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년 글쓰기
10년이라는 세월을 그것과 함께 했다면 꽤나 정이 들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되려 사람에게는 미운 정 고운 정이 동시에 들기 마련이지만 사물은 대부분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나와 함께한 우리 집의 애마 NF 소나타는 그러한 사물이지요.
이 녀석과의 첫 만남을 떠올려보았습니다. 개똥이남편과 연애를 할까 말까 되지도 않는 밀땅?(나는 저질 밀땅의 고수이기에)을 할 때쯤이었습니다. 2010년 가을이 오기 전쯤 아직은 민소매를 입고 다닐 수 있는 후덥지근한 날씨였지요. 개똥이남편이 이 애마를 몰고 역삼역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둘의 절친인 고향 친구 영어학원 개업식에 갈 참이었습니다. 그 고향 친구는 역시 저의 중학교 동창 남자사람 친구로 또 저의 여자사람 친구와 결혼을 한 친구입니다.
잠시 그 둘의 기구한? 연애 스토리를 얘기하자면, 그 남자사람 친구는 저와 개똥이남편의 중학교 동창 남자 사람 친구이고 그 여자사람 친구는 저의 고교 동창입니다. 이 둘이 언제부터 사랑에 빠졌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우리 모두가 대학 합격 소식을 접하고 대낮이든 야밤이든 술을 퍼마시러 다닐 때쯤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힘든 수능을 마치고 저마다의 대학이 있는 지역으로 떠나기까지의 두 달. 그 겨울은 정말 개와 친구를 하자고 달려가도 바로 절친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만취 상태의 계절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둘은 그때 뭔 일을 냈지 싶었습니다.
그리고 남자 사람 친구는 군대를 가고, 외출을 나온 어느 날 둘은 한방에서 손만 잡고 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만... 23살의 어느 날 임신 사실과 동시에 결혼 청첩장을 우리들에게 들이밀어서 적잖이 놀란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덧 사십 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고 그 부부는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딸을 얻을 순 없었지만 사형제라는 고추밭에서 열심히 인생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우리 집은 형제 둘 고추밭, 그 집은 사형제 고추밭. ㅎㅎㅎ 아차차 남편들을 뺐네요. +1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그 고향 친구의 개업식 날, 역삼역에서 저는 처음으로 이 애마에 올라탔습니다. 돈을 물 쓰듯 쓰는 저와는 달리 개똥이남편은 소비하고는 담을 쌓은 사람이기에 열심히 돈을 모아 회사 상사에게 당시 풀옵션 NF 소나타를 생애 첫 차로 장만하게 된 것이지요. 지금은 흔해빠진 블루투스와 스마트키도 없는 아날로그 감성 충만 자동차가 되어버렸지만요. 이제 슬슬 이걸 타고 다니면 부끄러움을 넘어서 쪽팔리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 저도 멋진 자동차 한대 마련하고 싶습니다. ㅎㅎㅎ
저는 개똥이남편과 결혼하기 직전 노처녀 히스테리가 강력하게 뿜어져 나오는 호르몬을 장착한 시기로 수많은 소개팅에도 불구하고 한 건도 성사되기 어려운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지인들에게 조건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소개팅을 접수해서 많은 남자 사람을 만나고 다녀본 시기였지요. 정말 세상은 요지경이라고 오는 기회를 마다하지 않다 보니 별의별 남자를 만나본 시기였습니다.
어느 날 대학 동창이 전화해서는
"너 한의사 만나볼래?"
"뭐? 한.. 의사? 의사?"(내 스펙에 의사가 가당키나 하냐??)
"아이, 얘! 한의사 말고 항해사!" ㅎㅎㅎㅎㅎㅎㅎㅎ
"아~~~ 물에 떠다니는 항해사???" (그럼 그렇지)
"근데, 돈은 많이 번데!"
