들은요?
그때 피해자 신문조서 작성하고 바로 집으로 귀가한 거죠?"
"그렇죠, 그때 그 사람도 귀를 절단당하는 피해를 입어서 치료를 받고 있었을 때였어요.
부모가 살해당한 상황에서 이것저것 의심하기도 좀 그랬고요."
부모가 살해당했을 때의 심정이라, 한 경감은 그 절망감이 어느 정도 일지 가늠조차 가지 않았다.
"일단 그 피해자의 아들을 다시 조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물론 참고인의 신분으로... 재판부에 다른 사람이 범인일 수도 있다는 실마리를 처음부터 주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녀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재판부에게 그 피고인 말고는 범행을 저지를 제3의 인물은 없다는 것을 어필할 필요도 있어 보였다.
"그럼 그 아들, 소환할까요?"
"네. 그 사람 신문해서 검찰에 자료 넘겨주세요."
씬# 네온사인, 밤의 거리
밤의 향기는 달콤했다.
12시가 넘어가면 그 검은색 하늘에 고유의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한다. 중력으로 착 가라앉은 공기, 술의 비릿한 냄새와 담배의 진득한 냄새가 서로 섞여 공기를 타고 도경의 콧속으로 들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 밤의 끝을 잡고 집에 들어가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리의 한가운데 그가 있었다.
오늘은 그가 죽는 날이다. 도경은 바로 오늘을 그의 사망일로 지정했다. 구치소안에서 그의 집주소를 알아냈다. 그리고 그의 전화번호와 가족들의 전화번호 모두를 SNS에 검색하니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노출됐다. 도경은 그의 집 근처에서 그가 자주 가는 호프집에 그가 매일같이 출몰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출소한 지 얼마 안 된 그는 매일 술을 퍼마시기에 바빴고, 지금의 생활을 보아하니 곧 술자리 싸움이나 성관련 범죄로 다시 교도소로 들어올 것이 뻔해 보였다. 죄수복을 입고 있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추레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가죽잠바와 명품으로 보이는 신발을 멋들어지게 신고 있는 그를 보며 비릿한 실소가 도경의 입가에 지어졌다. 사람의 성을 착취하고, 재산을 강탈하고, 가정을 파탄시키고, 목숨까지 앗아간 그에게 이런 사치는 용납되지 않았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그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도경은 자신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갔다. 도경은 근처 편의점에서 그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보랏빛~향기는~~ 우리의~사랑하는~"
확실히 그는 만취상태인 것이 분명했다. 얼큰하게 오른 술기운에 기분이 좋은지 연신 끔찍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댔다. 소름 끼치는 그의 바이브레이션을 듣고 있노라니 토가 쏠려왔다. 그를 죽이지 않는다면 이웃사람들은 이 고성방가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CCTV 사각지대로 들어섰다.
우웩.
그는 전봇대를 붙잡고 토사물을 뱉어냈다. 도경은 그의 등 뒤에 섰다. 그는 도경이 자신의 등 뒤에 서있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계속해서 소화가 다 되지 않은 음식물들을 쏟아냈다. 등 뒤에 서있던 도경은 준비해온 망치로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퍽.
군더더기 없는 단 한번의 동작.
그는 매가리 없이 축 늘어졌다. 그리고 그를 차 뒷 트렁크에 싣고 임대받은 깊은 산골짜기 자신의 아지트로 내달렸다.
"정신이 들어?"
그가 눈을 떴다. 그리고 곧 몸을 떨며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는 바다에서 막 잡아 올린 고등어처럼 팔딱거렸다.
"너 누구야!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하지만 그의 몸은 청테이프와 노끈으로 꽁꽁 묶여 벽기둥에 고정되어 있었다.
"넌 반성하지 않았어. 그게 네가 이렇게 개죽음을 당하는 이유야."
도경의 눈을 바라본 그는 오열했다. 그리고 팔과 다리를 달달 떨기 시작했다. 도경은 검은색 복면을 쓰고 눈만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몸캠 피싱범은 교도소에서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을 많이 접해봤다.그도 알고 있었다. 사람을 죽이기 직전의 그 눈빛을. 그리고 그는 도경의 눈빛을 보자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 번만, 한 번만 선처를... 저 반성 많이 했어요. 제발."
"너에게 피해를 받은 사람도 너한테 이렇게 사정했겠지. 하지만 너도 봐주지 않았잖아?"
반성하고 있다고? 판검사, 변호사, 경찰, 세상 사람들을 다 속여도 그와 24시간, 수개월을 같이 마주했던 자신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