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온난화

by 주부맥가이버

나는 겨울이 굉장히 싫다.


겨울에 태어났고 그 계절의 한 자락처럼 늘 몸이 찼다. 한 겨울이면 밤마다 이불속으로 몸을 숨겼다. 이불이 데워놓은 따스한 온기에 몸을 맡기는 순간이 참 좋았다. 잠이 들기까지 한참을 발이 시려 남편 종아리에 대고 비벼대고는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얼음장 같은 내 발에 흠칫 놀라기 일쑤였다. 수면양말도 신어보고 아무리 문질러 봐도 냉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러다 마흔셋에 둘째 아들을 늦둥이로 낳고 나의 몸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체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삼십이 다르고 사십이 다르다지만 먹는 양이 많이 늘어난 것도 아니었다. 늘어난 체중은 꿈쩍도 안 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연신 카톡 알림처럼 알려올 뿐이었다. 체중보다 주목해야 할 다른 변화는 몸의 온도였다. 그렇게 차고 추위에 꼼짝 못 했던 나의 몸이 달라졌다. 물론 아직도 추위에는 몸서리가 쳐지지만 예전만큼 손발이 시리지는 않는다. 매서운 추위가 그리 겁나지도 않았다. 되레 몸에서 뿜어내는 열기가 예전과 같지 않아 열불이 난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지구 온난화처럼 인간 온난화가 시작된 것일까? 나의 몸이 열대우림처럼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아빠를 모시고 요즘 병원에 다녔다. 팔십까지 일하겠다던 호언장담은 사라지고 칠십 대 중반의 노인은 일을 손에서 놓은 지 이미 한참이다. 그러던 아빠에게서 기억력 감퇴가 일어난 것은 수개월 전이다. 나와 전화를 한 내용을 통째로 기억하지 못했다. 더 오래전에도 한번 동생과 통화한 내용을 까무룩 잊어버려 동생이 근심을 했던 터였다. 그 당시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아빠의 행동이 나와의 통화를 통해 재조명되었다. 인근 병원에 가서 MRI 촬영을 하고 치매검사를 받게 했다.


예기치 않게 뇌동맥에서 동맥경화증이 발견되었고, 경도인지장애 판정도 받았다. 이제 아빠는 노령화 인구 대열에 격하게 동참하는 진짜 늙은이가 되었다. 나이 들어감의 슬픔을 대변하는 외로운 독거노인의 삶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지척에, 내 가족이 그러한 삶을 산다. 아빠는 엄마와는 오래전 이혼을 하고 혼자 살아온 지 수십 년 세월이 지났다.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혼자 밥을 먹고, TV 채널을 돌리고, 그래도 심심하고 외로우면 아빠는 한자 따라 쓰기 책을 펼쳤다. 고독을 씹으며 밥을 넘겼던 시간의 깊이만큼 아빠의 기억력이 감퇴했을지 모른다. 어쩌면 사라진 기억력이, 도망간 삶의 기록들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아빠는 혼자인 시간을 견뎠을 것이다.


나와 동생들은 아빠의 희미해진 기억력 앞에 모두들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각자 살기 바쁘다고 외면했던 아빠와의 시간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했다. 우리에게 해준 것이 없다고 여겼던 아빠의 존재가, 혼자서 묵묵하게 걸리적거리지 않고 살아왔던 한 노인의 실존이 세차게 양심의 문을 두드렸다.


아빠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까. 대학병원에 아빠를 모시고 진료 다니기를 자처했다. 애교 하나 없는 큰딸과 아버지는 차에서 내내 말 한마디 없이 조용했다. 병원에 도착하고 주차장부터 복잡한 그곳을 누비고 다녔다. 엑스레이 촬영을 위해서는 1층에, 초음파 촬영을 위해서는 2층으로 가야 했다. 나는 왜 아빠의 팔짱 한 번을 살갑게 끼지 못하고 그저 따라오라고만 했을까. 나는 어쩌면 다음 진료에도, 또 그다음에도 아빠에게 그런 살가움은 건넬 수 없는 딸이다.


모처럼 차 안에서 입을 뗐다. 겨울인데 너무 춥지 않다며 지구 온난화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한마디를 건넸다. 그래도 힘든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겨울이 낫지 않겠느냐고. 맞다. 배운 것이 없고 무능력하다고 밀어낸 노인의 입에서 가슴을 울리는 소리가 나왔다.


먼 미래를 떠올리며 지구가 뜨거워짐을 걱정하는 것도 맞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서, 푸른 지구를 위해서. 그러나 볼을 비비면 닿을 듯 가까운 사람이 먼저다. 지척에 있는 소외된 이웃들, 그 이웃이 아니더라도 오랜 기간 고립되었던 바로 나의 아버지가 바로 독거노인이자 힘든 이웃이었다. 사람이라면, 인간이라면 손에 닿지 않는 존재를 걱정하기보다 바로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존재에게 먼저 가는 것이 옳다. 나는 저 멀리 사는 피부가 까맣고 삐쩍 마른 아이들을 후원할게 아니라 나의 아버지에게 먼저 따뜻한 가슴을 내어줘야 마땅하다.


나도 나이 오십을 바라보며 살이 찌고 얼굴에 하루가 다르게 주름이 늘어간다. 늦둥이를 키우랴 푸석한 피부에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이 애석하기만 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꼭 슬픈 것만이 아님을 알 나이가 되었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지 않겠는가. 젊음이 가고 내게는 인간 온난화가 시작되었다.


미워했던 아버지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 지구 온난화를 걱정했던 나를 무색하게 했던 아버지의 시선. 나는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느낄 수 있을 만큼 나이 들고 자랐다. 바로 옆에 있는 힘든 사람을 먼저 걱정하던 늙은 아버지의 시선이 따뜻하기만 하다. 겨울이 여전히 싫지만 겨울답지 않은 지금의 겨울을 우선 긍정적으로 바라봐준다.


인간 온난화는 체온뿐 아니라 마음의 온도도 올려준 모양이다. 올 겨울만큼은 손도 발도 시리지 않다. 아무리 추운 바깥을 거닐어도 내 마음의 온도는 상승곡선을 그릴 것만 같다. 오랜 시간 고독했던 아빠의 마음도 나와 꼭 같기를 바라본다. 아빠의 멀어져 가는 기억력을 나의 온기로 에워싼다.



* 대문사진 © huper,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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