"어어어.. 엉 그뤠??" ㅎㅎㅎㅎㅎㅎ
그래서 두 번의 만남을 가진 그 항해사는 첫 번째 만남에 제 연봉과 모은 돈이 얼마냐는 빡치는 질문을 했고 두 번째 만남이 있었던 실내포장마차에서 만취 직전까지 가고서는 게임을 하면서 벌칙으로 손목 때리기를 했는데 정말 진심과 본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실어 제 손목을 세차게 내리쳤던... 지금에서야 생각하건대 돈은 많이 벌지언정 일 년에 반을 망망대해를 떠나니는 사람이 지정신이었을까. ㅎㅎㅎ 그런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번은 고향 친구에게 건물주?를 소개받았습니다. 자기 대학 다닐 때부터 부자로 유명했다며 당당하게 소개를 해줬는데 대신 머리숱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피부숍 원장님 조카로 소개받았던 분은 가발이라도 쓰고 나왔었는데 그 건물주는 기냥 머리를 박박 밀어서 온 머리가 빛이 나던 양반이었습니다.(훈늉한 예시 : 홍석천 씨) 같이 다니면 어두침침할 일은 없겠다 싶었습니다. 몇 번을 만났지만 이 사람 역시 요상한 성격의 소유자.(아님 내가 그랬던 걸까?ㅋㅋㅋ)
그런 사람들 속에서 NF 소나타를 타고 나타난 남자사람 친구 개똥이남편은 제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민머리 건물주도 필요 없고, 돈 쓸 시간도 없이 바다를 떠다니는 바다의 왕자 따위 필요 없어 보였습니다. 개똥이남편이 타고 있던 그 NF 소나타가 그 어떤 세단보다도 멋있어 보였고 값져 보였습니다. 재미교포 출신이라고 주유소를 개스 스테이션이라고 버터 발음했던 남자가 태워줬던 BMW보다도 편했고, 고향에 사는 고모가 너무 괜찮은 사람이라며 만나보라고 했던 아자씨(나도 노처녀였지만 정말 아자씨)가 몰고 나왔던 에쿠스?보다도 좋았습니다.
이 녀석을 타고 10년이 넘는 세월을 무탈하게 지냈습니다. 개똥이남편과 6개월간의 뜨거운 연애 기간에도 열일을 했고 예민한 성격 탓에 자주 가지 못했던 캠핑에서도 그 작은 트렁크에 우리가 쉴 수 있는 갖가지 장비를 실어주었습니다. 아이가 아플 때는 늘 119 못지않게 우리를 응급실로 인도해 주었으며 개똥이남편이 술 한 잔 걸치고 들어온 그 밤에 두찌 낳으러 제가 직접 운전해서 갈 때도 우리 가족을 안전하게 지켜주었습니다.
그랬던 이 녀석이 요즘 여기저기서 소리가 나고 아우성입니다. 보내줄 때가 된 것이지요. 빠듯한 살림에 집 대출금을 갚고 나면 새 차를 마련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나를 반하게 했던 십여 년 전의 위풍당당한 NF 소나타를 보내주어야 합니다. 세상의 그 수많은 물욕에도 불구하고 소박하게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때의 하얗게 반짝이던 이 사물을.
그래서 명절에 가서 시아버님께 죽는소리 좀 했습니다. ㅎㅎㅎ 전 K 장녀라 그런 소리를 하면 자존심에 크게 금 간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었는데 역시 세월은 사람을 변하게 합니다. 늘 자기 언니만 도와준다던 친정 부모님에게 어렵다는 얘기 한번 못하며 씩씩하게 월 수백을 벌던 제 친구가 그랬어요. 죽는소리해야 도와주신다고요. 그 친구라고 왜 살면서 어려운 일이 없었겠습니까?
"아버님, 저희 차에서 소리도 나고 상태가 많이 안 좋아요."
"그래?? 안 그래도 차를 새로 사긴 해야지. 어떻게 똑같이 또 소타나로 뽑을 거냐?"
"(사주 실지 안 사주실지도 모르지만 소망은 항상 크게) 아니요. 아버님, 저는 제네시스 GV80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 제네시스... 니들이 타고 다니기에 너무 비싼 차 아니냐??"
" 아니에요. 아버님, 개똥이남편 회사 사람들 다 부자래요. 다 좋은 차만 타고 다녀요."
저는 오늘도 물욕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런 평범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소중한 애마 NF 소나타가 명을 다하면 저에겐 분명히 저의 눈을 사로잡을 멋진 녀석이 다시 나타날 겁니다. 꿈은 크게, 대신 디테일하게 가져야 이루어진답니다. 저의 소박한 소망이 이루어질 날을 애타게 기다려봅니다.
제네시스 GV80아! 날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진마! ㅎㅎ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