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세월호, 커뮤니티ㅣ(하루늦은)칠월의 책 3권 이야기
[취향이 잔뜩 묻은 7월의 책]은 글쓴이가 7월 한 달 동안 읽은 책 중 인상 깊었던 것을 골라 적습니다. 취향이 잔뜩 묻은 책 이야기, 편히 슥슥 읽어주세요.
시선으로부터ㅣ정세랑ㅣ문학동네
내겐 작가 이름만 보고 사는 책이 있는데, 그중 정세랑 작가도 있다. 그의 작품은 처음으로 본 건 『피프티 피플』이었다. 주인공이 50명인데 단편 소설집이 아니었고 병원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연결된 사람들의 삶이 담긴 장편소설이었다. 목차에는 50명의 인물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챕터를 넘길 때마다 나는 한 사람씩 알아갔고, 책을 덮고는 50명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 후 정세랑 작가의 책을 하나 둘 읽기 시작했다. 아직 다 읽지는 못했는데 신간이 나왔고 초판을 놓칠 수 없었다. 예약판매가 폭주하여 1쇄 수량을 바로 늘렸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그렇게 시선으로부터를 받아들었다.
'심시선'이라는 인물에서 뻗어 나간 모계 중심의 가계도가 가장 첫 페이지에 있었다. 정세랑 소설에서 가계도를 볼 줄은 몰랐는데, 성도 다 다르고 삼대가 걸쳐 그려졌다. 그래서 소설 초반까지는 가계도를 다시 왔다 갔다 펼쳐보며 인물을 기억하는데 시간을 썼다. 그러나 페이지가 줄어들수록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소설에서도 이미 죽은 심시선에 대한 대화를 함께 나누고 싶었다.
이 책의 유명한 구절은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이다. 이는 서울시장이었던 그가 무책임하게 떠나간 것을 명확히 과격한 문장이 되었고 또 성범죄를 저질렀지만 처벌받지 않는 가해자를 향하는 말이기도 했다. 이 문장과 더불어 나는 심시선이 말했던 아래 구절을 함께 새겨보려고 한다.
"이십 년 후에 스스로도 놀랄 다음 단계를 맞닥뜨리게 되면 오늘 이날을 떠올려주십시오. 제 어설픈 말들이 아니라 지금 여기 함께 있는 동료들을 기억하고 성취를 서로 알아봐주십니다. 불꽃놀이 같은 기쁨을 느끼십시오."
불꽃놀이 같은 기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이 기쁨을 누리고 싶다. 참담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세상에서 끝없는 희망과 애정을 품은 소설을 읽을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다. 이쯤 되면 정세랑 작가님의 다른 이름은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찬찬히 밀려오는 지지의 언어를 느끼고 싶다면 읽어보세요.
금요일엔 돌아오렴 l 416 세월호 참사 작가기록단 l 창비
이 책은 읽기 시작한 것은 1년이 넘었을 거다. 올 7월에야 다 읽고 이 책을 덮었다. 왜 이리 오래 걸렸나 생각해보면, 힘들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인터뷰가 담긴 구성으로 한 챕터를 읽을 때마다 울지 않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조차도 여유가 없을 때 이 책을 잡아 들지 못했고, 해가 쨍쨍해 기분이 들뜬 날에도 미안한 마음에 펼쳐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읽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쭉 책장에 꽂아두며 조금씩 읽었다. 유가족들은 자식이 혹은 가족이 떠난 그 날을 마치 어제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수학여행 가던 그 날 마음이 들떠 설레하던 사람을, 용돈을 돌려주려고 했던 사람을, 갑작스럽게 다투고 떠난 사람을 끊임없이 그리고 있었다.
먼저 자식을 떠나보낸 한 어머니의 말씀이었다. 세월호 유가족을 포함한 우리는 떠난 이들이 왜 떠나게 되었는지 아직도 알지 못한다. 왜 이렇게 끔찍한 대형사고가 났고, 왜 신속히 구조되지 못했는지 알지 못한다. 이 일을 도화선으로 세월호 선박을 운영하던 회사 경영진을 처벌하고, 배를 몰던 선원들도 구속하고, 대통령도 탄핵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유가족들은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이 책이 쓰인 5년 전과 지금은 여전히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그런 사고가 우리에게 다시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겠지. 이 착잡함에도 그날을 곱씹고 유가족들을 이해하고 싶다면 일독을 추천합니다.
모임을 예술로 만드는 법ㅣ프리야 파커ㅣ 원더박스
'빌라선샤인'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에도 참여하고 있다. 빌라선샤인은 자신의 삶을 기획하는 밀레니얼 여성을 위한 커뮤니티로 지금 일하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면 이 안에서 직접 기획하고 실현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준다. 이 안에서는 언제나 멋진 여성들을 만나 건강한 자극을 받고, 따뜻한 힘을 얻어 애정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그곳에서 커뮤니티 디렉터로 일하는 분이 항상 이 책을 들고나왔다. 이 책의 주요 글귀들을 발췌해서 어떤 마음으로 커뮤니티를 기획하고 운영해야 하는지, 무엇을 신경 써야 하는지 강조해주셨다. 그를 통해 알게 된 책이라 내겐 커뮤니티의 바이블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어떤 책을 주문할까 고르던 중 사게 되었다.
나 역시 조직 밖 노동자로 여러 일을 하는데, 한 소셜벤처에서 마케팅 파트너로 양육자 모임은 트라이얼로 기획하고 있었다.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감을 찬찬히 책을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그동안 참여하고 운영했던 모임들이 왜 좋았는지, 왜 싫었는지 설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모임의 주최자가 자유를 빙자해 규칙을 만들지 않고 그걸 지키도록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싫었었다. 또 왜 모이는지 목적이 없이 그냥 우리 서로 좋으니까 모여요! 라는 식의 모임이 싫었다. 그리고 한 주제를 가지고 모였지만 그 모임을 잘 운영하기 위해 인위적인 친목 모임도 불편했다. 그러면서 뭔가 느낌으로 전해 내려오던 무형의 커뮤니티가 손에 잡히는 느낌이 들어 실무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인사이트를 주면서 시원한 한마디를 날려주는 문장들이 매력적이었다. 예를 들어
"좋은 모임은 결코 차분한 활동이 아니다. 냉정을 유지하고 싶다면 북극에나 가시라. 많은 모임을 지배하는 이런 망설임은 당신이 모임에 열정을 쏟으면 손님에게도 좋은 일이라는 점을 간과하는 데서 비롯된다."
"목적을 가지고 배제하는 법을 배워야만 목적이 있는 모임을 시작할 수 있다. 문을 닫을 줄 알아야 한다."
"자유방임형 회주는 단순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는 손님들을 내버려 두면 손님들이 자유를 누리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한 손님이 다른 손님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될 뿐이다."
"손님들은 연인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이별 선언을 들을 자격이 있다."
이처럼 커뮤니티의 핵심을 꿰뚫는 말들이 많이 담겨있어 유익하다. 다만, 모임 사례가 정말 방대하게 나와서 다소 흥미가 떨어지는 부분이 있고 이야기가 딱딱한 편이라 재미는 떨어진다. 그러니 커뮤니티나 모임을 직접 운영하거나 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그럼 다음엔 [취향이 잔뜩 묻은 8월의 책]으로 돌아올게요. 관련해서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남겨주세요. 저도 읽어볼게요! 그럼 또 만나요 :)