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부푼 마음으로 떠난 여행길. 그 길에서 예기치 않은 일들로 마음의 공기가 푸시식 새어 나갈 때가 있다.
갑작스러운 악천후, 관광객을 노리는 사기꾼, 인종차별, 혹은 다치거나 아픈 사건 등이 그럴 것이다.
위의 상황에 비하면 훨씬 소소한 일이지만 지난 석 달간 해외 한달살이 동안 마주친 몇몇 ‘금쪽이’들은, 적어도 그들과 함께한 시공간 안에서, 나의 에너지를 제법 소모케 하였다. 그들과의 마주침은 내게 작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남겼다.
베트남 달랏에서 크로와상 카페를 추천받아 택시를 타고 일부러 찾아갔다.
주택가 대로변에서 몇 계단을 내려서자, 푸른 정원과 유럽 시골 어딘가에 있을 법한 예쁜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카페 내부는 크리스마스 소품 가게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고, 입구 근처 테이블 위엔 갖가지 빵이 진열되어 있었다.
빵 하나 가격이 달랏의 일반 식당 한 끼 식사값보다 비쌌지만, 20~30대 현지 젊은이들로 카페엔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우리는 빵 진열대 바로 옆, 조그만 2인용 테이블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하늘색 드레스를 입은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베트남 소녀가 엄마 손을 잡고 카페로 들어왔다. 나는 남편에게 “베트남 아이들 참 예쁘게 생겼어”라고 말하며, 이모 미소 가득한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곧 미소를 거두는 일이 일어났다. 아이가 빵을 덮어둔 투명한 뚜껑을 열더니 손으로 빵을 만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 빵을 만지다 옆으로 옮겨가 또 다른 빵을 만지작거리더니, 이번엔 손가락을 빵에 꾹 찔러 넣는다. 손가락을 쪽쪽 빨고는 다시 옆 빵에 손가락을 푹 찌르는 행동이 반복되었다.
“어머, 저러면 안 되는데! 아이 엄마는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난 아이의 엄마를 찾느라 연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놀랍게도 아이의 엄마는, 온 빵을 다 만지고 구멍 뚫고 침 묻히는 본인의 딸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는지, 카페의 크리스마스 장식이 뒷 배경으로 잘 나올 수 있도록 위치를 바꾸어가며 아이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녀는 가끔 아이에게 뭐라고 말을 했는데, 아이의 행동을 제지하는 게 아니고 포즈를 요청하는 것 같았다. 엄마가 말하면 아이가 브이를 했다가 손가락 하나를 볼에 갖다 대었다 했던 걸 보면.
그 순간, 예쁘던 아이는 나에게 ‘금쪽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느껴졌다. 한껏 미소 짓던 내 얼굴은 굳어졌고, 모녀를 바라보는 내 뺨이 울그락 푸르락을 반복했다. 더 이상 그곳에 있고 싶지 않아 택시를 예약하고 카페를 빠져나왔다. 못 다 먹은 빵 세 개가 우리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참 비싼 카페 투어였다.
달랏에서 머문 네 곳의 숙소 중 한 곳이 특히 실망스러웠다. 가장 비싼 숙소였고 인테리어도 화려했지만, 청소 상태는 미흡했고 수건이나 침구, 소파 등에서는 표현하기 어려운 안 좋은 냄새가 풍겼다. 설상가상으로 태풍까지 겹쳐 외출이 어려워 우린 찝찝한 기분으로 방 안에만 있어야 했다.
이튿날, 우리 호텔에 한 대가족이 체크인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헬’이 시작되었다.
어른 부부 세 쌍과 아이들 7~8명으로 구성된 이 가족은, 호텔 1층과 2층에 각각 방 하나씩을 예약했던 모양이다. 두 방의 문을 종일 열어 두고, 그들은 두 개의 방을 수십 차례 오가며 지냈다. 복도와 계단의 발소리, 열어둔 문으로 풍기는 음식 냄새, 열댓 명이 웃고 떠들고 틈틈이 작은 아이들이 와아앙 터지는 울음소리까지 3층 우리 방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망했다 싶었다.
※ 이 호텔은 무인 체크인·체크아웃 시스템으로, 상주하는 직원이 없었다.
그날 밤 막 잠이 들었는데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생일 축하합니다' 베트남어 떼창에 잠을 깼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었다. 젠장. 속으로 나지막이 욕을 했다.
다음 날, 태풍으로 발이 묶인 아이들은 많이 심심했던 모양이다. 첫날은 1층과 2층만 오갔는데, 두 번째날부터는 4층짜리 호텔 전체를 자신들의 놀이터로 삼기로 한 것 같았다. 술래잡기를 하는지 꺄악 소리를 지르고 우당탕탕 뛰고 미친 듯이 웃어댔다. 그런 아이들을 제지하는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창밖의 태풍이 오히려 평화롭게 느껴졌다. 차라리 밖에 나가 비바람과 싸울 것인가 저 소음을 버틸 것인가 심히 고민되었다. 투숙객의 영혼을 탈탈 터는 술래잡기는 2시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체라스의 한 식당. 옆 테이블엔 네 식구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식사를 거의 끝낼 무렵, 유치원생쯤 되어 보이는 막내가 콜라를 마시다 컵을 엎질렀다. 콜라는 테이블 위에 흥건히 쏟아졌고, 엄마는 아이를 안고 황급히 화장실로 향했다.
아빠는 팔짱을 낀 채 그대로 앉아 있었고, 10대쯤 되어 보이는 아이의 형은 휴대폰을 보며 식사를 이어갔다. 그 누구도 냅킨이나 행주를 요청하지 않았고, 쏟아진 음료를 닦으려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엄마와 막내가 돌아왔고, 네 가족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대로 자리를 떴다. 테이블 아래로 콜라가 뚝뚝 떨어져 바닥엔 이내 갈색 웅덩이가 생겼다.
그들은 떠났고 불편함은 그 옆에 앉아 있던 우리에게 남겨졌다. 갑자기 식욕이 뚝 떨어졌다.
여기까지 글을 읽으신 분들은 느끼셨을 것이다. ‘금쪽이’라는 표현은 결코 아이들을 탓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잘못이 없다. 예쁜 것이 있으면 만지고 싶고, 에너지가 넘쳐 뛰어다니고, 실수로 음료를 쏟는 것은 아이들에겐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을 둘러싼 부모의 태도에 대해선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혹시, 그들은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는 걸까? 그것이 아이를 기죽이지 않고 자유롭게 키우는 방식이라 생각하는 걸까? 그런 양육 방식은 오히려 방임에 가깝다. 함께 사는 사회에서 해선 안 되는 것을 배우고, 타인을 배려하며, 실수에 대한 책임감을 지니는 것은 아이들이 세상 속에서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덕목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먼저 가정에서, 부모나 형제에게서 배워야 할 것들이다.
소중한 내 아이가, 자라서 타인에게도 사랑받고 그 사랑을 나눌 줄 아는 따뜻한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면, 때로는 ‘아닌 것’에 대해 단호하게 알려주고 부모가 솔선수범을 보이는 것이 진정한 사랑 아닐까.
세상은 넓고, 금쪽이는 많았다. 그나마 우리나라 금쪽이들이 꽤 순한 맛이었구나 싶어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